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북핵수석대표 만나러 자카르타로 가야 하는 현실[기자메모]
윤석열 정부 들어 한·미·일은 북핵수석대표 회동을 3개월에 한번 꼴로 사실상 정례화하고 있다. 지난 6월 서울에서 3국 대표들이 만난 데 이어 9월에는 도쿄에서 만났다. 세번째 회동은 순서상 미국이 호스트를 할 차례다. 그런데 13일 3국 북핵 수석대표 대면 회동은 워싱턴이 아닌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렸다. 성 김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인도네시아 주재 미국 대사를 겸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전례없이 무력도발의 강도와 빈도를 늘려가면서 핵능력을 나날이 키워가고 있지만, 조 바이든 행정부는 출범 이후 지금까지 북핵문제 전담자를 두지 않고 있다. 북한 상황이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있는데 성 김 대사는 국무부, 백악관, 의회와 멀리 떨어진 자카르타에서 ‘가욋일’하듯 북핵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가 가끔 서울을 방문할 때도 개인 일정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실제 방문 목적이 헷갈릴 정도다.
본업을 따로 두고 북핵 업무를 ‘알바’ 취급하는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와 만나 업무 협의를 하는 것이 효율적이거나 창의적일 리 없다. 지금 한·미·일 북핵수석대표 협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외교가 아니라 ‘보여주기 위한 외교’다. 언제부터인지 일이 생기면 관련기관 대책 회의, 각국과 유선 협의 등을 갖고 이런 내용을 보도자료로 신속히 내는 것이 ‘외교적 대응’의 전형이 되버렸다. 이제는 담당자들도 이런 일을 하는 것인 외교인 것처럼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 세월이 30년간 쌓인 결과가 ‘핵강국 북한’의 출현이다.
성 김 대사가 대북특별대표를 겸임하고 있는 것은 북핵 문제가 미국의 대외정책에서 상대적으로 중요한 사안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미국의 관심은 온통 미·중 전략경쟁과 우크라이나 전쟁에 쏠려 있다. 북한과 한반도 문제는 미·중 경쟁의 틀 속에 존재하는 부속 요소로 변해가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사정이 다르다. 북핵 문제는 한국에게 사활이 걸려있는 중요한 문제다. 특히 최근 북한의 거침없는 도발에 국내에서는 독자 핵무장 주장이 봇물처럼 쏟아질 정도로 국민적 불안감이 커진 상태다. 그럼에도 미국은 한국에 대한 안보공약이 불변이라는 말만을 되뇌이면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한·미·일 협력과 공급망 재편 등의 파트너로서 한국의 역할에만 관심을 보이고 있다.
당장 북핵 문제에 해결책을 내놓으라는 것도 아니고 북핵을 대외정책의 최우선 순위로 올려달라는 것도 아니다. 다만, 좀 더 진지하고 신중하게 북한 문제에 접근하는 자세를 보여달라는 것이다. 미국이 북핵 문제를 ‘겸임 대사’가 할 일거리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고 ‘고위급 풀타임 전임자’를 두기가 정치적으로 부담스럽다면 급을 낮춰서라도 진지하고 창의적인 의견 교환이 이뤄질 수 있는 실무적 협의 채널을 마련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바란다.
유신모 전문기자 sim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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