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미군 공격받아도, 적기지 공격 가능” 5월에 결정했다

김소연 2022. 12. 13.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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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5월 ‘집단적 자위권’ 확장 확인
미·일 판단에 한반도 평화 깨질수도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포-17형’ 발사 모습.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일본 정부가 조만간 지난 70여년 동안 유지돼온 안보정책을 대전환하는 의미를 가진 ‘적기지 공격 능력’(반격 능력) 보유를 공식 결정할 것으로 보이면서, 이 변화가 한반도 안보 환경에 어떤 영향을 불러올지 관심이 쏠린다. 이 가운데 일본 정부가 자신들이 갖게 되는 적기지 공격 능력을 일본이 직접 공격받았을 때뿐 아니라 미국에 대한 공격에 대해서도 사용할 수 있다고 정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예컨대 미군 함정이 동해에서 북한의 공격을 받았을 때, 미국이 원하면 자위대가 반격하겠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가 이런 입장을 가졌다는 사실이 비교적 명확히 한국에 전해진 것은 지난 3일이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날 연립 여당인 공명당의 하마치 마사카즈 의원이 2일 자민당과 정책 협의를 거쳐 적기지 공격 능력 보유를 허용하기로 의견을 모은 뒤, 기자들과 만나 이 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례로 한반도 유사사태를 거론했다고 전했다. 일본은 그동안 적을 타격할 수 있는 노골적인 공격 무기(장거리 미사일)는 보유하지 않아왔지만, 적기지 공격 능력 확보를 통해 이 능력을 갖게 됐다.

하마치 의원의 발언은 한국 입장에서 매우 놀라운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가 “한반도 유사시 (북한이) 일본에 미사일을 발사할 것 같은 징후가 있는 가운데 일본해(동해)에 있는 미군 함정이 일격을 당하면,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존립위기사태가 아니겠냐”고 말했기 때문이다. 다만 “(미국의) 요청이 없으면 행사할 수 없는 것이 국제적인 룰”이라면서, 이 판단은 미-일 간에 긴밀한 조율에 따라 이뤄질 것이란 의견을 덧붙였다.

일본 내에서 쓰이는 여러 법적 용어 탓에 알아듣기 힘든 하마치 의원의 발언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려면, 두가지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 먼저, ‘집단적 자위권’이다. 이는 자신과 밀접히 관련된 국가가 공격을 받으면 자국이 직접 공격을 받지 않았어도 무력을 쓸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일본은 평화헌법의 제약 때문에 이 권리를 포기해왔다가 2014년 7월 헌법의 해석 변경을 통해 미국 등 일본과 밀접한 국가가 공격을 받을 경우 이 권리를 사용하도록 결정했다. 이어, 하마치 의원이 직접 언급한 ‘존립위기사태’란 이 결정에 따라 2015년 9월 개정된 무력공격사태법 2조 4항에 명시된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사태를 뜻한다.

즉, 동해에서 미국이 북한의 공격을 받는 것은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존립위기사태에 해당하기 때문에 미국이 요청할 경우 일본이 새로 갖게 된 미사일 등 무력 수단(적기지 공격 능력)을 활용해 반격하겠다는 의미였다. 하마치 의원은 일본 연립 여당인 공명당의 외교안보조사회 사무국장인데다, 이날 자민당과 정책 협의를 마친 뒤 내놓은 발언이기 때문에 일본 여당의 ‘공식 견해’라 봐도 무방하다. ‘일본이 미국을 위해 북한을 미사일로 타격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민감한 발언이지만, <니혼게이자이신문>은 3일치 4면에 짧은 단신으로 처리하고 만다.

<한겨레> 자료

하지만 이 발언은 ‘돌출 발언’이 아니다. 그동안 일본 정부가 여러 통로를 통해 밝혔던 견해를 묶어보면, 이러한 정책 결정이 꽤 오래전에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일본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의 나가쓰마 아키라 중의원은 지난 5월6일 정부에 “일본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타국에 대한 무력 공격이 존립위기사태로 인정될 경우, 일본이 적기지 공격을 활용하는 게 헌법상 자위에 포함돼 가능한지”를 묻는 질문서를 제출했다. 그동안 일본 정부는 개별적 자위권(일본이 직접 공격받았을 때)에 관해서만 적기지 공격 능력을 쓸 수 있다고 해왔는데, 이 능력을 집단적 자위권 행사 과정에서 사용할 것인지 물은 것이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17일 답변서에서 “자위권을 발동할 수 있는 3요건에 해당되면, (중략) 한정적인 ‘집단적 자위권’ 행사도 자위의 조처로 이뤄지는 ‘무력 행사’에 그대로 해당된다”고 밝혔다. 이 말 역시 매우 애매모호하지만,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는 과정에서도 적기지 공격 능력을 활용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결국 이 답변서가 나온 지 6개월 뒤, 하마치 의원은 한반도와 대만 유사(전쟁)사태 등이 발생할 경우 미국이 요청하면, 일본이 직접 공격을 받지 않아도 보복 공격이 가능해진다는 견해를 좀 더 명확히 밝히게 된다. 그동안 일본 정부는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사례로 △수색 구조 △해상작전(기뢰 제거나 적의 무력행사를 지원하는 선박 활동 저지 등의 작전) △미사일 방어(MD) 협력 △미 함선의 방어 등을 꼽아왔다. 이번에 적기지 공격 능력 보유가 인정되면, 자위대의 군사적 역할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되는 셈이다.

일본 방위성이 공식 입장을 밝힌 것은 지난 6일이었다. 하마다 야스카즈 방위상은 이날 기자회견에 일본의 동맹국 등이 공격을 받아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존립위기사태가 발생하면 반격 능력(적기지 공격)을 사용할 수 있냐는 질문에, 지난 5월 각의 결정(나가쓰마 의원에 대한 답변서) 내용을 설명하며 ‘가능하다’는 뜻으로 답했다. 한국엔 크게 전해지지 않았지만 기타가와 가즈오 공명당 부대표도 1일 <지지통신> 인터뷰에서 “일본해(동해) 공해상에서 일본 방위를 위해 활동하는 미 군함이 북한으로부터 공격을 당했을 경우 존립위기사태로 인정되면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반격(공격) 능력도 정당화된다”고 말했다.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 범위를 크게 확대하면서 한국 정부의 발등엔 불똥이 떨어지게 됐다. 미·일의 판단과 일본의 무력행사에 의해 한반도의 평화가 한순간에 깨지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그럴수록 한-일, 한·미·일 간의 소통을 강화해 미·일의 오판을 막아야 한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오래전부터 한-일과 한·미·일 외교·국방장관 연석회의(2+2회의)를 개최할 필요가 있다고 말해왔다. 윤석정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일본연구센터 연구교수는 올해 발표한 ‘한반도 유사시 미-일 동맹 내 일본의 군사적 역할’ 보고서에서 “일본이 적기지 공격을 실행할 수 있게 되면 한반도 안보 문제를 두고 한국의 이해관계와 충돌하는 지점들이 존재하게 된다”며 “제대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평시부터 한·미·일이 북한 문제를 두고 소통하면서 신뢰를 축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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