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진칼럼]EU와 튀르키예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2022. 12. 13. 02:0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화진 /사진=김화진

이제 본격적으로 삐걱거리는 유럽연합(EU)은 단순화시켜 말하면 독일형 나라와 이탈리아형 나라를 공동운명체로 억지로 묶은 것이다. 어중간하고 양쪽 속성을 같이 가진 프랑스가 있고 "유럽에 간다"고 말하는 습관이 있는 영국인들이 거기 합세했다가 2020년에 떨어져 나갔다.

우리가 보기에 한 유럽이지만 유럽은 크게 알프스산맥 남북으로 나뉜다. 북쪽은 우리가 전형적으로 생각하는 유럽이다. 춥고 좀 딱딱하고 매사 원칙 중심에 말끔하다. 남쪽인 지중해 연안은 온난하고 유연하고 자유롭고 여유만만하다. 남쪽은 역사적으로 중동, 아프리카와도 교류가 깊고 종교적으로도 다양한 사회다. 경제 측면에서 북쪽은 산업사회고 남쪽은 교역사회다. 물건 가격은 정가로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는 곳과 흥정과 에누리가 필수라고 생각하는 문화적 차이로 이어진다.

문제는 남북간 생산력 격차 때문에 남쪽이 서서히 북쪽의 채무자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EU의 틀 안에 있기 때문에 북쪽은 채권자 입장을 반영해 남쪽의 재정에 간섭할 수 있고 실제로 그렇게 한다. 오늘날 EU의 위기는 여기서 발생한 것이다. EU 회원국인 키프로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키프로스 사례 하나만 보아도 EU의 미래가 예견될 정도다.

키프로스는 EU에서 가장 동쪽에 있다. 튀르키예 코 밑에 있고 오른쪽에 시리아와 레바논이 있다. 중세에 유럽 십자군들이 마지막으로 철수했던 섬이다. 1960년 영국에서 독립했는데 인구의 거의 80%를 차지한 그리스계와 20% 미만이었던 투르크계가 대립했다. 1974년에 그리스계 주도 통합을 표방한 쿠데타가 발생했다. 그를 빌미로 튀르키예가 섬을 침공해 나라가 둘로 나뉘었다.

동지중해 지도를 보면 매우 특이한 해양 국경선이 보인다. 튀르키예 서쪽 연안 섬들이 전부 그리스 영토다. 즉, 튀르키예를 바로 코앞에서 둘러싸 바다를 가로막고 있는 섬들이 모조리 그리스 소속이다. 따라서 에게해는 전부 그리스의 바다가 된다. 심지어 튀르키예 해안에서 불과 2km 거리에 있는 카스텔로리조섬도 그리스다. 여기에다 키프로스까지 그리스 영토였다면 튀르키예는 중동지역 연안까지 그리스에 가로막히는 셈이다. 키프로스 남쪽 해저에서 대규모 천연가스층도 발견되었다. 튀르키예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 섬들은 물론이고 그리스 자체도 1832년까지 무려 450년간 오스만제국의 일부였다.

지금까지 키프로스 북쪽이 남쪽보다 많이 못 살았는데 지금은 약간 나아졌다. 이유 중 하나가 그리스 경제와 연계되어 있는 남부가 2004년부터 EU 회원국이라는 데 있다. 역설이다.

키프로스는 자원 역량은 보잘것없기 때문에 금융중심지를 지향했다. 역외금융센터처럼 금융규제를 최소화하고 금융거래 비밀을 스위스 수준으로 보장했다. 러시아인들과 세계 각국의 비밀 정보기관이 좋아했던 이유다. 범죄자들도 물론 좋아했다. 그런데 EU에 가입하면서 더 이상 그 역할을 하기 어려워졌다. 그러다가 2008년에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았다.

