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과 전공의 모자라… 급기야 “입원 진료 중단”

김경은 기자 2022. 12. 13.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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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병원, 입원병동 운영 중단… 올해 전공의 경쟁률 0.16대 1
“수가 낮은데다 툭하면 소송당해… 누가 소아과 가겠나”

소아 의료 공백 우려가 현실이 됐다. 인천 지역 상급종합병원인 가천대길병원은 최근 홈페이지에 “소아청소년과 입원이 잠정적으로 중단됩니다”라는 안내문을 올리고, 소아청소년과(이하 소청과) 입원 진료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실제 이 병원은 내년 2월까지 소아·청소년 입원 병동을 운영하지 않기로 했다. 이 병원 손동우 소청과장은 “소청과 4년 차 전공의(레지던트)들이 전문의 시험 준비에 들어가면 2년 차 전공의 1명만 남게 된다”며 “더 이상 입원 환자를 진료할 수 없는 상태다”고 말했다. 손 과장은 최근 지역 내 소청과 병·의원들에 편지를 보내 “입원이 필요한 소아들은 (길병원 말고) 다른 병원에 의뢰해 달라”고 알렸다.

12일 가천대 길병원이 의료진 부족으로 소아청소년과 입원진료 중단을 공지한 길병원 인터넷 홈페이지./길병원

이미 전국 대학병원 중 소아 응급 진료가 가능한 곳은 36%에 지나지 않는다. 경기도 고양시 소재 ‘빅5′ 종합병원(일산병원·동국대일산병원·명지병원·일산백병원·일산차병원) 5곳은 최근 소아·청소년 대상 야간 응급 진료를 중단한 바 있다. 하지만 길병원처럼 입원 진료까지 중단한 종합병원은 처음이다. 소아 진료 의사들은 ‘아이들이 아프지 않게, 가족 모두 행복할 수 있게’란 사명감으로 일한다. 그런 이들이 이런 결정을 내린 이유는 ‘의료진 부족’이다. 길병원의 내년 상반기 전공의 1년 차 모집 과정에서 소청과(정원 4명) 지원자는 한 명도 없었다. 전국 다른 상급병원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올해 소청과 경쟁률은 0.16대1. 정원이 207명인데 33명만 지원했다. 2017년만 해도 113.2%로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5년 새 의대 전공 과정 중 가장 많이 줄었다.

그나마 20명(61%)이 전문의 중심 진료 체계를 어느 정도 갖춰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보장된다는 서울아산·서울대병원에 몰렸다. 소청과 정원을 반 이상 채운 병원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에 따르면, 내년에는 주요 대학병원을 포함한 전국 95개 수련 병원에서 소청과 전공의는 필요 인력의 39%만 근무하게 될 형편이다. 심각한 진료 인력 부족이 예상된다.

‘빅5’ 병원(삼성서울·서울대·서울성모·서울아산·세브란스) 중 서울아산병원만이 유일하게 내년 전반기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레지던트) 1년 차 모집에서 정원(8명)을 채웠다. 사진은 고경남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종양혈액과 교수가 간모세포종 환아를 진료하고 있는 모습. /서울아산병원

서울 소재 ‘빅5′ 병원까지 그 파장이 미치고 있다. 세브란스병원은 지난해 전공의 1년 차 추가 모집에서 소청과 11명을 뽑으려 했지만 지원자가 2명에 불과했다. 올해는 0명이다. 지방 병원들은 더 어렵다. 전북대병원·충북대병원을 제외하면 지역 거점 병원에 1년 차 소청과 전공의는 1명도 없다.

이렇게 ‘소청과 몰락’이 심화하는 배경에 대해 김지홍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이사장(강남세브란스병원 소청과 교수)은 ①저출산과 코로나 여파 ②저(低)수가 영향 ③의료 사고 책임 부담 등을 꼽는다.

소청과는 그간 고품질·중저가, 이른바 ‘박리다매’형 진료로 명맥을 유지했다. 우리나라 소청과 건강보험 수가는 선진국 3분의 1 수준이다. 똑같은 수술이라도 아이는 어른보다 손이 더 많이 가는데 수가는 같다. 약물이나 검사도 적게 받기 때문에 수입도 적다. 병원 처지에선 소아 환자가 많을수록 적자가 느는 구조다. 코로나 사태로 아이들 활동량이 줄면서 소아과 진료가 40% 이상 급감, 동네 소아과 의원 폐원도 속출했다.

여기에 저출산 풍조가 가속화하면서 보호자들이 ‘귀한 자식’에게 약간이라도 소홀한 대우가 주어진다 싶으면 거세게 항의하는 일이 잦아 소청과 전문의들 심적 부담을 늘렸다는 지적도 있다. 한 40대 소아과 전문의는 “인구가 줄어 소청과 장래가 없다는 얘기는 10년 전부터 있었지만 지금처럼 지원이 두드러지게 감소한 건 2017년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집단 사망 사고’가 큰 영향을 미쳤다”고 전했다. 당시 사고 책임을 물어 의사들이 구속되고 법적 공방이 진행되는 과정을 지켜보던 의대생들이 소청과를 기피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일은 2배 힘들고, 대우는 최저, 위험도 2배 이상이니 국가적으로는 중요해도 개인으로서는 소아과를 택할 유인이 없다”는 것이다.

현재 상급병원 응급실에서는 환자가 15세 이상이면 응급의학과, 15세 미만이면 소청과 전공의가 1차 진료를 맡는다. 응급실 당직을 서야 할 소청과 전공의가 부족하면 결국 소아 응급 진료에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소아의 경우 골든타임은 ‘20분’. 아이가 아프면 황급히 병원을 데려간다 해도 20분은 빠듯하다. 그나마 ‘전문의 없는 응급실’이 많아져 받아주는 병원을 찾아 헤매다 지난 2월 코로나에 걸린 생후 7개월 아기가 숨지는 일도 있었다. 지난 9월 전국 수련 병원 실태 조사에 따르면 24시간 정상적인 소아·청소년 응급 진료를 할 수 있는 수련 병원 중 65%가 내년부터 (소아·청소년에 대한) 응급 진료, 병동 진료, 중환자 진료 순으로 진료량을 줄일 계획이다.

길병원은 일단 내년 3월 전문의 충원이 이뤄지면 입원 환자 진료를 다시 할 방침이나 충원을 확신할 수 없어 전전긍긍이다. 내년 3월 4년 차 전공의들이 전문의 자격을 따 의국(醫局·의사들이 모여있는 방)을 떠나는 시기에는 일시적인 소아 진료 대란이 올 수 있다는 불안감도 퍼진다. 김지홍 이사장은 “이미 지방에선 소아암 등 고난도 중증 진료는 보조 인력이 없어 정상적으로 진료하지 못해 서울 대형 병원으로 보낸다”면서 “저출산 국가에서 아이 생명을 안전하게 지켜줄 수 없다면 누가 애를 낳으려 하겠느냐”고 되물었다. 소청과는 필수 의료를 넘어 국가가 갖춰야 할 필수 사회 안전망이란 호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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