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미래 강원 노포 탐방] 27. 양구 풍미식당

이동명 2022. 12. 1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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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째 전해진 전설의 맛 풍문으로 들었소
1965년 개업 56년 전통 중국집
직접 재배한 싱싱한 식재료 사용
강원 2호 조리사 면허 비법 담아
짬뽕·탕수육·볶음밥 ‘베스트 3’
단골들 먼 길 마다 않고 찾아와
안경일(왼쪽) 서달호 모자

반세기가 넘도록 식당을 이어가는 것은 쉽지 않다. 음식점 수명이 짧은 요즘 같은 때에, 붐비는 도시가 아닌 한적한 시골에서 맛집으로 자리매김하는 일은 더욱 어렵다. 양구읍내에서 자동차로 20분 이상 걸리는 동면 팔랑리, 이곳을 6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굳건히 지키고 있는 풍미식당은 양구 대표 맛집이다. 탕수육과 볶음밥, 짬뽕의 맛은 전국적으로 입소문이 났다.

팔랑리 전성시대

풍미식당의 역사는 1965년 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재 위치에서 500m쯤 떨어진 곳에 ‘한중관’으로 개업했다. 한중관 창업자인 고 서돈석(1939년생, 2016년 9월 작고) 씨는 충남 대천 출신으로 충청, 서울 등을 거쳐 양구에 닿았다. 양구읍내에서 화교가 운영하는 중화요리집의 주방장으로 일하면서 사회의 단맛과 쓴맛을 봤다.

그는 군 제대 후 동면지역에 중국집을 열었다. 서돈석 씨는 1964년 강원도 제2호 조리사 면허를 받았다. 서 씨의 곁에는 든든한 아내 안경일(75) 씨가 있었다. 개업 몇 년 후 현재의 자리로 옮겨왔고, 35년전 쯤에 ‘한중관’은 ‘풍미식당’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1980·1990년대는 ‘팔랑리 전성시대’였다. 11개가 넘는 대대가 인근에 주둔했고, 그때만해도 ‘위수지역’에 묶인 군인들은 양구읍내까지 나갈 수 없었다. 좁은 마을에 군인들을 대상으로 한 식당이 10곳이 넘고 다방, 술집 등이 즐비했다. 거리를 지나가려면 어깨를 부딪쳐야 할 정도로 ‘명동’이 안부러웠다. 패션이나 여러 유행을 부산과 동시에 탔을 정도다.

1996년 하락세가 시작됐으나 2000년대 초반까지는 흥청거림이 이어졌다. 위수지역이 풀리고, 나이 든 상인들이 카드기기 놓기 등의 어려움으로 장사를 접는 경우가 생기는 등 여러 요인이 겹쳐 ‘동면의 라스베이거스’ 팔랑리의 전성시대는 신기루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졌다.

인심, 찾아오는 손님들

평일 오후 2시를 훌쩍 넘겨 취재진이 식당을 방문했을 때 이미 점심 운영시간이 지났음에도 손님들이 자꾸만 들어왔다. 점심의 경우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1시 30분까지, 저녁시간대에도 오후 6시에 오픈해 오후 8시까지만 운영된다. 미리 주문하는 손님이 있으면 잠시 기다리기도 한다.

영업시간이 아님에도 오는 손님 막지 못하는 식당 주인의 따뜻한 마음 덕분에 손님들에게 음식을 내어준 뒤에야 젊은 사장 서달호(50) 대표는 모친인 안경일 전 대표와 함께 식당 이야기를 풀어냈다.

