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과 혐오 사이 ‘성형 강국’ 100년의 혼란 [이유진의 바디올로지]

이유진 2022. 12. 13.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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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진의 바디올로지]02 _성형1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100년간 ‘성형 미인’에 대한 비난과 ‘자연 미인’을 찬양하는 극단적 담론 사이에 모든 이의 몸이 혼란스럽게 놓여 있었다. ‘성형 미인’을 조롱하는 이들조차 자기 몸에 대한 평가가 어느 순간 삶의 성적표처럼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익스플레인: 세계를 해설하다> 성형 수술 편(2021) 화면 갈무리.

100년 전 한반도는 ‘근대적 몸’이 되고 싶은 열망이 폭발하는 곳이었다. 당시 바다 건너 미국에선 두 가지 역사적 사건이 있었다. 1921년 8월 뉴욕에서 성형외과 단체가 처음 만들어졌고 한 달 뒤엔 제1회 미스 아메리카 선발대회가 열렸다. 미국 역사학자 엘리자베스 하이켄은 <비너스의 유혹>에서 겉으로 무관해 보이는 이 두 사건이 ‘성형의 역사’를 조망할 관점을 제시한다고 말했다. ‘성형’은 태생부터 의료적일 뿐만 아니라 문화적 현상이라는 것이다.

1920년대 조선인들은 성형 수술을 ‘정형 수술’이라고 일컬었다. 당시 성형 담론은 전문가들이 신문에서 황당한 상담을 해주는 정도에 그쳤다. 성형 수술을 받고 싶다는 20살 ‘곰보’ 여성의 질문에는 다짜고짜 “(수술로도) 곱게 할 수 없습니다” 같은 냉정한 답이 붙었다. 다만 외과 수술법을 소개하는 것만큼은 언론도 열정적이었다. 미용 성형은 ‘근대적인 몸’이 되는 가장 흥미롭고 과학적인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한반도에 미용 성형 수술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30년대 초중반 이후로 추정된다. 처음 쌍꺼풀 수술을 한 조선인은 최초의 근대 미용사였던 오엽주(1902~1987)다. 일본에서 배우로도 활약한 그는 당대의 셀러브리티였고 서구인처럼 치장하고 몸을 변형하는 일에 적극적이었다. 쌍꺼풀 수술은 1930년 전후 일본에서 받았는데, 꽤 정교하게 잘 되어서 서울의 유명 안과인 공안과에서 그를 초청하여 수술 경험담을 청취할 정도였다. 오엽주의 미용실엔 배우 복혜숙·문예봉, 신문기자이자 조선 최초 여성 개원의였던 허영숙, 작가 모윤숙·전숙희, 소설가 심훈 등도 단골로 드나들었다. 근대적 신체 만들기에 관심이 컸던 모던 보이와 모던 걸들 사이에서도 오엽주의 쌍꺼풀 수술은 단연 화제였으리라. 훗날 120여 명의 미스코리아를 배출한 서울 명동 ‘마샬미용실’ 하종순 회장이 처음 미용 기술을 익힌 곳도 오엽주의 미용실이었다. 서구의 미적 기준을 중시하는 미인 대회가 미용 성형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을 볼 때, 두 사람의 인연이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익스플레인: 세계를 해설하다> 성형 수술 편(2021) 화면 갈무리.

