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 타는 남자·튜브 타는 여자…관광 콘텐츠에 ‘성차별’ 수두룩
여성에게만 ‘배려’ 역할 부여…외모 획일주의 문제도 지적
“‘청이’는 홍이의 남자친구로 여자친구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꼬마신사, ‘홍이’는 청이의 여자친구로 사랑이 샘솟는 도깨비 마을을 상징.”
전남 곡성군 요술랜드체험관에 있는 도깨비 캐릭터에는 이런 설명이 적혀 있다. ‘섬진강 도깨비’를 주제로 한 어린이 체험관이지만 도깨비 청이와 홍이를 ‘연인’으로 설정했다. ‘홍일점’이라고 소개된 홍이에게는 “항상 웃는 모습으로 친구들을 즐겁게 해주는 해피 바이러스 전도사”라는 설명이 더해졌다. 여자 도깨비에게만 ‘남을 배려하고 즐겁게 해줘야 한다’는 역할이 부여됐다.
13일 전남여성가족재단의 ‘성평등한 전남관광콘텐츠사업 운영방안’ 보고서를 보면 도내 주요 관광지와 온라인 콘텐츠를 모니터링한 결과 108건의 성차별적 내용이 확인됐다. 전남 관광 콘텐츠를 대상으로 성차별 조사가 진행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남여성가족재단은 2016∼2021년 입장객이 많은 관광지 11곳을 대상으로 지난 9월 직접 현지를 방문해 조사했다. 연구원들은 관광지 설명문과 포스터, 안내판, 영상 이미지 등을 분석했다. 전남 관광 공식 블로그인 ‘남도여행 길잡이’ 게시물 34건과 전남관광재단 콘텐츠 13건도 분석 대상에 포함됐다.
담양 죽녹원에 설치된 ‘대나무 창살’은 ‘날씬한 몸이 정상’이라는 외모 획일주의를 강요하고 있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당신의 뱃살은 표준입니까?’라고 적힌 이 시설은 관광객들이 간격이 다른 대나무 창살을 통과하도록 하고 있다. 간격이 제일 큰 창살 쪽에는 ‘답 없음’이라고 적혀 있다.
온라인 관광 콘텐츠에서도 문제점이 확인됐다. 전남지역 대표적인 포토존 8곳을 소개하는 동영상 콘텐츠에는 긴 머리에 치마 차림을 한 젊은 여자만 등장한다. 고흥 남열해수욕장을 소개하는 내용에는 여자들은 모두 튜브에 앉아 있지만 남자는 파도타기를 즐기는 역동적인 모습으로 표현됐다. ‘전남관광두레’를 홍보하는 카드뉴스에는 남자는 지도를 보며 여행지를 찾거나 사진을 찍는 모습이지만 여자는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문제가 된 성차별적 콘텐츠 중에서는 남자는 파란색, 여자는 분홍색 등으로 구분하는 ‘성역할 고정관념 및 편견’이 39건으로 가장 많았다. 성인 여자를 긴 머리와 치마 차림 등으로 제시하는 ‘성적 대상화·외모 획일주의’와 ‘성별 대표성 불균형’은 21건씩이었다. 관광지 등을 소개하면서 여성의 신체 부위를 부각하는 등의 ‘성차별적 표현·비하’도 15건 확인됐다.
위라겸 전남여성가족재단 연구원은 “관광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단계에서부터 ‘성별 영향 컨설팅’ 등을 진행해 성평등 관점에서 콘텐츠를 검토해야 한다”면서 “성차별 사례와 성평등 사례를 발굴해 업무 담당자에게 배포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강현석 기자 kaj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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