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人] 내일의 나전을 생각하다…‘나전장’ 박재성

진정은 2022. 12. 13.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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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창원] [앵커]

30~40년 전만 해도 통영에는 200곳 넘는 나전 공방이 있었습니다.

수요가 급감하면서 지금은 손으로 꼽을 정도로 그 수가 줄었는데요.

아름다운 나전을 더 오래 이어가기 위해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는 나전장을 경남인에서 만나보시죠.

[리포트]

전통기법으로 거북등 문양 '구갑문'을 섬세하게 표현한 팔각탁자입니다.

["12간지 띠별로 이제 다 흉상을 해서 다 넣은 거고..."]

십이간지 팔각탁자 역시 장인이 직접 고안한 문양과 끊음질로 영롱한 자개 빛깔을 살려냈습니다.

["현대와 우리 전통이 서로 어우러져야 요즘은 어떤 상품이든 어떤 작품이든 모양을 낼 수 있는데 옛날 방식을 가지고 그대로 고집하는 건 그건 안 맞다고 생각하거든요."]

15살 때부터 나전과 함께 한 박재성 나전장의 손에선 자개가 떨어질 날이 없었습니다.

끊음질에 사용할 자개를 자르는 중인데요.

거도로 자른 자개는 기계로 자른 것처럼 가늘고 일정합니다.

줄톱 하나로 곡선의 문양을 세공하는 줄음질 솜씨도 놀랍습니다.

두께가 종잇장처럼 얇은 자개를 순식간에, 흠 하나 없이 오려내는데요.

절삭기를 이용해 대량으로 찍어낸 문양을 거부하고 모든 재료를 직접 세공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아직까지 이게 필요합니다. (절삭기로) 그렇게 하면 시중에서 대량으로 나올 수는 있는데 첫째는 작품성이 없잖아요. 하나를 만들어도 손으로 제대로 만들어야 작품성이 있는 거죠."]

목판을 옻칠해 삼베와 칠 죽을 바르고, 초질, 중칠을 거친 뒤에야 나전 작업에 들어가는데요.

직접 그린 도안을 바탕으로 뭐든 표현할 수 있는 끊음질이 그의 주특기입니다.

직선의 자개를 끊음질해 곡선을 그려내는 실력은 웬만한 장인도 감탄할 정돈데요.

시간을 따지면 엄두도 못 낼 일입니다.

["하나하나 마무리돼갈 때는 그 어떤 희열을 느낀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작품 완성하는 그게 목적이지 시간에 쫓겨서 한다고 하면 옳은 작품이 나오겠습니까."]

나전 산업이 기울면서 많은 기술자가 공방을 등질 때도 고집스럽게 작업대를 지킨 장인은 지난 2008년 경상남도 최고 장인으로 인정받았습니다.

[박재성/나전장 : "오직 이 길만 쭉 걸어왔기 때문에 이제 와서 또 나이 들어서 다른 생각을 해 볼 그것도 안 되고 저는 어찌 됐든 나전칠기 이걸 천직이라고 생각합니다."]

궁궐에서 사용하던 큰상을 응용한 궁전대궐반입니다.

보이지 않는 곡면까지, 줄음질과 끊음질로 수만 개의 자개 조각을 수놓으며 2년 6개월간 투혼을 쏟은 작품입니다.

[이런 건 반반하기 때문에 하기가 아무래도 수월하잖아요. 이런 곡선, 특히 손이 안 들어가는 부분들, 이걸 하려고 하면 많이 애를 먹지요. 그때 디스크가 와서 수술까지 하고..."]

끊음질만으로 도자기의 곡면과 국화 꽃잎의 곡선을 완벽하게 살려낸 국화문 건칠 화병입니다.

꽃송이의 가느다란 꽃잎 하나에만 백번 넘는 끊음질이 들어갑니다.

[하루에 한 송이밖에 못 한다고 생각하면 돼요. 말할 수 없이 시간이 흘러가는 거죠."]

끊음질 한 거북등 문양에 상감을 더하는 등 전통기법을 응용한 결과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작품이 나왔습니다.

부지런히 나전 기술을 전수한 덕분에 왕성하게 활동하는 제자만 10명이 넘습니다.

[유정희/제자 : "정말로 존경스럽죠. 완전 외길이잖아요. 깨어 있다고 해야 하나 제가 느끼는 건 그래요. 자꾸 다른 방법으로 시도하고 또 해보시고 이러니까…."]

가구 대신 그림, 벽걸이로 나전의 영역을 넓힌 나전장은 지난 10월, 국가무형문화재 나전장 보유자로 '인정 예고' 됐습니다.

["전통은 반드시 이어가야 하지만 저만의 색깔이 있게 만들어야 하는 그런 작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55년 나전의 길. 그는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고, 오늘에서 내일로 이어지는 나전을 꿈꿉니다.
https://news.kbs.co.kr/special/danuri/2022/intro.html

진정은 기자 (chri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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