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수능’이 만든 재수생·이과 초강세···고교 교육과정 파행·학생 진로선택 왜곡 가속화
지난달 실시된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도 다양한 지표로 확인된 ‘재수생·이과 강세’가 고교 교육과정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어·수학 점수를 선택과목 응시생 평균에 따라 환산하는 현행 방식 탓에 이과 선택과목을 택한 학생들이 압도적으로 유리해지고, 이과생들의 문과 교차지원이 늘어나면서 재수생 증가와 강세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2년째 반복되고 있다. ‘통합수능은 이과에 유리하다’는 학습효과로 인한 고교 교육과정 파행, 적성을 고려하지 않은 교차지원으로 인한 피해 등이 앞으로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3일 서울중등진학지도연구회가 전국 87개교 고3 수험생 2만6545명의 2023학년도 수능 실채점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국어·수학·탐구 영역의 표준점수 합이 최상위권 수준인 400점 이상인 학생은 자연계열 2.02%, 인문계열 0.13%로 지난해 수능(3.20%, 0.36%)보다 각각 1.18%포인트, 0.23%포인트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최상위권 중 재학생 비율이 지난해보다 줄었다는 것은 졸업생 등 이른바 ‘N수생’의 최상위권 내 비율이 그만큼 늘었다는 뜻이다.
통합수능 첫해였던 2022학년도 수능에서도 재학생과 졸업생의 성적 격차가 예년보다 컸는데, 올해 수능에서는 더 커졌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따르면 2022학년도 수능에서 졸업생의 국어와 수학 표준점수 합의 평균은 218.8점으로 재학생(193.3점)보다 25.5점 높았다. 2021학년도 수능에서는 문과 21.9점, 이과 22.4점으로 이보다 격차가 작았다. 올해 수능에서는 졸업생과 검정고시생을 합한 응시생 비율이 31.1%로 26년만에 최고였다. 이만기 유웨이중앙 교육평가연구소장은 “대체로 졸업생들이 수학에 강하기 때문에 수학의 영향력이 컸던 올해 수능에서 재학생과 졸업생 간 점수 차가 더욱 커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국어·수학영역의 선택과목별 유불리에 따른 이과 선호 현상이 재수생 증가와 강세로 이어졌다. 2022학년도 수능부터 문·이과를 통합한 선택형 수능이 실시되면서 ‘성적이 좋은 학생들이 많이 응시한 과목을 선택할수록 표준점수가 높아지는’ 점수 보정법이 도입됐다. 이에 따라 주로 이과생이 선택하는 수학 미적분을 선택한 학생들이 대입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해졌고, 미적분을 선택한 이과 학생들이 문과로 교차 지원하는 현상이 활발해졌다.
통합수능이 시행된 2년간 학습효과가 쌓이면서 수학 교육과정이 파행적으로 운영되는 폐해도 발생했다. 김상우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수학교육혁신센터 연구원은 “학생들에게 과목 선택권을 보장한다는 취지라면 기하나 확률과통계를 선택해도 아무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보니 우수한 학생들이 몰리는 미적분의 난도는 크게 올라가고, 기하·확률과통계는 수능 선택과목인데도 선택하기 어려워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적성과 관계없이 상위권 대학 진학을 위해 이과 학생들이 인문사회계열 학과에 교차 지원하는 현상이 갈수록 확대되면서 반수·재수를 택하는 학생들이 늘어났다는 것도 문제다. 고등학교 3년 동안 의대·공대 등을 지망하며 진로를 설계했던 이과생들이 인문사회계열 학과에 진학했다가 다시 원래 진로를 찾아가면서 반수나 재수를 택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것이 입시업계의 분석이다. 앞으로 이 학생들이 전과 등으로 이공계열로 이탈할 경우 상위권 대학 인문사회계열 학과들이 위기를 맞을 가능성도 있다.
유성룡 에스티유니타스 교육연구소장은 “통합수능 이전처럼 같은 선택과목에 응시한 학생 집단 내에서 상대평가로 점수를 산출하는 등 개선책을 찾아야 고등학교 교육과정 파행과 반수·재수생 양산 등 사회적 손실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남지원 기자 somni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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