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원주민 왕가의 마지막 공주, 96세로 별세

차미례 기자 2022. 12. 13.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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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약
카와나나코아 부족 왕가와 아일랜드 출신 부호의 손녀
수천억원 대 재산 상속, 원주민 위해 사용도
일반 원주민들은 "상류사회 사람"으로 잘 몰라

[호눌룰루(미 하와이주)= AP/뉴시스] '하와이의 마지막 공주' 아비게일 카와나나코아(오른 쪽)가 젊은 아내 베로니카 게일 워스와 함께 2018년 9월 10일 재단 문제로 법정에 출두해 있는 모습. 그는 96세를 일기로 2022년 12월 11일 호놀룰루의 자택에서 사망했다.

[호놀룰루( 미 하와이주)= AP/뉴시스] 차미례 기자 = 하와이 제도를 통치해온 원주민 왕가의 마지막 공주와 하와이 최대의 지주인 아일랜드 사업가의 딸로 태어나 사실상 '하와이의 마지막 공주'로 불려온 아비게일 키노이키 케카울리케 카와나나코아가 11일(현지시간) 9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은 12일 아침에 이욜라니 궁전 앞에서 발표되었다. 이 곳은 미국이 하와이에서 유일하게 보존하고 있는 원주민 왕의 궁전이지만 지금은 주로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비가 내리는 날씨에 이 곳 파울라 아카나 박물관장과 하와이 왕족 단체의 대표인 하일라마 파르덴 두 사람이 나란히 궁전 계단을 내려와 차도 입구에 서서 사망사실에 대한 발표문을 읽었다.

언론 보도자료에는 그녀가 호놀룰루 시내의 자택에서 아내(평생의 반려자)인 베로니카 게일 카와나나코아를 옆에 두고 평화롭게 죽음을 맞았다고 쓰여 있었다.

69세의 베로니카는 " 아비게일은 하와이와 우리 민족을 사랑했던 사람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며 남은 평생 동안 그리워하며 살 것이라고 말했다.

사망한 카와나나코아는 공식 왕족 타이틀은 없었지만 하와이 부족의 상징이었고 하와이 원주민의 왕국이 1893년 미국인 사업가에 의해 점령된 이후에도 살아있는 '하와이 공주'로 존경 받으며 살았다.

호놀룰루 지역 대학교의 하와이 원어 연구가인 키모 알라마 케아울라나 교수는 2018년의 한 인터뷰에서 "그녀가 언제나 하와이 공주로 불린 것은 하와이 원주민과 주민들이 그 혈통을 인정해왔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하와이 사람들은 혈통과 족보를 중시하는데 그 것에 따르면 그녀는 분명히 왕족의 혈통이라는 것이다.

케아울라나교수는 "그는 분명히 우리의 마지막 알리이(하와이어로 왕족)이었다. 하와이 공주답게 위엄이 있고 지적이며 예술에도 능했다"고 평가했다.

그의 증조부인 제임스 캠벨은 아일랜드 출신의 사업가로 하와이 최대의 지주였다. 사탕농장으로 큰 돈을 벌은 뒤 하와이 왕족의 아비가일 쿠아이헬라니 마이피네피네 브라이트와 결혼했고 두 사람의 딸인 와히이카 아후울라 캠벨은 원주민 왕가의 왕위 계승자인 데이비드 카와나나코아 왕자와 결혼했다.

거기서 태어난 딸 리디아와 남편인 윌리엄 제리미아 엘러브록 사이에서 태어난 것이 아비가일로 96세의 장수를 누렸다. 아비가일은 홀어머니 아래서 자라다가 할머니에게 정식 입양되어 더욱 하와이 공주의 칭호를 얻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하와이 왕국이 건재 했더라도 자신이 후계자 여왕이 아니라 사촌인 에드워드 카와나나코아가 왕위에 올랐을 것이라고 하와이의 호놀룰루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2021년 밝힌 바 있다.

원주민들과 친구들 사이에서 '케카우'란 애칭으로 불렸던 그는 캠벨가의 돈을 누구보다도 많이 상속해서 약 2억1500만달러( 2812억 2000만원 )의 재단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는 오랜 세월 동안 살면서 하와이 원주민 학생들에 대한 장학금 지급, 호놀룰루 철도 사업 반대, 세계 최대 망원경설치 반대운동 지원, 하와이 원주민 왕과 왕비의 유품을 박물관에 공개, 국왕의 14 캐럿짜리 다이아반지의 기증 등 숱한 역할을 해왔다. 이욜라니 궁전의 보존과 관리에도 나섰다.

조시 그린 하와이주지사는 미국과 하와이 전체에 조기 게양을 선포하고 주의회와 정부 청사에서 11일 일몰까지 성조기를 반(半)기로 게양할 것을 명령했다.

하지만 비판적인 사람들은 하와이에 남아있는 다른 원주민 왕족들도 많이 있고 아무런 타이틀 없이 살고 있는데 카ㅣ와나나코아만 그녀의 재산과 활동으로 인해 하와이 공주의 칭호를 받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와이 원주민 활동가 월터 리트는 하와이 원주민 대다수는 그녀가 하와이 공주인지에 대해 관심도 없고 그녀의 원주민 문화에 대한 영향력도 미미했다고 말했다.

"우리는 그녀의 역할이나 도움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그는 그냥 상류사회의 일원이었을 뿐이다"라고 그는 말했다.

카와나나코아는 호놀룰루에서 태어나 값비싼 사립 예비학교 푸나호우에서 교육 받은 뒤 상하이에 있는 미국인 학교를 다녔다. 나중에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벨몬트에 있는 노터데임 여자고등학교 기숙사에서 지내며 공부했다.

한 때 한 남성과 약혼한 적도 있었지만, 긴 세월 동안의 대부분을 여성들을 아내로 맞아 생활했다.

그는 자기 돈으로 할수있는 일과 사람들의 반응을 즐겼다. 한 때 호놀룰루의 가톨릭 대주교가 성녀 마리안느의 성자추서 사업을 위해 10만 달러를 기부해 달라고 요청하자, 교황 베네딕트 16세가 직접 자기 수표를 받는 사진을 달라는 조건으로 허락했다.

그런데 대주교가 정말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을 때 그녀는 상당히 실망했다고 2017년까지 변호사로 일했던 짐 라이트 변호사가 말했다. 그렇게 말하면 대주교가 포기하고 떨어져 나갈 것으로 알았다고 했다.

하지만 2012년 달라이 라마가 그녀의 현금 선물을 거절했을 때에는 " 실제로 그처럼 단단한 절제심이 있는 인간이 있다는 점에 대단히 기뻐했다"고 라이트 변호사는 전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cmr@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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