1930년대 이미 조선엔 코를 높이는 융비술, 각선미를 만드는 종아리 근육퇴축술, 가슴 성형 등도 꽤 알려졌다. 모두 외모를 백인종처럼 바꾸는 수술이었다. 식민지 모던 보이들의 백인 선망은 지금까지도 유명하다. 특히 소설가 이광수는 유리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곤 우쭐해 하다가도 백인이 지나가면 고개를 떨어뜨리며 황인종 특유의 외모를 저주하다시피 했다. (그는 오엽주 미용실의 단골, 허영숙의 남편이었다) 김동인의 첫사랑은 금발의 ‘영국계 소녀’ 메리였다. 1920년대 우생론, 민족개조론과 연결된 인종 개량 캠페인엔 식민지 근대 남성 지식인 다수가 참여했고 좌우 성향도 가리지 않았다. 이들의 활동은 동양인의 신체를 낙후된 것으로, 서양인의 신체를 이데아로 삼은 근대 한국의 미적 기준이 탄생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여성들 또한 서구인의 특징을 자기 몸에 적극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런 여성들은 ‘허영녀’, ‘사치녀’라고 손가락질을 받았다. 한국전쟁 이후 미용 성형이 대중화했지만 수술을 받는 여성을 향한 거부감은 점점 더 커졌다. 1960~70년대 한국은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이 내핍을 강조하는 상황이었다. 정권의 뜻을 헤아린 언론은 “여대생의 정형 붐”, “30분에 1만원을 잡아먹는 젖높이기 손님”이라며 ‘허영녀’들을 비판하고, 예뻐지려고 목숨까지 바치는 여성들이 있다며 “순교 정신”이라 비꼬기도 했다. 시골 부녀까지 성형 수술을 한다며 ‘한국병’이라 비난하는 목소리도 높았지만, 물결을 거스를 순 없었다. 1980년 12월 컬러텔레비전이 보급되고 개원의들이 명동, 압구정동에 병원을 열면서 연예-성형산업은 함께 팽창했다.

소비자본주의 시대가 활짝 열린 1990년대는 ‘나의 몸이 곧 나의 자아’가 되는 시대였다. 미인대회와 성형 산업의 전성시대였고 여성의 성 상품화도 극에 달했다. 미디어는 주부들도 ‘멋쟁이 신세대 미시’가 되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동시에 성형 미인은 비난의 대상이기도 했다. 1996년 한 남성 댄스 그룹이 발표한 ‘성형 미인’ 가사를 보면, 직설적인 조롱으로 가득하다. “고친 얼굴인 줄 알고 난 이쁘단 인사치레를 했었는데/ 지가 정말 예뻐 그러는 줄 알고 더 이쁜 척을 하려 하지/ 어이없게.” 가사 속 남성은 성형을 “신종 전염병”이라 일컫고 똑같은 얼굴의 성형 미인들이 결혼한 뒤 2세를 낳으면 모두가 놀란다며 비웃는다.

2010년대에 이르러 한국 여성의 성형은 세계적 관심을 받게 된다. 2013년 미국의 소셜 뉴스 사이트 ‘레딧’ 게시판에 미스코리아 후보 20명의 사진이 올라왔다. 미국 인터넷 매체 <허핑턴 포스트>, 영국 황색 저널 <데일리 메일> 등은 ‘한국의 성형 광풍’이 여성들의 얼굴을 똑같이 만들어버렸다고 떠들썩하게 보도했다. (사실은 특정 지역의 후보들이었고, 착시일 뿐 같은 얼굴도 아니었지만 한국 언론은 ‘나라 망신’이라고 기사 제목을 달았다.) ‘페미니스트 철학자’로 알려진 마사 누스바움 시카고대 석좌교수는 한국이 “세계의 성형 수술 중심지”라며 한국인들이 서양인의 미적 이상에 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익스플레인: 세계를 해설하다> 성형 수술 편(2021)은 “성형 수술이 통과의례가 된 나라”가 있고 “이 나라 20대 여성의 3분의 1이 성형 수술을 받는다”고 전한다. 한국을 가리킨다.

하지만 ‘성형 강국 한국’의 ‘자연 미인’ 사랑은 지대하다. 만화가 마인드시(C)가 2014년 발표한 웹툰 <강남 언니>, <강남미인도>에는 성형 수술한 여성들이 서로의 똑같은 얼굴을 보면서 짐짓 자기가 더 낫다는 우월감을 느끼고, ‘자연 미인’ 앞에서는 열등감을 토로하는 상황 등이 우스꽝스럽게 그려진다. 작가는 여성 혐오가 아니라 성형 산업을 비판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자연 미인 > 성형 미인 > 못생긴 여자’라는 식으로 여성을 위계화했다는 비판도 쉽게 누그러지지 않았다.

