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학 전문 ‘이나영책방’서 듣는 북한 여성의 이야기 “남이 아닌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전지현 기자 2022. 12. 1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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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서울 관악구 이나영책방에서 권금상 수원도시공사 가족여성회관 관장이 자신의 책 <영웅적 조선녀성의 성과 국가> 북토크를 진행하고 있다.
책방 이름 ‘이것이 나의 영감’
느슨한 연대와 콘텐츠 생산의 장
북, 한국전쟁 이후 성담론 보수화
자다가 남편 술상 차리는 게 덕목
이탈 주민들 생생한 증언 곁들여

지난 9일 밤 서울 관악구 이나영책방에서 ‘북한 여성들의 섹슈얼리티’를 시대별로 분석한 책 <영웅적 조선 녀성의 성과 국가>의 북토크 행사가 열렸다.

북토크는 저자인 권금상 수원도시공사 가족여성회관 관장이 진행했다. 약속 시간인 오후 7시30분이 다가오자 일반인 신청자들이 하나둘 책방에 모였다. “이나영책방 인스타그램으로 행사를 알게 됐다”는 이들은 조용히 이나영 책방 대표와 책방 크루원들의 안내에 따라 착석했다. 권 관장이 사온 빵과 책방에서 준비한 귤과 따뜻한 차를 앞에 두고 참석자들은 필기도구와 아이패드 등을 꺼냈다.

권 관장의 강의가 시작됐다. 그는 “북한학이 비인기 과목인 것을 안다”며 “어떤 분들이 올지 오히려 제가 더 궁금했다”고 말했다. 2시간가량 이어진 강연에서 권 관장은 북한 여성들의 삶을 시대별로 설명했다. 그가 오랫동안 취재한 북한이탈주민들의 증언이 사이사이 곁들여졌다.

북한은 1946년 ‘남녀평등권법령’을 제정했다. 그러나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성담론이 보수화됐다. 북한의 시장인 장마당을 통해 여성들이 경제적 실권을 잡았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북한이탈주민들을 취재해보면 “자다가도 남편 술상 차리는 게 여자의 덕목”이라고 말할 정도로 가부장적 인식이 만연해 있다고 한다. 탈북 여성들이 남한에서 착취당하기 쉽다는 얘기도 오갔다.

북한학 전공자라고 밝힌 김지민씨(22)는 강의 도중 “북한학을 공부하다 보면 북한을 대상화한다는 비판을 피해가기 쉽지 않은데, 이를 어떻게 벗어나려고 했냐”고 권 관장에게 물었다. 권 관장은 “북한의 이야기를 ‘남’이 아닌 ‘우리’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고 답했다.이나영책방 단골 손님이라는 김선영씨(51)는 “북한이라는 곳을 멀게 느꼈었는데, 강연 중간에 나오는 지명들이 개인적인 이유로 익숙했다”며 “저도 잊고 살지만, 아버지가 강연에서 언급된 고지전 참전용사였다. 듣다가 아버지가 지나온 곳이 북한의 어디였겠구나, 북한 얘기가 남의 얘기가 아니었지 싶었다”고 했다.

이나영책방은 ‘국내 최초 북한학 전문 동네서점’을 표방하며 지난 6월 관악구 한 건물 3층에 터를 잡았다.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북한학을 전공한 이나영 대표의 이름을 책방 이름으로 썼다. ‘이나영’은 ‘이것이 나의 영감’이란 말의 줄임말이라고도 했다.

책방 가장 안쪽 서가를 중심으로 ‘북한/한반도/사회주의’로 분류된 책들이 빽빽하게 들어찼다. 정치·사회·문화·동화책 등 다양한 책들도 진열돼 있었다. ‘의외로 북한학 책으로만 가득하지 않다’는 질문에 이 대표는 “우선 북한학 책은 잘 안 팔린다”며 웃었다.

이 대표는 “대부분 북한을 책으로 소비하기보다는 유튜브나 미디어로 소비한다”고 했다. 북한학 관련 책으로만 책방을 꾸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관련 책이 많지도 않거니와 북한을 가볍게 소비하고 마는 책을 제외하는 등 책을 엄선하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학’이 낯선 사람들을 위해 책방은 콘텐츠 생산자 역할도 한다. 책방을 공동 운영하는 오주연(힐데)·김애란(소피)씨는 출판사 ‘힐데와소피’의 공동대표이기도 하다. <나는 통일을 땡땡합니다> <어쩌다가 북한학> 등을 출간했다. 책방 공간 옆 사무실은 ‘힐데와소피’의 사무 공간으로 사용된다. 세 사람은 ‘북한학’ ‘한반도’ 관련 문화행사를 종종 기획한다. 이 대표는 “북한학에 애초에 관심 있는 분들 혹은 저희 책방을 자주 찾는 분들이 오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지난달 30일 열었던 <우리는 모두 조선족이다> 북토크 때는 “조선족 당사자나, 조선족 연구하는 분들도 와서 새로운 얘기가 청중들에게서 나오는 경험을 했다”며 “앞으로 책방이 더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글·사진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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