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현의 창(窓)과 창(槍)]월드컵의 교훈,감성의 소비에서 가치의 생산으로!…학교체육 정상화가 해답

고진현 2022. 12. 13.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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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 고진현전문기자]2022카타르월드컵은 또다시 국민에게 넘치는 감동과 행복을 선사했다. 숨이 턱턱 막히는 열사의 땅에서 젖먹던 힘을 다 짜낸 선수들과 고국에서 밤잠을 설친 국민들은 보이지 않는 동아줄로 연결된 듯 에너지를 교감했다. 감동,그 자체였다. 국민들이 한마음으로 내지른 함성의 에너지가 선수들의 실핏줄에 고스란히 녹아들며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폭발했다. 이게 바로 스포츠의 위대한 힘이 아니고 무엇이랴.

월드컵 원정 16강이라는 쉽지 않은 열매를 따내고 귀국한 국가대표 선수들을 위한 대통령 만찬장에서 다시 한번 그들이 쓴 큰 역사는 주목을 받았다. 윤석열 대통령 역시 “어떠한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는 그런 의지를 여러분들이 보여주셨다. 저도 대통령으로서 국가가 어려운 일이 처할 때마다 책임을 갖고 일하겠다”며 선수들을 치하했다. 덕담 도중 감정이 북받친 듯 말을 이어가지 못하는 대통령의 모습에서 월드컵의 감동이 얼마나 큰지를 가히 짐작하고도 남았다.

대통령마저 울먹일 정도로 큰 감동을 안겨준 게 한국 체육의 전통이자 본령이라는 사실을 감히 부인할 사람은 없다. 우린 늘 그랬다. 스포츠를 통해 늘 하나가 되면서 체육인들이 쓴 큰 역사에 환호하고 열광만 했다. 체육인들이 국민에게 안겨준 감동과 기쁨 그리고 열정에 대해 깊은 고마움을 느끼고 더 나아가 이를 정책적 결과로 묶어낸 적은 있었던가. 솔직히 부끄럽다. 심각한 안면골절 수술에도 불구하고 국가를 위해 온몸을 내던졌던 주장 손흥민의 ‘꺾이지 않은 마음’은 과연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투혼? 어림없는 소리다. 극심한 통증을 마스크 안에 꽁꽁 숨겨둔 채 그라운드를 누빈 것은 투혼만으로는 결코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육체적 한계를 뛰어넘어 경기에 나선 그의 용기와 결단은 단순한 정신력의 차원이 아니라 애국심이라는 숭고한 정신이 뒷받침되지 않고선 불가능했던 일이다. 투혼을 뛰어넘는 애국심, 과연 위정자들이 그런 마음을 먹고 있다면 국민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캡틴 손흥민에게 쏟아진 국민의 찬사는 플레이에 대한 칭찬이 아니라 숭고한 정신에 대한 존경의 표현에 다름 아니다. 우리는 늘 체육을 통해 희망과 감동,그리고 뿌듯한 자부심을 만끽했다. 감성을 한꺼번에 폭발적으로 소비한 탓인지 이벤트가 끝나면 ‘레테의 강물’을 마신 듯 모든 것을 잊고 일상으로 돌아가곤 했다. 이제는 달라졌으면 좋겠다. 체육의 가치가 얼마나 중요하며 체육이 사회적으로도 얼마나 큰 역할을 담지하고 있는지를 뼈저리게 느꼈다면 열렬했던 감성적 공유가 구체적인 정책으로 반영되는 게 오히려 자연스럽다. 최근 한국 체육을 암흑기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사기가 땅에 떨어질대로 떨어졌으며 눈에 띄는 동기부여도 별로 없기 때문이다. 체육의 일부 폐해를 침소봉대해 마치 체육을 사회의 악으로 간주하는 선전 선동에 얼마나 많은 체육인들이 상처를 입었는지 모른다.

체육이 실의에 빠진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줄 때면 달콤한 립서비스로 생색내던 위정자와 정책 결정자들은 지난 시절을 되돌아보며 정신을 차려야 한다. 스포츠는 감성의 콘텐츠이긴 하지만 감성의 소비에서만 그쳐서는 곤란하다. 감성의 소비에서 멈추지 않고 이를 가치의 생산으로 바꾸는 게 필요하다. 감성의 소비를 가치의 생산으로 바꾸는 게 바로 정책의 몫이다. 지금 가장 신경쓰고 놓아야 할 주춧돌 같은 정책은 학교체육의 정상화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학생 신체활동지수의 오명에 시달리고 있다. 고등학교 체육시간이 주당 1~2시간에 불과하다. 입시위주 교육에 치여 고교 1,2학년이 주 2시간, 고교 3학년은 주 1시간에 각각 머물러 있다. 2024년에는 고교 2학년도 체육시간이 주 1시간으로 줄어들 예정이다. 초등학교 1,2학년은 아예 체육수업 자체가 없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멀리 가지도 말고 많은 걸 생각할 필요도 없다. 관점과 태도를 바꿔 학교체육 시간을 늘리는 것을 체육정책의 새로운 출발점으로 삼자고 건의하고 싶다.

지금까지 한국의 체육정책은 규제와 처벌 그리고 공급자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 모두가 학생선수만을 정책의 대상으로 삼은 결과다. 이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처벌이 아닌 지원,규제가 아닌 자율,그리고 공급자가 아닌 소비자 중심의 정책으로 전환하는 게 시대적 흐름이다. 그러기 위해선 학생선수뿐만 아니라 일반학생을 정책의 대상으로 삼는 패러다임 시프트가 요구된다. 학생선수를 학습이라는 잣대로만 재단하려는 시대착오적 발상도 포기하는 게 옳다. 직업선택과 자아실현을 위해 본인의 꿈과 희망을 펼칠 수 있는 환경과 토대를 만들어 주는 게 오히려 교육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시대적 흐름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감성의 소비에서 가치의 생산을 이끄는 체육정책의 변화, 이번 월드컵을 통해 위정자와 정책 결정자들이 각성하고 실천해야 할 울림있는 교훈이다.

<jhkoh@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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