분명한 건, ‘성형 미인’이란 딱지가 붙은 여성들이 나라 안팎으로 과도하게 대상화, 희화화 되었다는 점이다. 2008년부터 3년간 서울 강남의 한 성형외과에서 일하며 현장을 참여 관찰한 과학기술학자 임소연은 ‘성형 미인’에 대한 뿌리 깊은 대상화를 비판한다. 그는 최근작 <나는 어떻게 성형미인이 되었나>에서 오늘날 한국 여성들이 성형하려는 이유가, 백인 여성을 닮으려고 하는 ‘인종주의 이데올로기’에 포섭된 탓이 아니라 그저 ‘예쁜 한국 여성’이 되고 싶어한 것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여성의 몸 변형에 대한 한국의 남성 지식인들이나 서구 지식인들의 ‘비평적 관심’은 연구자의 눈으로 볼 때도 왠지 불편한 것이었다. 임소연은 ‘성형 미인’에 대한 그들의 대상화가 성형 수술을 한 ‘당사자’들의 목소리와는 결코 연결되지 않는다고 밝힌다. 지식 권력을 쥔 그들의 시선은 어쩌면 지적으로 우아하게 포장한 모멸과 천대라고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한국에서 미용 성형 수술이 흔한 것만은 사실이다. 국제미용성형수술협회(ISAPS)의 2011년 조사를 보면, 한국은 인구 1000명당 성형 수술을 받은 횟수가 약 13.5건으로 세계 1위다. 그러나 이 통계는 성형외과 전문의만을 대상으로 해서 실제론 훨씬 더 많은 성형수술이 이뤄진다고 보아야 맞는다. <성형>을 쓴 여성학자 태희원은 “한국 사회에서 성형은 이미 일상화되고 정상화되었다”고 말한다. ‘신자유주의 한국’에서 이제 미용 성형은 죽을 때까지 이뤄지는 중단없는 자기 개조 프로젝트의 하나일 뿐이라는 것이다.

최근 한 성형외과 의사의 유튜브를 보았다. 그는 미용 성형 수술이 삶을 바꾸는 데 부차적인 수단일 뿐이며, 먼저 자신의 마음을 돌보라고 조언했다. 수술로 아름다워지고 싶다는 독자에게 ‘마음의 미를 취하라’고 답변하던 100년 전 전문가의 말이 떠올랐다.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100년간 ‘성형 미인’에 대한 비난과 ‘자연 미인’을 찬양하는 극단적 담론 사이에 모든 이의 몸이 혼란스럽게 놓여 있었다. ‘성형 미인’을 조롱하는 이들조차 자기 몸에 대한 평가가 어느 순간 삶의 성적표처럼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성형 수술을 하든 하지 않든, 우리는 모두 몸 변형의 가능성을 열어 놓고 산다.

강남 성형외과 광고판. <한겨레> 자료사진

*참고자료 : 1964년 1월11일치 <경향신문>, 1966년 7월3일치 <조선일보>, 1968년 3월12일치 <동아일보>, 1979년 3월23일치 <동아일보>, <예쁜 여자 만들기>·<육체의 탄생>(이영아 지음), <지혜롭게 나이 든다는 것>(마사 누스바움·솔 레브모어 지음, 안진이 옮김)



이유진 | 토요판 선임기자
한겨레 편집국 문화부, 편집부, 사회부 기자를 거쳐 책지성팀장과 토요판 부장을 지냈다. 대학원에서 여성학과 문화학을 공부했고 감염병과 주부주체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지성이 금지된 곳에서 깨어날 때>가 있고, <엄마도 아프다> <종이약국>을 다른 필자들과 함께 썼다. ‘바디올로지’는 ‘몸(body)’과 ‘학(-logy)’의 합성어로, 지난 100년 동안 미디어를 통해 유포된 몸 담론을 씨앗으로 전쟁터나 다름 없는 몸과 젠더, 장애, 노화 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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