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850t 쇳덩이에 사슴 모형까지… ‘볼보=안전’ 만든 충돌 연구소

예테보리(스웨덴)=박진우 기자 2022. 12. 14.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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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처럼 튼튼한 차 만들자는 집념
볼보차로 죽거나 다치는 사람 없게
1년 300회 충돌 실험, 딥러닝 도입
볼보자동차 세이프티 센터 충돌 연구소. /예테보리(스웨덴)=박진우 기자

“저 가재처럼 튼튼한 차를 만들어보자.”

스웨덴 경제학자 아사르 가브리엘손과 철강기업 SKF 엔지니어 구스타브 라르손은 1926년 한 식당에서 자동차 사업 구상 중 떨어뜨린 가재가 전혀 깨지지 않는 것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시 스웨덴은 포장도로가 적고, 추운 날씨 탓에 도로가 자주 얼어 자동차가 잘 고장 나거나 파손됐는데, 이런 환경에서도 버틸 수 있는 안전한 차를 만드는 것이 이들에게는 큰 도전이 됐다.

가브리엘손과 라르손은 1927년 스웨덴 예테보리 근처에 스웨덴 최초의 현대식 자동차 공장을 설립했다. 회사 이름은 라틴어로 ‘나는 구른다’라는 뜻을 지닌 ‘볼보’로 지었다.

이후 80여년간 볼보자동차는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차를 만들어 오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볼보는 오늘날 모든 자동차에 장착되는 3점식 안전벨트를 1959년에 처음 만들었고 1971년에는 안전벨트 미착용 경고등 점멸장치를 추가로 고안했다. 충격흡수식 범퍼, 브레이크잠김방지시스템(ABS), 측면 에어백, 커튼형 에어백 등도 최초 개발했다.

볼보 세이프티 센터 충돌 연구소 실제 실험 영상. /볼보차 제공

지난 2008년 볼보차는 ‘2020년까지 새로 개발된 볼보차로 죽거나 심각한 부상을 당하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게 하겠다’는 비전 2020을 발표했다. 이 비전은 불가능한 것이지만, 안전에 대한 볼보차의 집착은 여전하다.

볼보차의 안전에 대한 철학이 집약된 곳이 볼보 세이프티 센터 충돌 연구소다. 올해로 22주년을 맞았다. 충돌 연구소는 한 차종당 100~150회씩, 매년 300회의 충돌실험를 통해 수많은 교통상황과 사고를 재연해 사망자나 심각한 부상자가 발생하지 않는 방법을 다양하게 모색하고 있다.

연구소에는 중앙의 메인홀(충돌공간)을 중심으로 양옆으로 마주보는 2개의 트랙이 존재한다. 트랙 길이는 각각 108m와 154m로 이뤄져 있다. 이 중 108m 트랙은 90도까지 각도를 틀 수 있어 정면충돌 뿐 아니라 다양한 각도에서의 충돌 실험을 지원한다. 두 대의 차를 최고 시속 120㎞로 움직여 맞부딪히게 하는 게 가능하다.

볼보자동차 세이프티 센터 충돌 연구소. /예테보리(스웨덴)=박진우 기자

메인홀에는 정면, 후면, 측면 충돌을 시험할 수 있는 무게 850t의 쇳덩어리인 방호울타리를 두고 있다. 에어 쿠션을 이용해 메인홀 어디든 이동이 가능하다. 여기에 동물과의 충돌사고 시뮬레이션을 위한 엘크 모형 등을 갖추고 있다.

실험차와 더미, 방호울타리에는 모든 상황을 추적하는 센서가 부착돼 있다. 수십 개의 고화질 카메라는 모든 각도에서 충돌실험을 데이터로 남긴다. 실험차는 실제 실험 전에 수천번 이상의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하는데,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딥러닝과 메타버스가 활용된다. 충돌연구소 엔지니어는 실제 사고 현장에 나가 사고를 면밀히 조사하고 연구하기도 한다.

볼보자동차 세이프티 센터 충돌 연구소. /예테보리(스웨덴)=박진우 기자

연구소 바깥에는 빠른 속도의 차가 도랑으로 돌진하는 등 전복 충돌 및 도로 이탈 시나리오를 재현할 수 있다. 또 구조대 기술 연마를 위해 극한의 충돌 상황과 심각한 자동차 손상을 만들어 내는 시설도 갖췄다. 최근 볼보차는 극단적 상황에서 승객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구출하는 매뉴얼을 만들기 위해 30m 높이 크레인에서 총 10대의 차를 낙하하는 테스트를 진행했다.

한번 충돌실험을 하는 데에는 3만5000유로(약 4800만원)가 들어간다. 1년간 충돌실험에만 144억원을 들이는 셈이다. 토마스 브로베르그 볼보차 선임 엔지니어는 “볼보차가 말하는 안전성은 단순히 테스트를 통과하거나 좋은 등급을 받기 위한 게 아니다”라며 “볼보차가 가상의 사고를 끊임없이 실험하고 분석하는 데 들이는 모든 노력과 시간, 도출된 연구 결과들은 전 세계 교통사고 사상자 감소로 이어진다”라고 말했다.

볼보자동차 세이프티 센터 충돌 연구소. /예테보리(스웨덴)=박진우 기자

충돌실험이 끝나면 엔지니어들은 어떤 부위가 어떻게 파손됐고, 실험 후 차가 어떻게 움직였는지를 상세하게 점검한다. 한 엔지니어는 “실험 뒤에 차를 치우는 데는 두 시간도 걸리지 않는데, 이보다 많은 시간을 실험 모니터링에 쓰고 있다”고 말했다.

실험은 실제 판매가 되는 차로 한다. 연구소 옆 토슬란다 공장에서 만들어진 신차다. 실험차 연료탱크 안에는 기름 대신 유사 물질을 넣는다. 화재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무게는 전체 탱크 용량의 90~95%를 채운다.

볼보자동차 세이프티 센터 충돌 연구소. /예테보리(스웨덴)=박진우 기자

2030년 완전한 전기차 회사로 거듭나겠다는 볼보차는 최근 전기차 충돌실험도 이 연구소에서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출시한 C40 리차지와 최근 선보인 EX90 모두 수천 번의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거쳐, 이 연구소에서 100회 이상의 실제 충돌실험을 했다.

기름이 들어가지 않는 전기차는 배터리 자체가 화재 위험성을 갖고 있다. 충돌로 인해 발생한 에너지가 배터리를 자극할 경우 급격한 열폭주로 불이 나는 것이다. 충돌연구소 엔지니어는 “전기차 충돌 실험에서 화재 가능성은 항상 염두에 두고 있지만, 실제 충돌실험에서 불이 난 적은 없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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