2017년 대표가 돼 2대째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창업자의 둘째아들인 서달호 씨는 도내 2호 조리사인 부친의 기술과 비법이 아깝다는 생각을 해 가업을 잇게 됐다. 춘천 등에서 직장생활을 하기도 한 서 씨는 2000년대 초반부터 동면으로 돌아와 아내와 함께 가업을 잇고 있다. 그는 가게를 함께 운영하겠다고 아버지에게 몇 번을 말씀드렸지만 당시 서돈석 씨는 “장사를 하려면 놀러 나가고 싶어도 못 놀고, 시간에 얽매이는 데 그것을 감수할 수 있겠냐”며 식당을 운영하면 ‘얽매이는’ 고행이 시작된다는 점을 이해시키고 몇 번이나 다짐을 받은 끝에야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이후 서돈석 씨가 노쇠해 가게를 운영하기 어려워지자 자연스럽게 서달호 씨가 식당을 책임지게 됐다. 인근 밭에서 배추, 고추, 대파, 오이, 호박, 양배추까지 직접 심어 식재료의 70%를 해결한다. 고기 하나를 다루는 경우도 인근의 정육점에서 사와서 심줄을 일일이 발라내고 살 속의 비계층을 다 끄집어내는 등 정성을 쏟는다. ‘내가 싫은 건 손님들도 싫어한다’라는 생각으로 요리를 한다. 주방의 청결 관리도 철저하다.

여기에 강원도 제2호 조리사 면허증 취득자인 창업자로부터 물려받은 맛의 비법도 매력적이다.

양구읍 지역구의 신철우 양구군의원은 “볶음밥이 생각나면 읍내에서 출발하면서 미리 주문을 해놓고 20분 걸려서 먹으러 온다”며 “어쩌면 동면 손님보다 읍내 손님이 더 많을 것”이라고 칭찬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

‘풍미’식당이라는 이름에 맞게 마음의 ‘풍미’와 음식의 ‘풍미’가 더해져 쌀쌀한 날씨를 녹여주는 맛을 느낄 수 있다. 탕수육은 소스를 비벼 볶아서 준다. 겉과 속이 촉촉한 맛이다. ‘찍먹’, ‘부먹’을 놓고 고민할 필요가 없이, 그냥 ‘볶먹’이다. 볶음밥은 고기, 야채, 밥이 거의 비슷한 비율로 양도 푸짐하다. 입안에서 식재료들이 어우러져 씹히는 맛이 생생하다. 짬뽕은 시원하고 개운한 국물 맛이 일품이다. 너무 생각나서 또 먹으러 가고 싶은 맛, 추운 겨울, 더운 여름 가리지 않고 생각날 맛이다. 음식마다 배인 은은한 불맛도 그만이다.

인근에 거주하는 10대부터 거의 30년 가까이 단골인 조돈준 양구군의원은 “멀고 가까운 곳에서 오는 손님들이 여기를 좋아하는 경우가 많아 한 달에 평균 다섯번은 오는 것 같다”며 “작은 지역이지만 어깨 펴고 손님을 대접하기에 제격인 곳이다”라고 자랑했다. 이 일대에서 군복무했던 이들이 제대 후 나이 들어 다시 찾아오는 경우도 많다.

최근에도 이곳에서 군생활을 한 중년의 남성이 대구에서 찾아와 식사를 한 후 “대구까지 가져가겠다”며 음식을 포장해달라고 했다. 현재는 군인도, 사람도 많지 않지만 코로나19를 견뎌낼 만큼의 오랜 전통과 단단한 단골, 찾아오는 손님들이 있다. 인근 마을에 거주하는 단골은 몇 십 년 동안 찾아와 올 때마다 짬뽕을 먹는다. 식당 주인은 단골의 식사량을 알고 보통을 시켜도 곱빼기의 양을 내놓는다. 서달호 대표는 “아버님은 2016년 9월의 추석을 일주일 앞둔, 별세 당일에 손님 70~80명을 대접하고 식당의 시설개선 공사 인부들에게 ‘지붕 잘 덮으라’고 당부하는 등 최선을 다한 후 그날 밤 늦게 세상을 바람같이 떠나셨다”며 “깊이 우러나는 옛날의 맛이면서 오래오래 기억돼 결국 미래의 맛이 되도록 아버지처럼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안경일 전 대표와 서달호·김옥선 부부는 ‘최선을 다하는 깊은 맛’을 기억해주길 바라는 작은 소망 속에 오늘도 정성껏 음식을 조리한다. 이동명·유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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