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2030 마약사범 급증하는데… 전담병원 21곳중 19곳 ‘개점휴업’

김윤이 기자 2022. 12. 13.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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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곳 5년간 치료 0명… 10곳 年1,2명
의료진-예산 부족해 초기치료 ‘구멍’
최근 젊은층을 중심으로 마약 사범이 급증하고 있지만 마약 중독 전담 치료병원 21곳 가운데 19곳은 ‘개점휴업’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잘못된 선택으로 마약에 빠진 초기 중독자가 치료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도록 전문 치료인력 및 관련 예산 확충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청에 따르면 20, 30대 마약사범은 지난해 5944명 적발돼 2018년(3196명)보다 86% 증가했다. 증가율이 같은 기간 전체 마약사범 증가율(31.1%)보다 훨씬 높다. 초범 비율 역시 같은 기간 72.3%에서 81.2%로 늘었다.

치료를 통해 마약의 덫에서 빠져나올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초기 중독자가 많은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선 치료를 받고 싶어도 병원을 찾을 수 없어 몇 달씩 기다리는 실정이다.

동아일보가 국민의힘 최연숙 의원실을 통해 보건복지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치료비를 지원하는 지정 병원 21곳 중 9곳(42.9%)은 최근 5년(2018년 1월∼2022년 6월) 동안 치료한 중독자가 한 명도 없었고, 10곳(47.6%)은 치료 대상이 연간 1∼2명에 불과했다. 나머지 2곳인 인천참사랑병원과 국립부곡병원이 연간 100명 이상을 담당하며 사실상 치료를 도맡고 있었다. 지난해와 올해 치료 환자가 ‘0명’인 청주의료원 관계자는 “전문 의료진이 없어 환자를 받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국내 마약 전문의 4명뿐… 중독자들 “두달 이상 기다려 진료”


마약 전담병원-인력 부족
병원들 “전문의 없어 진료 못 봐”
정부-지자체에 치료비 떼이기도
“초기 중독자 골든타임 놓칠 우려”


“반드시 끊겠다고 마음먹고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병원 4, 5곳에 연락해 봤지만 모두 거절당했어요.”

마약 중독자였던 30대 박모 씨는 지난해 1월 치료를 결심한 후 복지부 지정 마약 전담 치료병원 여러 곳에 문의했지만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답만 들었다고 했다. 박 씨는 “당시 ‘영영 치료를 받을 수 없겠구나’라는 생각에 절망스러웠다”고 회상했다. 그는 인천참사랑병원 대기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두 달을 기다린 끝에 치료를 시작할 수 있었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만난 마약 중독자들은 “치료 가능한 병원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 “2, 3개월 대기는 기본”이라고 입을 모았다. 여러 달을 기다려 병원 치료를 받고 6년간 빠졌던 마약에서 벗어났다는 20대 중반 A 씨는 “주변에서 입원을 기다리다 금단 증상을 이기지 못해 다시 마약에 손댄 이들을 봤다”고 했다.
○ “전문의 없다” 치료 손놓은 병원들

정부는 1990년대부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수, 병상 수 등을 기준으로 마약 치료병원을 지정해 왔다. 그런데 이들 병원 대다수가 마약 중독 치료를 사실상 중단한 것을 두고 복지부 관계자는 “내년에 지정 기준 등을 재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병원들은 “마약 전문 의료진이 없다 보니 환자가 와도 치료할 준비가 안 돼 있다”는 입장이다. 지정 병원이지만 최근 4년간 마약 중독 환자를 받지 않은 울산마더스병원 관계자는 “전문의가 없어 진료를 볼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마약 치료는 알코올 등 다른 중독에 비해 치료가 까다로운 영역으로 분류된다. 천영훈 인천참사랑병원 원장은 “정신과 전문의라고 해도 오랜 훈련 없이는 뛰어들기 어려운 분야”라며 “현재 제대로 마약 환자를 볼 수 있는 전문의는 국내 총 4명뿐이라고 보면 된다”고 했다.
○ “정부·지자체에 치료비 떼이기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치료비를 ‘떼인’ 지정 병원도 적지 않다. 복지부에 따르면 전국 지정 병원들이 정부·지자체로부터 받지 못한 관련 미수금은 연말 기준으로 2018년 3억2000만 원이 넘었고, 지난해에도 2000만 원 넘게 남아 있었다.

이는 정부와 지자체가 충분한 예산을 편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중독자의 치료비를 지방자치단체와 절반씩 나눠 지원하는데 정부 예산은 연간 약 4억1000만 원에 불과하다. 지자체 몫을 더해도 연간 8억2000만 원이 전부인 셈이다. 그나마 대구경북 등 일부 지자체는 올해 관련 예산이 ‘0원’이다.

이 때문에 중독자 치료에 적극 참여하던 병원이 지정 병원에서 빠지기도 했다. 서울 강남을지병원의 경우 2018년 기준 마약 중독 환자 267명 중 136명을 치료했다. 그러나 그해 치료비 미수금이 누적 3억 원에 이르자 지정 해제를 요구해 지정 병원에서 빠졌다. 이 병원은 2020년에야 미수금을 받았다. 지자체로부터 1억 원 넘게 치료비를 받지 못했던 한 병원 관계자는 “민간 병원 입장에서 억대 미수금은 운영에 차질을 줄 수밖에 없다”고 했다.
○ “우수 병원 인센티브로는 해결 안 돼”

정부는 올 10월 ‘마약류 관리 종합대책’ 관련 당정협의회에서 “전문 치료보호기관의 인프라를 확충해 일상복귀를 지원하고, 예산을 지원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지만 내년 정부 예산안에선 증액이 이뤄지지 않았다. 정부 대신 국회 보건복지위가 심사 과정에서 예산을 약 27억7300만 원 증액하는 안을 마련했다.

국회 보건복지위 안은 우수 치료기관 2곳에 인센티브를 2억 원씩 지급하는 한편 국립정신병원 5곳에 중독자 치료비를 1억 원씩, 총 5억 원 지원하도록 했다. 전문인력 양성 과정 개발 예산에는 3억 원이 편성됐다. 천영훈 원장은 “전문 인력 부족이 핵심 문제”라며 “병원에 인센티브를 준다고 해도 치료할 수 있는 환자 수에는 한계가 있어 큰 도움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영덕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실장은 “이미 한국의 마약 확산세는 단속만으로 뿌리 뽑기 어려운 단계에 이르렀지만 중독 치료와 재활 인프라가 매우 부족한 실정”이라며 “중독자를 사회로 복귀시키기 위해 지금이라도 인력과 시설 등 전반적인 인프라 확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윤이 기자 yunik@donga.com
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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