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때부터 꿈꾼 베토벤 '합창' 지휘…김선욱 "하루 15시간씩 공부"

조재현 기자 2022. 12. 14.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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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향 벤스케 음악감독 부상…공연 일주일 전 긴급 투입
"지휘에 인생 걸었다"…"피아노든 지휘든 내 음악 만드는 과정"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 김선욱. (서울시립교향악단 제공)

(서울=뉴스1) 조재현 기자 = "1999년 그러니까 초등학교 5학년 때예요. 예술의전당 제야음악회 때 가장 앞줄에서 정명훈 선생님이 지휘하는 베토벤 교향곡 '합창' 실연을 봤어요. 그때 처음 지휘자를 꿈꾸게 됐고, '내가 이 곡을 지휘하는 순간이 올까'라는 생각도 했죠."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 김선욱(34)이 꿈에 그리던 무대에 선다. 김선욱은 14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과 15~16일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2022 서울시립교향악단 베토벤 교향곡 합창' 공연의 지휘자로 나선다.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베토벤 교향곡 9번은 한 해를 마무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 이맘때 자주 연주되며, 서울시향이 매년 선보이는 인기 레퍼토리이기도 하다.

원래 이 공연은 서울시향 오스모 벤스케 음악감독이 지휘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한국시간으로 지난 6일 벤스케 음악감독이 낙상 사고로 골반을 다쳤다는 소식이 서울시향에 전해졌다. 김선욱은 다음날인 7일 서울시향으로부터 지휘 요청을 받았다. 국내 연주 일정을 마치고 독일로 떠나기 위해 공항으로 가던 때였다.

"그 30~40분이 제 인생에서 가장 깊은 고심을 한 순간이에요."

13일 기자들과 만난 김선욱은 당시를 회상하며 이같이 말했다. 갑작스러운 요청에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만 고민할 시간을 달라고 했단다. 공연까지는 딱 일주일이 남은 상황. 준비할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럼에도 김선욱은 비행기에 오르지 않았다. 지휘자의 꿈을 갖게 해준 베토벤 '합창' 공연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 김선욱. (서울시립교향악단 제공)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지휘는 원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오케스트라의 사이즈도 워낙 크고 합창단 등 수많은 노고와 노력이 들어가야 하는 공연이죠. 이번 기회를 수락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죠."

김선욱은 곧장 호텔로 향했다. 서울시향에서 보낸 악보도 이미 도착해 있었다. 김선욱은 그날부터 첫 리허설 전까지 나흘간 호텔 방에 틀어박혀 하루 14~15시간씩 악보를 들여다봤다.

"자가 격리였죠(웃음). 밥 먹을 때 빼고 나흘간 방에서 나오지 않았어요. 살면서 이렇게까지 온 영혼과 정성을 쏟은 게 얼마 만인가 싶을 만큼 열중했습니다."

그간 세계 무대에서 활발한 연주 활동을 펼쳐온 김선욱이지만, 지휘자로서는 '신예'다. 더욱이 이번 공연의 경우 시간마저 충분하지 않았기에 긴장할 법도 한데,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선 자신감이 느껴졌다.

10년 전 피아니스트로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를 소화한 것도 큰 도움이 됐다. 김선욱은 "그간 베토벤의 작품을 연주하며 갖게 된 개인적인 해석이나 생각을 교향곡으로 옮기는 게 어렵거나 부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현악 사중주, 교향곡은 모두 하나의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어요. 특정 악기를 위해 작곡을 한 게 아니라 자신이 가진 이상을 순간순간 음악으로 표현했거든요. '합창' 교향곡 3악장의 경우 제1 바이올린은 피아노 오른손 연주, 금관·목관 악기는 피아노 왼손 연주로 화음을 만드는 느낌이에요. 피아노 소나타에 대입해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로 다 연결됩니다."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 김선욱. (서울시립교향악단 제공)

그는 인터뷰 내내 지휘에 대한 애정을 물씬 드러냈다. 연주자 겸 지휘자로 활동하는 음악가가 많지 않은데다, 일각의 편견과도 싸워야 한다. 그러나 그는 "지휘에 인생을 걸었다"고 강조했다.

"저는 음악가라는 생각을 어렸을 때부터 했어요. 피아노 연주 기회가 많다 보니 지휘를 할 기회가 늦어진 것뿐이죠. 지휘를 한다고 하면 이제 피아노는 안 치는 거냐고 이분법적으로 보는 시선도 있는데, 그럴 생각은 없어요. 피아노를 칠 때든 지휘할 때든 '피아노를 친다, 지휘한다'는 식으로 생각하지 않고, 그저 제가 추구하는 방향으로 음악을 만든다고 생각하죠."

그렇기에 '지휘자 김선욱'에 대한 평가도 신경 쓰지 않으려 한다.

"정명훈 선생님께 조언을 구하면 항상 '시간이 걸린다'고만 하세요. 지휘를 할 때마다 정말 많이 배우고 있어요. 공연에 대한 판단도 관객에게 맡기려 해요. 제가 생각하는 베토벤의 음악을 들으며 한 해를 잘 마무리하시기 바랍니다."

cho84@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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