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겨울 난민 유입 급증 예고…‘하나의 유럽’ 다시 시험대
에너지·물가 상승에 자국민 생활여건 나빠지며 피로감 누적
중동·아프리카 난민도 급증…유럽의 이중잣대 더 불거질 듯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초기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조건 없이 환대했던 유럽 각국이 전쟁이 길어지면서 난감한 상황에 부닥쳤다. 에너지 위기와 물가 상승으로 각국의 부담이 커진 가운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기반시설을 겨냥한 폭격을 계속하면서 올겨울 유럽으로 향하는 우크라이나 피란민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중동·아프리카 난민의 유입도 늘어나 올겨울은 난민 문제를 두고 유럽의 정치적 통합이 또 한 번 시험대에 오를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난민들에 대한 유럽인들의 환대가 점점 식어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폴란드는 침공 초기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가장 적극적으로 수용해왔지만, 지난 6월부터는 난민들에게 음식과 숙소를 제공하기 위해 지급하던 정부 보조금을 끊었다. 난민들의 대중교통 무료 이용권도 사라졌다. 또 난민들은 내년 3월부터 120일 이상 폴란드에 체류할 경우 정부가 제공하는 숙박시설 비용의 50%를 부담해야 한다.
다른 유럽국가들에서도 난민을 환영하던 분위기는 사그라들고 있다. 약 100만명을 받아들였던 독일 당국은 지난 9월 전체 16개주 중 12개주에서 난민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주택과 교육 프로그램이 한계에 도달했다고 밝혔고, 오스트리아는 지난달부터 우크라이나 난민들에게 무료로 제공하던 기차 승차권을 1회로 제한하기 시작했다.
지난 8월 영국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난민들에게 숙소를 제공하던 주민 중 4분의 1은 6개월 후엔 집을 내주지 못할 것 같다고 답했다. 이로 인해 약 1만4000명의 우크라이나인이 크리스마스 이후에 묵을 곳을 찾지 못하면 노숙자가 될 것이라고 가디언은 전했다.
우크라이나 난민에 대한 호의가 피로감으로 바뀐 것은 전쟁의 장기화로 전 세계 물가가 치솟으면서 에너지·원자재·식품 가격이 급상승해 자국민의 생활 여건까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러시아가 유럽행 천연가스 공급을 줄이면서 유럽은 올겨울 최악의 에너지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기반시설을 계속 폭격하면 유럽행 난민 수가 더 늘어나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유럽의 결의가 약해질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실제로 일부 국가들에선 우크라이나 난민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 9월 독일의 중도우파 기독민주당(CDU) 대표는 우크라이나인들이 독일의 관대함을 악용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폴란드에선 지난달 11일 극우 정당들이 주최한 행진에 약 10만명이 결집해 “폴란드의 우크라이나화를 중단하라”고 외치기도 했다.
여기에 유럽으로 이동하는 중동·아프리카 난민들의 수도 급증하고 있어 우려를 더하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코로나19 규제가 풀리고 경제 상황이 악화하면서 중동·아프리카 난민 수는 2015~2016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우크라이나 난민들은 중동·아프리카 난민에 비해 그나마 나은 대우를 받고 있으며, 난민에 대한 유럽의 이중 잣대는 점점 더 심해질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난민들에게 유럽으로 통하는 ‘관문’이나 마찬가지인 이탈리아에 들어선 극우 정부는 지난달 시칠리아섬 인근 난민 구조선의 정박을 허용하지 않으면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폴란드는 지난 6월 벨라루스를 거쳐 자국으로 들어오려는 중동지역 출신 난민들을 막기 위해 벨라루스와의 국경지대에 186㎞에 달하는 철제 장벽을 설치했다. 이에 펠리페 곤잘레스 모랄레스 유엔 이주민 인권 특별보고관은 폴란드가 우크라이나 난민들은 대거 수용하면서 다른 지역 출신 난민들은 거부하고 있다며 폴란드의 이중 잣대를 비판했다.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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