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슈베르트처럼
클래식 음악에서 가장 아름다운 멜로디를 작곡한 사람은 슈베르트라는 내 의견에 이견을 제기할 사람을 거의 없을 듯하다. 음악을 전공하는 사람들이 작곡가를 바라보는 시선은 클래식 애호가들과 조금 다르다. 전공에 따라서도 각자 의견이 분분하다. 기악 연주자와 성악가가 다르고, 또 연주자와 작곡가들이 다르다. 물론, 지휘자는 또 다른 각도에서 작곡가들에게 접근한다. 그런데 슈베르트는 이 모든 분야의 사람들로부터 단연 톱으로 꼽힌다.
슈베르트라는 사람을 상상하면, 그의 음악처럼 애수에 젖은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분위기 넘치는 바바리코트를 입고, 낙엽이 무성한 공원 벤치에 앉아 먼 곳을 응시하는 슈베르트. 매력적인 곱슬머리에, 슈베르트 출생기념관에 보관된 동그란 금테 안경 너머로 보이는 선한 눈. 생각만 해도 사랑스러운 그의 모습이 그려진다.
자! 다들 환상에서 깨어나자! 그의 키는 유난히 작았으며(155㎝), 당시 기준으로는 여성들에게 인기가 전혀 없는 얼굴상이었다. 또한, 청결과는 거리가 멀어서 항상 악취가 진동했는데, 어떤 모임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면 '아마 이곳에 지금 슈베르트가 있나 보다'고 추측했을 정도다.
그런데도 슈베르트는 모든 음악인과 애호가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특히, 피아니스트에게 슈베르트는 정복의 대상이 아닌 사랑의 대상이다. 필자도 1997년 슈베르트 탄생 200주년 기념 독주회를 했고, 그의 소나타들로 앨범을 내기도 했다. 지금은 선생이 된, 내가 아끼는 옛 제자 중 한 명은 슈베르트의 곡들로만 몇 년째 연주회를 하며 슈베르트와 열애 중이다.
그렇지만, 사랑이 평탄치만은 않은 것이 세상의 진리. 그의 작품은 아름다운 만큼 연주하기가 어렵다. 정확히 말하면 암기하기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유는 한마디로 작곡 공부를 체계적으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곡에는 소위 말하는 패턴이 있는데, 슈베르트는 그 패턴을 제대로 따르지 않았다. 그는 비슷한 부분이 재현될 때 앞서 제시된 반주부와 교묘하게 다르게 작곡을 했다. 이런 부분이 전곡을 통해 지속되다 보니, 연주자의 입장에서는 야속하기 짝이 없다. 만약 베토벤이나 리스트처럼 최고의 피아니스트 작곡가 같았으면 이렇게 작곡을 했을 리가 없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오죽하면 연주자에게 있어 '모차르트, 베토벤, 쇼팽, 리스트 같은 대피아니스트들의 작품이 안 외워지면 자신을 탓하지만, 슈베르트가 안 외워지면 슈베르트를 탓한다'는 표현이 생겨났겠는가?
신기한 것은, 그의 멜로디를 연주하는 순간 이런저런 불만들이 한순간에 사라진다는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 멜로디에 '중독'이 돼버려 반주부의 비논리도 창의성으로 바뀌고, 그가 뿜었던 악취도 그 어떤 꽃내음보다 아름다운 향기로 둔갑하는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 나는 그 이유가 그의 멜로디가 가진 진정성에 있다고 믿는다. 인위적으로 꾸미려고 하지 않고, 다소 단순하지만, 그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고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슈베르트의 진정성과 용기가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고 평가하는 각박한 삶에, 슈베르트가 들려주는 진정성이라는 해답이 우리 사회에 가장 결핍된 부분을 제시하고 채울 수 있지 않을까.
[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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