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의 과학카페] 항암제 무력화하는 암세포 내 미생물의 정체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2022. 12. 13. 13:3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항암제 젬시타빈(dFdC)은 시티딘 유사물질로 암세포 안으로 들어가 DNA 합성을 방해해 작용한다(왼쪽). 암세포의 젬시타빈 내성은 내부에 존재하는 박테리아(녹색)가 젬시타빈을 다른 물질로 바꿔 없앤 결과로 밝혀졌다(오른쪽). 분자&세포 종양학 제공

다들 그렇겠지만 나이가 들수록 ‘생로병사’라는 말의 무게감이 점점 더 느껴진다. 아울러 암에 대한 두려움도 점점 커진다. 실제 우리나라 남성 열에 넷, 여성 열에 셋이 생애 동안 암에 걸리고 적지 않은 수가 암으로 생을 마감한다. 

1971년 미국 닉슨 대통령이 암과의 전쟁을 선포한 이래 미국뿐 아니라 여러 나라의 수많은 과학자와 의사가 암을 정복하려고 노력했고 나름 성과를 거두기도 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퇴’라고 상대를 속속들이 알아야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데 암은 여전히 미스터리 투성이이기 때문이다. 최근 학술지 ‘네이처’에 실린 한 논문을 읽으며 이런 실상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논문은 종양 내 미생물이 암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분석을 다루고 있는데, 먼저 종양 내 미생물(intratumoral microbe)이라는 용어부터가 낯설다. 종양 내부에 미생물이 살고 있다는 말인가. 종양 내 미생물은 생긴 지 얼마 안 된 용어로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연구자들은 종양에 미생물이 살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고 설사 발견되더라도 장내 미생물이 우연히 흘러 들어갔거나 실험 과정에서 오염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항암제 내성 박테리아 때문?

우리 몸에 발생하는 암 가운데 뇌와 뼈 등 일부를 뺀 대부분에서 박테리아와 진균 등 미생물의 존재가 확인됐다. 게다가 이들 대다수는 종양을 이루는 세포 사이의 공간이 아니라 암세포나 면역세포 내부에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암의 진행에 미치는 영향이 꽤 클 것으로 짐작된다. 사이언스 제공

종양 내 미생물이 어떻게 그 자리에 있게 된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불확실하지만, 이들의 존재가 우연은 아니고 게다가 암의 진행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게 드러나고 있다. 이야기는 10여 년 전 미국 브로드연구소 토드 골럽 박사팀의 실험실에서 시작됐다. 

당시 연구팀은 암의 항암제 내성 원인을 암세포의 추가적인 게놈 변이에서 찾는 데서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 시야를 넓혀 종양 미세 환경(암세포뿐 아니라 주변의 다양한 세포들을 포함한 생태계)를 분석해 답을 찾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종양은 암세포로만 이뤄진 덩어리가 아니라 내부를 관통하는 혈관과 다양한 면역세포, 섬유아세포 등이 뒤얽혀있는 상태다.

박사후연구원으로 합류한 라비드 스트라우스만 박사는 췌장암과 대장암에서 항암제로 쓰는 젬시타빈의 내성 메커니즘을 연구했다. 젬시타빈은 시티딘 유사체로 DNA 합성을 방해해 암세포가 증식하지 못하게 한다. 그런데 내성이 생긴 종양을 분석하자 젬시타빈이 다른 분자로 바뀌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젬시타빈 약발이 떨어진 건 암세포가 변해 제대로 공략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투여한 젬시타빈이 바로바로 사라진 결과라는 말이다.

스트라우스만 박사는 종양 미세환경에 존재하는 뭔가가 이런 작용을 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여러 실험을 하다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종양 미세환경의 구성 요소인 섬유아세포가 있던 배양액에 암세포를 두면 젬시타빈을 투여해도 내성을 보이며 증식했다. 그런데 0.45마이크로미터 필터에 거른 배양액에 암세포를 두고 젬시타빈을 더하면 증식하지 못했다. 예상대로 전자에서는 젬시타빈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배양액에 있는 0.45마이크로미터보다 큰 뭔가가 젬시타빈을 파괴한 것이다. 

분석 결과 그 실체는 마이코플라스마 하이오라이니스라는 박테리아였다. 이 녀석이 지니고 있는 CDD라는 효소가 젬시타빈을 다른 분자로 바꾼 것이다. 추가 연구 결과 이 효소를 지닌 다른 박테리아도 젬시타빈을 분해할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렇다면 암의 젬시타빈 내성과 종양 내 미생물이 관련이 있을까. 실제 췌장암 환자 113명의 암조직을 분석한 결과 76%인 86명에서 이 효소를 지닌 박테리아의 존재가 확인됐다. 이스라엘 와이즈만과학연구소에 자리를 잡은 스트라우스만 박사는 2017년 학술지 ‘사이언스’에 이 결과를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3년이 지난 2020년 스트라우스만 박사팀은 역시 ‘사이언스’에 또 다른 흥미로운 사실을 발표했다. 뇌와 뼈 등 몇몇 경우를 빼면 우리 몸에서 발생하는 암 대부분에서 종양 내 미생물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더 이상한 건 이들이 종양 미세환경에서 세포 외부 공간뿐 아니라 암세포나 면역세포 내부에도 침투해 살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미생물이 암세포의 공생체(또는 기생체)로 암세포의 운명에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앞서 젬시타빈 내성의 경우도 암세포 안으로 들어온 약물이 작용하기 전에 박테리아가 분비한 CDD 효소가 먼저 분해한 결과일 것이다.  

