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보·노동 손질 속도전 나선 윤 대통령, ‘반문재인’ 정책 추진 본격화

유정인 기자 2022. 12. 13.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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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보 정상화 시급”…‘문재인 케어’ 폐지
주52→69시간 근무제 권고안에 “흔들림 없이 개혁 추진”
개혁에 입법 필요해 곳곳에서 여야 충돌 예상
윤석열 대통령이 13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13일 건강보험과 노동시장‘개혁’을 동시에 화두로 띄웠다. 각각 ‘문재인 케어’(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와 주52시간 근무제 폐지를 골자로 삼은 개혁안을 내세웠다. 국정 전 분야에서 전임 정부 색깔을 지우고 윤석열표 정책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작업에 본격 착수한 것으로 풀이된다. “포퓰리즘 정책” 등 전임 정부 비판을 방향 전환 근거로 내세워 정책 추진 과정에서 진영간 충돌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국민 건강을 지키는 최후 보루인 건강보험에 대한 정상화가 시급하다”며 “건강보험 개혁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말했다. 앞서 강조한 노동·연금·교육 개혁에 더해 건강보험 개혁을 주요 개혁 과제로 못박았다.

건강보험 개혁 필요성을 두고는 전임 정부에 화살을 돌렸다. 윤 대통령은 “지난 5년 간 보장성 강화에 20조원을 넘게 쏟아 부었지만 정부가 의료 남용과 건강보험 무임승차를 방치해 대다수 국민에게 부담이 전가되고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국민 혈세를 낭비하는 인기영합적 포퓰리즘 정책은 재정을 파탄시켜 건강보험제도의 근간을 해치고 결국 국민에게 커다란 희생을 강요하게 돼 있다”고 ‘문재인 케어’를 직접 겨냥했다.

‘문재인 케어’는 문재인 정부의 국민 의료비 부담 완화 정책으로 건강보험 보장률을 높이는 게 골자다. 건강보험 적용 분야를 넓히면서 3대 비급여(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간병비) 항목도 단계적으로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안 등이 담겼다.

문재인 케어 폐지는 예견된 수순으로 평가된다. 윤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문재인 케어는 비급여의 무차별적 급여화로 재정만 악화”(공약집), “지속 불가능한 보건 포퓰리즘 ‘문 케어’”(지난해 11월 19일) 등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이날 “건강보험 급여와 자격기준을 강화하고 건강보험 낭비와 누수를 방지해야 한다”면서 절감하는 재원으로 의료사각지대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대신 중증 질환 치료와 필수 의료를 강화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건보 개혁을 꺼내든 이유를 두고 “(앞서 밝힌 노동·연금·교육 등) 3대 개혁과제 외에 다양한 개혁과제가 존재한다”며 “건보 개혁이 필수라고 한 것은 그만큼 재정적자가 심각하고 피해는 사회적 약자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중요한 과제로 놓고 국회와 심도 깊게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노동 개혁에서도 ‘반문재인’으로 정책 방향 전환을 확고히 했다. 윤 대통령은 전날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발표한 노동시장 개혁 권고안을 언급하면서 “권고내용을 토대로 조속히 정부의 입장을 정리하고 우리 사회의 노동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흔들림 없이 개혁을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권고안을 두고는 “근로시간 제도의 유연성과 탄력성을 높이고 임금체계를 직무성과 중심으로 개편하는 한편, 5인 미만 사업장의 근로기준법 적용 문제 등 취약계층 보호를 위한 다양한 방안들이 포함되어 있다”고 평가했다. 사실상 권고안에 힘을 실으면서 관련 부처에 조속한 정리를 촉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래노동시장연구회 권고안은 현행 주당 52시간으로 제한된 법정 근로시간을 최대 69시간까지 허용하는 안을 골자로 한다. 윤 대통령이 근로시간 유연성 확대를 노동 개혁의 핵심 과제로 내세워온 만큼 권고안과 유사한 수준으로 연장근로시간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현행 제도는 문재인 전 대통령 공약으로 문 전 대통령 취임 2년차인 2018년 7월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됐다.

윤 대통령이 속도전에 나선 데는 취임 2년차를 앞두고 윤석열표 정책을 본격적으로 펼쳐 정권교체를 체감하게 해야 한다는 뜻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오는 15일 국정과제 점검회의에서도 건보·노동 개혁이 주된 주제로 다뤄질 예정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 청사 집무실에 120대 국정과제를 담은 판을 세워뒀다면서 “국무위원들께서도 120대 국정과제 책자를 늘 보고, 또 완벽하게 꿰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국정과제 점검회의는 국민과의 약속이 어떻게 이행됐는지 점검하고 내년도 업무보고에 중요하게 반영하기 위한 것”이라며 “내년에 속도감있게, 국민이 체감할 수 있도록 다양한 국정과제 개혁과제를 실천하는 게 업무보고의 주된 이유”라고 했다. 윤 대통령이 ‘반문재인’ 기치를 내걸고 집권한 만큼 선명한 노선을 펴는 것이 지지층 결집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판단도 깔려있을 수 있다.

정책 추진 과정은 녹록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개혁 과제는 법 개정 사안을 담고 있다. 건보 개혁은 건강보험법, 주당 법정 근로시간 등 노동 개혁은 근로기준법 등을 손봐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이 과반(169명)을 차지하는 ‘여소야대’ 국회를 감안하면 입법 과정 곳곳에서 여야가 충돌하며 벽에 부딪칠 가능성이 높다.

당장 민주당은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오영환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윤석열 정부는 정부의 역할을 국민께 떠넘기는 민폐 정부가 되고자 하느냐”며 “섣부른 정책 추진으로 국민 부담을 더하려다가는 역사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임을 경고한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이날 국회에서 처리가 지연되고 있는 내년도 예산안을 두고는 “정부의 첫 예산안 법정기한이 열흘이 넘게 지나가서 매우 안타까운 마음”이라며 조속한 처리를 당부했다. 특히 여야 핵심 쟁점인 법인세 인하 등 세제 개편안을 언급하며 “세제 개편을 통해 국민의 과도한 세부담을 정상화하고, 법인세를 인하해서 기업 투자와 일자리를 늘리고, 경제활력이 제고될 수 있도록 초당적 협력을 부탁드린다”고 했다. 윤 대통령이 거듭 법인세 인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여당의 협상 폭은 축소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유정인 기자 jeong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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