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458] 센트럴파크에서 스케이트를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2022. 12. 13.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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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네스 타이트, 센트럴파크에서 스케이트를, 1934년, 캔버스에 유채, 85.8×121.8㎝, 워싱턴 DC, 스미스소니언 미국미술관 소장.

희뿌연 냉기가 내려앉은 한겨울 빙판에서 스케이트들을 타느라 야단이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풍경과 저마다 활기차게 움직이는 사람들은 언뜻 보면 17세기 네덜란드의 대(大) 피터르 브뤼헐 그림인 것 같지만, 너른 공원을 병풍처럼 둘러싼 고층 빌딩을 보니 그럴 리가 없다. 이는 미국 화가 아그네스 타이트(Agnes Tait·1894~1981)가 그린 맨해튼 센트럴파크의 겨울 풍경이다. 타이트는 대공황기에 예술가들을 살리기 위해 정부가 대량으로 미술품을 주문한 ‘공공미술 지원사업’에 선발된 덕에 이처럼 큰 풍경화를 그릴 수 있었다. 이 사업의 대표적 성과로 손꼽히는 이 작품은 지금의 미술관으로 이관되기 전까지 미국 노동부에 있었다.

맨해튼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타이트는 생계형 화가였다. 학비가 없는 미술 교실을 찾아다니면서, 미술과 관련된 돈벌이라면 가리지 않고 밤낮으로 일했고, 병든 부모 수발을 들어야 할 때도 화가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크고 작은 미술 대회에서 받은 상금을 모아 유럽 여행을 하면서 견문을 넓히고, 마침내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하게 될 즈음 대공황이 닥쳤다. 미술 시장도 여지없이 바닥을 쳤지만 타이트는 그나마 수요가 있는 초상화, 작은 판화나 책의 삽화에서부터 벽화에 이르기까지 주문을 받으면 무엇이든 그리면서 화업을 유지했다. 그러다 정부 사업에 선정되어 ‘미국 풍경’을 주문받자 그녀가 달려간 곳이 바로 센트럴파크였던 것이다.

타이트는 배경을 그려 놓고 실제로 스케이트를 타다가 스튜디오로 돌아와 이처럼 생동감 넘치는 인물과 다채로운 겨울 나무를 화폭에 채워 넣었다. 타이트의 유명작은 이것뿐이지만 이거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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