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재벌집 막내아들` 돌풍 일으켰다

2022. 12. 13. 19: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하재근 문화평론가

JTBC '재벌집 막내아들'이 11회 시청률 21.1%를 기록하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한동안 OTT에 밀려 위축됐던 기성 채널에서 모처럼 히트작이 나온 것이다. 특히 JTBC는 올해 선보인 드라마들이 대부분 한 자릿수 시청률일 정도로 고전해왔다. 그런 흐름을 단번에 뒤집을 정도로 '재벌집 막내아들'의 돌풍이 거세다. CJ ENM의 콘텐츠 영향력 지수 조사에선 3주 연속으로 영향력 있는 프로그램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 프로그램은 과거로 돌아가 새로 삶을 시작한다는 설정의 이른바 '회귀물'이다. 순양그룹 오너 일가의 수발을 들던 주인공 윤현우가 의문의 죽음을 당한 후, 과거로 돌아가 순양 진양철 회장의 초등학생 막내 손자 진도준이 된다.

이런 설정이 시작되자마자 큰 환영을 받은 것은 비슷한 상상을 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재벌집 자식으로 태어나면 어떨까' 이런 식의 상상 말이다. 인간은 보통 결핍이 클수록 큰 욕망을 갖게 된다. 배가 고플수록 많은 음식을 소망하는 것처럼 말이다. 재벌을 상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건 그만큼 우리 사회에 물질적 결핍이 크다는 이야기다.

이건 절대적 궁핍이 아닌 상대적 결핍이다. 양극화 구조 속에서 부를 욕망할 수밖에 없는 불안한 청춘들이 이런 결핍을 많이 느낀다. 그래서 재테크에 몰두하면서 부자 되기를 꿈꾼다. 그때 흙수저 주인공이 재벌집 막내 금수저로 다시 태어난다는 설정의 드라마가 나오자 관심이 폭발한 것이다.

이 작품의 시청률 고공행진엔 중년남성들도 한몫했다. 보통 중년남성들은 드라마보다는 시사, 운동경기 등에 관심을 갖는다. 그런 중년남들이 모처럼 '재벌집 막내아들'이라는 드라마에 반응한 것이다. 그것은 이 작품이 과거 재벌집으로 돌아간 것과 연관이 있다.

과거로 돌아갔기 때문에 과거의 역사적 사건들이 펼쳐진다. 그런데 서민으로 돌아갔으면 역사적 사건들이 먼 이야기로 나오겠지만, 재벌집이기 때문에 그런 사건들과 밀접하게 엮여 더 생생하게 표현된다. 예를 들어, 1987년 대선 당시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후보 측이 경쟁적으로 순양가에 지원을 요구한다거나 진양철 회장이 중동 출장길에 올랐다가 KAL 858기에 탈 뻔했다는 설정 등이다. 한국 경제의 명운을 가른 순양가의 반도체 산업 도전기, IMF 사태 직전의 삼성자동차와 기아자동차를 연상하게 하는 설정도 중년 남성들의 과거 기억을 소환했다.

순양가는 삼성그룹을 떠올리게 하고, 진양철 회장은 이병철 회장과 이건희 회장을 합친 것처럼 느껴지는 캐릭터다. 이밖에도 정주영 회장과 흡사한 캐릭터라든가, IMF 사태 직후의 주식열풍과 닷컴버블, 상암DMC 개발 등도 그려졌다. 시청자는 실제와 드라마를 비교하며 누가 누구를 모델로 한 것인지, 극중 사건과 실제 사건은 얼마나 흡사한지 등을 따져본다.

이러면서 신드롬이 형성됐는데 여기서 놀라운 건 신드롬의 주인공이 흙수저 출신 환생자인 진도준이 아니라 진양철 회장이라는 점이다. 특히 젊은 시청자들이 진양철 회장에 열광했다. 진도준이 '북한의 세습은 비판하면서 왜 재벌 세습엔 관대한가'라며 순양에 칼끝을 겨누자 인터넷에선 진도준에 대한 비판이 일었다. 반면에 진양철 캐릭터에 대해선 이병철, 이건희 회장의 반도체 개발 뚝심 등이 회자되며 찬사가 나타났다.

과거 80년대 대학생들 사이에서 재벌이 매우 부정적인 느낌이었다면,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선 다른 흐름이 감지된다. 2000년대 이후 한국 경제의 놀라운 성취에 이른바 '국뽕'을 느끼는 젊은이들이 많아졌다. 그런 가운데 세계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도 자부심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우리가 저개발 국가였던 시절에 기업을 일으킨 1, 2세대 기업인들을 더 크게 인정하게 됐다.

한동안 자기계발 담론이 유행했었는데 재벌 창업주들은 그런 자기계발의 롤모델로 제격이다. 재테크도 유행했는데 이 부분에서도 재벌은 압도적 원톱이다. 이래서 재벌 창업주를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었고,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진양철 회장이 딱 그런 시각에 맞는 캐릭터로 그려졌다.

앞에서 결핍이 클수록 부에 대한 욕망이 커진다고 했는데, 동시에 부자에 대한 선망도 커진다. 그래서 부자의 상징인 재벌에 대한 선망이 커졌다. '재벌집 막내아들'은 이런 시대에 딱 맞는 맞춤 드라마였다.

Copyright © 디지털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