북쪽보다 경제가 불건전했던 남쪽이 직격탄을 맞았다. 해외부채를 갚지 못하게 되었다. 독일은 빚을 안 갚는 채무자는 눈 뜨고 못 보는 성격이다. 모든 은행계좌에서 10만 유로 이상은 모두 동결, 압류되었다. 상당 부분이 불법자금이었지만 다수는 일반 기업과 가계의 평범한 예금이었다. 정부는 그 돈으로 유럽 은행들에 진 빚을 갚았다. 키프로스 경제와 국민들의 삶은 완전히 박살 났다.

독일은 소규모 경제인 키프로스를 희생양으로 스페인, 그리스, 헝가리에 엄중 경고를 한 것이다. 사실 EU에서 빠지기로 하고 '나자빠져도' 되는데 정치인, 상류층에게 EU 탈퇴는 옵션이 아니었다. 그 사람들은 자산을 은행에 별로 넣어두지 않았다고 한다.

유럽 북쪽과 남쪽이 뚜렷한 차이가 나는 이유는 일단은 기후 조건 때문이다. 북쪽 사람들은 추운 겨울에 대비하기 위해 나머지 계절을 사는 셈이고 남쪽은 그 걱정이 없다. 이 때문에 성격과 생활 패턴이 달라진다. 누구는 원래 더 부지런하고 아니고의 차이가 아니다. 사실 내가 사는 곳에 겨울이 없다고 생각해 보자. 인생의 어려움 상당 부분이 사라진다.

그런데 예컨대 독일 사람들은 그리스 사람들이 나태해서 자기들의 절제와 근면함에서 나오는 과실을 공짜로 나누어 먹는다고 생각한다. 한참 일할 오후 시간에 낮잠이 웬 말인가. 그러다가 경제가 파탄나면 빚을 탕감하거나 구제해 줄 이유가 없다. 이 문제는 비단 유럽만의 문제가 아니다. 어느 사회에서든 엄하고 부지런한 사람들은 반대의 행동으로 사는 사람들을 싫어한다. 그리고 왜 내 절제로 쌓인 재원을 '게으른' 사람들과 나누어야 하는가라고 묻는다.

문제는 독일 경제가 예컨대 그리스 없이는 돌아가기 어렵다는 것이다. 독일 사람들은 너무 부지런해서 필요 이상을 생산해 내고 소비도 하지 않는다. 다른 나라에서 독일산 물건을 소비해 주고 독일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도 해주기 때문에 독일 경제가 돌아가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문제는 유럽뿐 아니라 지구촌 전체에 마찬가지로 있는 문제다. 최근 좌든 우든 유럽 각국에서 급진 정당들이 득세하는 것도 이 문제와 관련이 있다. 서로 미워하고 용납을 못한다.

유럽과 아시아 양쪽에 걸친 튀르키예는 영토 면적은 유럽대륙 쪽이 3%지만 GDP의 50%가 거기서 나온다. 축구대표팀도 UEFA에 가입했다. 오래전부터 EU에 들어가고 싶어 했지만 전원 합의가 필요한 EU에 그리스와 키프로스가 있어서 어렵다. 다른 회원국들은 꺼내놓고 말은 하지 않지만 중동지역 난민들이 바다가 아닌 육지를 통해 대규모로 들어오지 않을까 겁낸다. 테러리스트들도 난민으로 가장하고 들어온다. 튀르키예가 유일한 육지 통로다. 무슬림 비중이 크다는 것도 마음에 걸린다. 태도가 미적지근하다.

그러나 이제 거꾸로 EU가 흔들리고 있다. 분열되기 시작한 유럽과 힘이 빠지기 시작한 러시아, 그리고 미국이 떠난 중동에서 튀르키예는 가장 미래가 기대되는 나라로 부상한다. 전문가들은 튀르키예의 지정학적 위치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완벽한 곳이라고 본다. 돌궐족으로부터 우리와 뿌리가 같다는 말도 있는 튀르키예다. 한국전쟁에서 희생도 크게 치렀다. 그 튀르키예의 새옹지마가 유럽에서 시전될 수도 있겠다.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