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정담] 페루의 비극

장박원 기자(jangbak@mk.co.kr) 2022. 12. 13.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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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타우알파는 수백만 명의 백성과 8만명의 군대를 거느린 잉카제국의 황제였다. 그는 1532년 11월 16일 스페인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를 만났다. 하지만 피사로에게 생포되며 비극을 맞았다. 고작 168명에 불과했던 스페인 선원과 군인들은 황제를 인질로 잡고 잉카 사람들을 살육했다.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총·균·쇠'에서 이 사건을 유럽이 신대륙을 지배하기 시작한 '근대사의 결정적 순간'이라고 평했다.

잉카 문명의 발상지 페루가 요즘 다시 위태롭다. 페드로 카스티요 전 대통령이 지난 7일 탄핵되며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카스티요 지지자들이 수도 리마를 비롯해 전국 곳곳에서 격렬한 시위를 벌이고 있다. 경찰과 충돌하며 사상자도 늘고 있다. 시골 초등교사 출신인 카스티요는 지난해 7월 대선에서 우파인 민중권력당 후보 게이코 후지모리를 0.25%포인트의 근소한 차이로 따돌리며 권력을 잡았다. 하지만 집권 초기부터 부패 의혹이 불거졌고 직권 남용 등 추가 범죄 혐의로 검찰 수사까지 받았다. 의회는 작년 말과 지난 3월에도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세 번째 탄핵에 맞서 카스티요는 의회 해산까지 발표했지만 대다수 의원이 탄핵에 동조하며 밀려나게 됐다.

페루는 우파와 좌파의 갈등이 극심하다. 이 때문에 최근 6년간 탄핵 등으로 대통령이 6명이나 교체됐다. 2020년엔 5일 동안 대통령이 3번 바뀌는 일도 있었다. 페루에서 대통령은 국가 원수지만 의회 권력이 더 강하다. 페루 헌법에서 대통령을 탄핵할 수 있는 요건을 폭넓게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카스티요 탄핵도 '영구적인 도덕성 결여'라는 모호한 규정이 사유가 됐다. 좌우가 대립하는 국론분열의 고질병을 치유하지 못하면 페루의 정치 불안은 계속될 것이다. 경제도 망가질 게 뻔하다. 민주주의 수준과 국가 시스템이 다른 한국과 페루를 비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두 진영으로 갈려 사생결단으로 싸우는 정치권 모습은 비슷한 점이 있다. 페루의 비극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볼 수 없는 이유다.

[장박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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