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날개 없는 천사 호스피스 자원봉사자

2022. 12. 13.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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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로병사(生老病死)! 인간은 누구나 늙고 병들어 죽기 마련이다. 잘 사는 것(Well-being)만 중요한 게 아니다. 잘 죽는 것(Well-dying)도 중요하다. 늙고 병들어 쓸쓸하게 죽음을 앞둔 사람들도 많다. 이런 이들을 돌보는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들도 많다. 불우이웃이 생각나는 12월을 맞아 한 호스피스 자원봉사단체를 찾았다.

호스피스(Hospice)는 돌봄의 종류다. 말기 환자, 불치병, 만성질환 등으로 소생할 수 없는 환자가 편안히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다. 죽음을 앞둔 사람이 갈 수 있는 곳은 대학병원 호스피스 병동이나 호스피스 전용 시설이다. 하지만 비용이 많이 들어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은 갈 수 없다.

마지막 죽음조차 돌보는 이가 없는 말기 환자를 돌보는 천사들이 있다. 내가 사는 경기도 성남시에 있는 호스피스 봉사단체 ‘사랑하는 호스피스’(대표 이학재, 이하 호스피스 봉사단체)다. 2010년 1월에 설립된 후 12년째 봉사하고 있는 단체다. 회원은 약 100여 명이다. 이학재 대표와 약속을 한 후 사무실로 찾아갔다.

호스피스 봉사단체가 있는 주상복합건물 지하상가.

호스피스 봉사단체가 있는 곳은 주상복합건물 지하상가다. 2010년 설립 당시부터 교회 빈 사무실을 무료로 이용했는데, 교회 사정으로 더는 이용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한 호스피스 회원이 운영하는 재가복지센터 사무실 한 켠을 빌려 사용한다. 호스피스 봉사는 후원금으로 운영하는데, 사무실 임대료를 낼만큼 넉넉한 형편이 아니다.

이 봉사단체가 돌보는 환자는 약 15명이다. 지역 보건소나 지인 등을 통해 호스피스 봉사를 요청한 말기암 환자가 대부분이다. 호스피스 봉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가정 호스피스, 임종기 심리적 돌봄,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 죽음을 앞둔 사람을 돌보는데 필요한 기본소양 교육을 받아야 한다. 

매주 화요일 말기암 환자 가정방문하는 곳을 따라가 보았다.

기본소양 교육을 받고 열심히 봉사하는 회원은 약 15명 정도다. 회원들은 매주 화요일 환자를 찾아 호스피스 봉사를 한다. 이학재 대표 개인 소유의 소형 차량을 타고 유형순 회원과 함께 성남시 구도심 말기암 환자 가정방문 시 동행해봤다.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 찾아간 환자는 말기암 환자 김경숙(가명) 씨다. 딸이 하나 있지만, 엄마를 돌볼 여력이 없다. 그녀는 2021년 5월 말기암 판정을 받았다. 당시 병원에서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돌볼 가족이 없어 지역 보건소로부터 돌봄을 부탁받아 1년 넘게 호스피스 봉사를 받는 환자다.

마스크 착용과 손 소독 등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킨 후 방문한다.

마스크 착용과 손 소독 등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킨 후 집으로 들어갔다. 그녀의 유일한 가족이자 친구는 반려견 뿐이다. 호스피스 봉사자들이 도착하자, 그녀는 매우 반가워했다. 내게도 흔쾌히 들어오라고 한다. 김 씨는 이학재 대표와 유형순 회원 앞에서 병원 오간 얘기 등 일상 얘기를 쉼 없이 쏟아낸다. 

말기암 환자가 영정사진을 들고 환하게 웃으며 기뻐하고 있다.

누구나 죽음을 앞두면 신경이 날카롭기 마련이다. 김경숙 씨도 처음에는 그랬다. 봉사회원 방문도 거절했었다. 그런데 1년 넘게 호스피스 봉사를 받으며 이제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얼마 전에 영정사진을 찍어달라고 해서 사진에 소질이 있는 회원이 직접 찍어주었다. 그리고 보정 작업을 거쳐 액자로 만들어 주니 너무 좋아한다.

환자가 많아지면 힘든 것이 재정이다. 환자를 찾아갈 때 빈손으로 가지 않는다. 과일이나 죽 등을 준비한다. 이런 비용은 십시일반으로 모이는 후원금으로 충당한다. 적은 돈들이 모여 환자를 위해 쓰인다. 그리고 모든 지출은 공개한다.

죽음을 앞둔 환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람을 만나는 일이었다.

이학재 대표가 10년 넘게 봉사하면서 가장 가슴 아팠던 환자가 있었다. 4살 때 보육원에 맡겨져 홀로 살아온 박영미(가명) 씨다. 암으로 고생하는 그를 호스피스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보살폈다. 그녀를 위해 생일상을 차려줬는데, 박영미 씨는 태어나서 처음 받아봤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 대표는 그 모습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고 한다.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들이 임종을 앞둔 환자 목욕을 시키고 있다.(출처=사랑하는 호스피스)

돌보던 환자가 갑자기 상태가 나빠져 중환자실로 입원할 때는 병원으로 찾아간다. 병원에서 의사가 임종을 준비하라고 하면, 마지막으로 목욕을 시켜드린다. 마지막 가는 길을 깨끗한 몸으로 떠나라고 배려하는 것이다. 내 가족이라도 쉽게 하지 못하는 일을 호스피스 봉사자들이 하는 것이다. 이런 얘기를 들으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호스피스 봉사단체 이학재 대표는 내년이면 70세다. 그녀는 소외된 이웃들이 삶의 마지막 길을 존엄하게 떠날 수 있도록 봉사를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호스피스 봉사를 하는 이학재 대표는 내년이면 70세다. 자신 몸 하나 추스르기도 힘든데 이렇게 봉사를 10년 넘게 하는 이유를 물었다. 이 대표는 “사람은 누구나 귀하게 태어납니다. 그런데 사는 것도, 마지막 가는 것도 천차만별이죠. 평생 대접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하고 살아오신 분들도 많은데, 마지막 가는 길도 초라하게 가게 할 수는 없죠. 이런 분들이 존엄하게 떠날 수 있도록 돌보는 것은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해야 할 일이죠. 대가를 바라고 한다면 못 합니다”라고 환하게 웃으며 말한다.

임종을 앞둔 환자 가정방문은 1~2시간 정도 소요된다. 호스피스 봉사자들은 환자 앞에서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 그냥 들어줄 뿐이다. 환자들은 한 얘기를 하고 또 하지만 봉사자들은 새로운 얘기처럼 맞장구를 쳐주며 듣는다. 어쩌면 봉사자들이 오는 이 시간이 환자의 유일한 소통 시간인지 모른다. 임종이 가까운 환자는 더 자주 방문한다.

호스피스 봉사자들이야말로 이 시대 날개 없는 천사가 아닐까 싶다.

해마다 연말이면 불우이웃돕기를 한다. 거리에는 벌써 구세군 자선냄비가 등장했다. 불우이웃 중 가장 소외된 것이 죽음을 앞둔 환자들이다. 이들 중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고독사도 나온다. 이런 환자를 찾아 웰다잉은 아니더라도 고귀한 죽음이 되도록 봉사하는 호스피스 봉사자들이야말로 이 시대 날개 없는 천사가 아닐까.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이재형 rotcbl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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