암세포 전이에도 관여하는 듯

대장암세포로 이뤄진 암 스페로이드는 배양액에 푸소박테리움 누클레아툼 존재 여부에 따라 진행 패턴이 다르다. 즉 박테리아가 없을 때는 19시간 뒤에도 증식해 크기만 좀 커질 뿐이지만(왼쪽), 있을 때는 표면의 암세포가 떨어져 나오는데 자세히 보면 박테리아(분홍색)가 들어있다(오른쪽). 즉 암의 전이에 박테리아가 관여할 가능성이 높다. 네이처 제공

최근 ‘네이처’에 실린 미국 프레드허치슨암센터 수전 벌먼 교수팀의 논문은 종양 내 미생물의 분포를 높은 해상도로 분석한 결과로 역시 놀라운 사실을 드러내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박테리아는 종양에 균일하게 분포하는 게 아니라 대부분의 영역에서는 희박하고 특정 부위에 몰려 있다. 혈관 주변과 면역세포 가운데 T세포가 많은 영역에는 별로 없고 종양 표면과 면역세포 가운데 골수세포가 있는 곳에서 주로 이들 세포 안에서 발견됐다.

연구자들은 대장암세포로 종양을 모방한 암 스페로이드(cancer spheroid)를 만들어 박테리아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아봤다. 대장암 종양 내 미생물로 가장 흔히 발견되는 박테리아인 푸소박테리움 누클레아툼을 넣어주자 스페로이드의 표면에서 떨어져 나오는 암세포가 많이 보였다. 반면 박테리아를 넣어주지 않은 스페로이드는 세포 증식으로 덩어리가 커질 뿐 떨어져 나오는 암세포는 거의 없었다. 암의 전이에 박테리아가 결정적인 역할을 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실제 전이된 암세포를 분석해보면 원래 암에 있던 박테리아가 여전히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암치료에 도움 줄 수도

면역세포인 T세포가 암세포를 효과적으로 공략하지 못하는 건 암세포(tumour cell) 표면 단백질인 PD-L1이 T세포 표면의 PD1을 붙잡는 것과 함께 주변 영양분을 고갈시켜 힘을 뺀 결과다(왼쪽). 이때 암세포가 내놓는 노폐물인 암모니아를 아미노산 아르기닌으로 쉽게 바꾸는 대장균 균주(bacterium)를 넣어주면 T세포가 기운을 차려 암세포를 공격한다(가운데). 여기에 PD-L1을 표적으로 하는 항체를 더해 T세포를 자유롭게 하면 활성이 배가된다(오른쪽). 네이처 제공

한편 미생물의 존재가 꼭 암세포에 유리한 것은 아니다. 최근 종양 내 미생물을 역으로 이용해 암을 치료하려는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네이처’에는 인체에 무해한 대장균의 한 균주(ECN)를 활용해 암 면역 세포치료 효율을 높일 수 있음을 보인 연구 결과가 실렸다. 

종양이 어느 정도 자라면 종양 미세환경의 영향이 커지며 면역세포가 암세포에 대한 통제력을 점점 잃게 된다. 암세포가 영양분을 흡수하고 암모니아 같은 노폐물을 내놓아 면역세포가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한다. 그 결과 암세포 표면에 있는 PD-L1 단백질이 T세포 표면의 PD1을 인식해 달라붙어 작용을 방해하는 전략이 쉽게 먹혀든다. 

연구자들은 ECN 게놈에서 유전자 두 개를 바꿔 암모니아에서 아미노산인 아르기닌을 쉽게 많이 만들 수 있게 만들었다. 투여한 변이 ECN이 종양 미세환경의 암모니아로 만들어 내놓은 아르기닌을 흡수한 T세포는 기운을 차리고 암세포를 파괴하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서 암세포의 PD-L1을 항원으로 하는 항체를 투여하자 작용이 극대화됐다. 면역 항암요법을 쓸 때 박테리아의 도움을 빌면 성공 확률이 올라갈 것이다.

암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50년이 넘게 지나는 동안 엄청난 연구비를 투입하고도 큰 성과를 올리지 못한 배경 가운데 하나가 종양 내 미생물의 존재를 간과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 생각하면 그 오랜 시간 그 많은 연구를 하면서 어떻게 이런 현상을 눈치채지 못했을까 의아하지만 ‘종양은 멸균상태’라는 막연한 생각이 미생물의 존재를 시사하는 데이터를 가렸던 것 아닐까.

 ※ 필자소개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고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쓴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7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다. 번역서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을 썼다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Copyright © 동아사이언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