‘인공태양’ 첫발 내디뎠다…“상용화까지는 최소 10년 이상”

이정호 기자 2022. 12. 14.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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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자기장’ 이용한 국제 핵융합 연구 참여
최근 레이저를 이용한 핵융합을 일으켜 ‘점화’ 현상 구현에 성공한 미국 로런스 리버모아 국립연구소의 실험 장치. 점화가 일어나야 핵융합 발전의 상용화를 추진할 수 있다 로런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소 제공

태양이 빛과 열을 내는 원리인 ‘핵융합’을 지구에서 구현할 실마리를 미국 연구기관이 잡았다. 핵융합은 탄소 배출이나 폐기물 걱정 없이 막대한 에너지를 만들 방안이어서 인류의 에너지 역사에 대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 다만 핵융합을 통해 전력을 상업적으로 생산하기까지는 짧아도 10년 넘게 걸릴 것으로 보인다.

미국 CBS와 CNBC 등 외신에 따르면 제니퍼 그랜홈 미 에너지부 장관은 13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에 소재한 로런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소가 사상 처음으로 핵융합 과정에서 ‘순에너지 증가’를 달성했다”며 “미국이 중요한 과학적인 돌파구를 만들었다”고 발표했다.

순에너지 증가란 투입한 에너지보다 더 많은 에너지가 산출됐다는 뜻이다. ‘점화’ 현상이라고도 부른다. 이 현상이 안정적으로 나타나야 발전 등의 용도로 핵융합을 활용할 수 있다.

방우석 광주과학기술원(GIST) 물리·광과학과 교수는 “지금까지 점화 현상은 수소폭탄에서만 관찰됐다”며 “발전에 사용하기 위한 실험실 단위의 연구에서 점화를 구현한 건 지난 수십년간의 핵융합 연구 과정에서 처음”이라고 말했다.

핵융합은 태양과 같은 별들이 빛과 열을 뿜는 원천이다. 수소 같은 가벼운 물질의 원자핵이 초고온으로 가열돼 합쳐지면서 생긴다. 현재 원자력발전소에서 이용되는 핵분열은 원리가 핵융합과는 반대다. 우라늄 같은 무거운 물질의 원자핵이 외부 충돌로 쪼개질 때 에너지가 나온다. 원자폭탄 등도 핵분열로 구현된다.

핵융합이 만드는 에너지는 핵분열보다 대략 7배 많다. 핵융합은 핵분열과 달리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도 내놓지 않는 게 큰 장점이다. 문제는 지구에서 핵융합을 일으키려면 1억도라는 초고온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번에 로런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소 연구진이 여기에 답을 내놓은 것이다.

연구진은 1억도라는 고온을 만드는 ‘플라즈마’라는 물질을 구현하고 이를 담을 견고한 ‘그릇’을 만들었다. 192개의 레이저 빔을 쏴 만든 결과다.

연구진은 레이저를 발사해 깨알 크기의 금속 덩어리 내부에 든 중수소와 삼중수소를 초고온·초고압 상태로 만들어 핵융합을 일으키는 연구를 해왔다. 결국 지난 5일 실험에서 2.05MJ(메가줄)을 투입해 3.15MJ의 핵융합 에너지를 산출하는 데 성공했다. 에너지량이 약 1.5배 늘어난 것이다. 이번에 만들어낸 핵융합 에너지 크기는 물이 담긴 주전자 15~20개를 끓일 수 있는 정도로 추산된다.

올해 4월 프랑스 카다라쉬에서 촬영된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건설 현장. 한국 등 7개국이 참여했다. 총 117억유로(16조원)가 투입된다. ITER 제공

과학계에선 레이저가 아닌 자기장으로 핵융합을 구현하는 방법도 연구하고 있다. 현재 한국을 비롯해 미국, 러시아, 유럽연합, 일본, 중국, 인도 등 7개국이 주도해 진행 중인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사업이 주인공이다.

ITER는 프랑스 남부 카다라쉬에 짓고 있다. 총 사업기간은 2007년부터 2042년이다. 건설에 117억유로(16조원)가 투입되며, 한국은 여기에서 9.09%를 분담한다. 장치 제작비와 연구개발 비용 등을 ITER에 참여하는 7개국이 나눴다.

또한 한국은 ‘KSTAR’라는 핵융합 연구장치도 따로 운영하고 있다. 자기장을 이용하는데, 무게만 1000t에 이르는 거대 시설물이다. 지난해에 여기서 1억도를 30초 연속으로 달성하는 데 세계 최초로 성공했다. 과학계에선 300초 연속으로 1억도를 유지하면 핵융합을 꾸준히 이어갈 수 있다고 본다. ‘300초’ 도전 시점은 2026년이다.

자기장 방식은 핵융합 에너지의 지속성, 레이저 방식은 에너지 증폭에 방점을 둔다. 자기장 방식이 이왕 만들어진 고온의 플라즈마를 가두는 게 핵심이라면, 레이저 방식은 레이저를 쏴 단박에 고온을 일으킨다. 지속성과 증폭 중 무엇을 더 중요하게 보느냐에 따라 연구 방향이 갈린다.

그러나 어떤 핵융합 연구 방식도 실제 전력 생산까지는 갈 길이 멀다. 특히 이번 미국 연구소의 실험은 연속적인 핵융합이 아니었다. 상업적으로 핵융합을 활용하려면 1분에 수차례 점화 현상이 나타나야 하는데 이는 기술적인 난제다.

방 교수는 “레이저로 핵융합을 일으켜 전력을 생산하는 단계까지 가려면 최소한 10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며 “얼마나 많은 투자가 이뤄지느냐에 따라 정확한 상용화 시점은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그랜홈 장관은 이날 발표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상업 핵융합로를 10년 안에 만들겠다는 비전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가정과 기업에 레이저로 일으킨 핵융합으로 만든 전력을 광범위하게 공급하는 건 훨씬 이후의 일이 될 가능성이 크다.

ITER를 기초로 한 자기장 방식의 핵융합 연구 또한 대략 2050년대를 상용화 시점으로 본다. 다만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다. 유석재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장은 “ITER는 이르면 2035년에 연쇄적인 핵융합 반응 실험을 시행할 예정”이라며 “이 시도가 성공하면 이후에는 핵융합 발전의 상용화 속도가 얼마나 빨라질지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예상보다 핵융합 발전의 등장 시점이 당겨질 수 있다는 뜻이다.

유 원장은 “원자력발전이 세상에 나오기 전인 1930년대 상황이 지금과 같다고 보면 된다”고 덧붙였다.

절박한 상황인 기후위기 대응에 핵융합 기술을 활용할 수 있을지는 향후 인류의 관심과 재원 투자 속도가 결정지을 것으로 보인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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