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흑두루미 3000마리…AI 창궐하는데 설마?

김기범 기자 2022. 12. 12.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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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동 온 야생조류 ‘행방묘연’
‘먹이주기’ 등 활동 추적 시급
독수리, AI 저항성 강해 ‘다행’

국내로 피난 온 멸종위기 흑두루미 3000여마리는 어디로 갔을까.

조류인플루엔자(AI)로 세계 곳곳에서 가금농장의 닭, 오리 등은 물론 다양한 야생조류도 폐사하면서 생태계 균형이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과 일본에서는 겨울 철새이자 멸종위기종인 흑두루미 개체 수가 이번 AI 창궐로 한꺼번에 7%가량이 줄었다.

12일 국내 조류 전문가, 국립생태원, 외신 보도 등을 종합하면 AI로 인해 일본에서 폐사한 흑두루미 개체 수는 지난 8일 기준 1164마리로 집계됐다. 국내에서는 전남 순천, 경남 김해·창녕 등에서 90마리 이상의 흑두루미가 폐사했다. 전 세계 흑두루미 1만8000여마리의 7%가량이 죽은 셈이다. 과거 최다 기록이었던 2020년(125마리)의 10배 가까운 흑두루미가 폐사하면서 전 세계 흑두루미 개체군 유지에도 빨간불이 들어왔다. 천연기념물 228호인 흑두루미는 러시아, 중국 북동부 등에서 남하해 한국, 일본에서 월동하는 철새다.

폐사와 함께 우려를 키우는 것은 국내로 건너온 흑두루미 중 상당수의 행적이 묘연하다는 점이다. 순천만에서는 지난달 21일 9841마리, 22일 7600여마리가 관찰됐는데 현재는 3500마리가량만 확인됐다. 남해안인 하동 갈사만에서도 500마리 미만만 관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일본으로 다시 남하한 일부 개체를 제외하면 약 3000마리가 국내 곳곳에 흩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행방불명 상태인 이 흑두루미들이 어디서 자고, 먹이활동을 하는지 추적하는 것은 AI 전파를 막기 위해 중요하다. 하지만 환경부는 매년 하는 조류동시센서스를 최근 실시한 것 외에는 손을 놓고 있다.

전문가들은 흑두루미들이 AI를 전파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적절한 양의 먹이를 넓은 지역에 살포해 이들을 잡아둬야 한다고 주장한다. 순천만에서는 지난 4일부터 이 같은 방식의 먹이주기를 하고 있지만 다른 지자체들은 AI로 인해 먹이주기를 중단했다. 철원, 천수만 등에서만 일부 민간단체가 먹이를 제공하고 있다. 조류 전문가인 이기섭 박사(한국물새네트워크 대표)는 “먹이주기에는 먹이를 찾아 분산될 수 있는 새들을 (일정한 공간에) 잡아두는 의미도 있다”며 “먹이가 부족해지면 AI뿐 아니라 굶주림 등 다른 요인으로 인한 질병에 걸리는 개체도 늘어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흑두루미들끼리 접촉을 줄이기 위해 먹이를 넓게 살포하는 방식으로 주면 감염 위험성이 작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겨울철마다 국내를 찾는 멸종위기 철새 독수리에서는 고병원성 AI 감염 폐사 사례가 나오지 않는 것을 불행 중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 다른 맹금류와 달리 동물의 사체만 먹는 독수리는 대량 감염사태가 발생하면 개체 수가 급감할 위험이 있다. 천연기념물 제243-1호인 독수리는 ‘하늘의 제왕’이라는 통념과 달리 사냥을 전혀 하지 않는다. 초원의 청소부라 불리는 하이에나처럼 청소동물(scavenger)로 분류되는 조류다.

국내에서는 독수리 감염 사례가 나오지 않았지만 고병원성 AI에 걸린 다른 조류 사체를 먹고 감염된 독수리들 사례가 해외에서는 이미 확인됐다. 미국 조지아주에서는 지난 8월 적어도 700여마리의 검은대머리독수리(Black Vulture)가 폐사했다. 전문가들은 국내 독수리의 경우 사체를 먹는 특성에 맞춰 위가 발달하면서 바이러스에 강한 특성을 갖고 있고, 먹이를 삭혔다가 천천히 소화하는 습성 등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백운기 국립대구과학관장이 2014년 발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유전체(게놈, genome) 분석 결과 독수리는 위산의 분비·면역과 관련된 유전자가 특이하게 변화하면서 썩은 고기를 먹어도 병원체에 감염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백 관장은 “AI가 상시 발생하는 몽골에 서식하는 독수리가 저항성이 강하고, 국내의 경우 사체 수거도 빠르게 이뤄지고 있어 피해가 적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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