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의 시네마 에세이 <74> 다이 하드] 전설이 된 액션 영화의 절대 공식 ‘다이 하드’

김규나 2022. 12. 12.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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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이 하드’의 장면. 사진 IMDB

인간은 무엇을 위해 목숨 걸고 싸울까. 도망치거나 죽은 척하거나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 같은 상처를 입고도 불사신이라도 된 듯 다시 일어나 이 악물고 싸우게 하는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숨거나 항복하면 편할 텐데, 왜 유리 파편이 수없이 박힌 맨발로 총알이 날아다니는 사지에 뛰어들어 적과 맞서는 것일까.

누구는 정의와 진실과 평화 같은 거창한 이상을 위해 싸우고 누군가는 책임감과 의무감 때문에 싸운다. 돈과 명성과 출세를 위해 맹렬히 덤비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당신은? 만약 이번 크리스마스이브에 산타클로스가 나타나 목숨 걸고 지키고 싶은 한 가지를 말하라 한다면, 당신은 뭐라고 대답할까. 

뉴욕 경찰국 소속 형사 존 맥클레인은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내기 위해 로스앤젤레스에 온다. 비행기 여행을 질색하면서도 장거리를 날아온 이유는 별거 중인 아내 홀리와 두 아이가 너무나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에 존은 아내를 잘 설득해서 가족을 되찾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홀리는 국제적인 대기업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고위급 임원이다. 일에서 보람을 느끼는 그녀는 남편과 함께 살던 뉴욕을 떠나 아이들을 데리고 머나먼 도시로 날아왔다. 그녀의 능력과 성공을 증명하듯 공항에는 박봉의 형사가 평생 한 번도 타볼 일 없을 것 같은 고급 리무진이 마중 나와 있다.

존은 아내가 자신을 떠나 선택한 회사의 건물 앞에서 조금은 기가 죽는다. 도시에서 가장 높이 솟은 빌딩은 하늘이 무너져도 꿈쩍하지 않을 것처럼 도도하게 서 있다. 그 빌딩 30층에서 존의 아내는 사장과 그녀 휘하의 직원들과 함께 근사한 크리스마스 파티를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

존과 홀리는 재회한다. 그리워서 날아왔고 설레며 기다렸지만 두 사람은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할 방법을 찾지 못한다. 어느 한쪽이 직업을 포기하지 않는 한 물리적 거리의 벽을 뛰어넘을 수 없으리라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다. 아내가 벌써 이혼이라도 한 것처럼 자기 성을 버리고 친정 쪽 성을 쓰는 것도 존을 불안하게 한다. 큰 의미가 있는 건 아니라고 아내가 변명했지만, 존은 납득하지 못한다.

홀리는 일을 핑계로 방을 나가고 혼자 남은 존은 잘못 꿰어버린 첫 단추를 어떻게 다시 풀고 채워야 할지 알지 못한다. 일에서는 강하지만 가족 앞에서는 서툴게 허둥거리는 존과 홀리의 모습은 누구나 감추고 살아가는 나약함의 일면이기도 하다.

그때 총소리가 귀를 찢는다. 한스 그루버가 이끄는 국제 테러단이 침입, 빌딩을 장악하고 파티 참가자 수십 명을 인질로 잡은 순간이었다. ‘홀리는 어디 있지? 그녀는 무사할까?’ 유일하게 인질로 잡히지 않은 존은 본능적으로 총을 집어 들고 상황 파악에 나선다. 

괴한들의 목적은 회사 금고에 있는 600만달러(약 77억원). 한스는 금고의 암호를 알려주지 않는 사장을 아무런 망설임 없이 사살해버린다. 그들에겐 사장의 도움 없이도 비밀번호를 풀 수 있는 해커가 있었고 경찰을 상대할 수 있는 총과 폭탄은 물론 미사일도 있었다. 존은 그들이 목적을 위해서라면 파리 목숨보다 쉽게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악당이라는 걸 알고 두려워진다. 사장이 죽은 지금, 다음 희생자는 홀리가 될 가능성이 컸다. 더구나 그들의 작전을 알고 있는 자신의 존재가 드러난다면 아내는 더 큰 위험에 빠질 게 분명했다.

존은 전화가 불통인 걸 확인하고 화재 경보를 울려 빌딩 내 위기 상황을 외부에 알리려 했지만 소방대는 기기가 오작동했다는 악당들의 어설픈 변명을 듣고 코앞에서 돌아가 버린다. 계획을 방해하는 훼방꾼이 있다는 걸 알게 된 한스는 부하에게 존을 제거하라고 명령한다. 죽이겠다고 달려드는 악당에게서 자기 목숨을 지키고, 범죄자들을 소탕하고, 인질과 아내를 안전하게 구할 수 있는 사람은 이제 존, 한 사람뿐이다. 

이때부터 오락 액션 영화의 전설, 존 맥클레인의 활약이 종횡무진 펼쳐진다. 그가 형사로서 개인의 역량을 발휘하는 동안 경찰 조직과 간부들은 책임론을 운운하며 헛다리만 긁는다. TV에도 전문가란 사람들이 나와 문제 해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이론만 늘어놓는다. 특종 욕심에 사로잡힌 기자는 홀리의 집에 찾아가 아이들을 노출시키고 존의 신분까지 공개, 가족 모두를 위험에 빠뜨린다. 인질을 통해서도 목숨이 경각에 달린 순간 드러나는 인간의 속성을 그려낸다. 

옆집 백수 아저씨처럼 흰색 ‘메리야스’만 입고 총알 사이를 맨발로 뛰어다니는 남자, 피투성이가 되어 고군분투하면서도 결말을 낙관하고 웃음을 잃지 않고 적에게 농담까지 던질 줄 아는 존 맥클레인, 그는 악당을 물리치고 인질과 아내를 무사히 구한 뒤 아이들과 함께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맞이할 수 있을까. 

성공하는 액션 영화에는 뻔한 공식이 있다. 정의롭고 진실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주인공이 악당 때문에 죽을 고생을 하지만 결국 통쾌하게 이긴다. 가족의 사랑과 믿음까지 얻는 결말이라면 더 바랄 게 없다. 현실에서는 진실과 거짓, 선과 악, 벌과 상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족도 짐으로만 느껴질 때가 많다. 그래서 ‘다이 하드’는 1988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개봉했다. 존 맥티어난이 감독했고 브루스 윌리스가 존 맥클레인을 맡았다. 

신이 있다면 예상을 뒤엎는 드라마틱한 전개와 반전을 가미한 해결을 좋아하는 게 틀림없다. 만약 존이 아내를 만나러 오지 않았다면 한스는 아주 쉽게 금고를 털어 유유히 사라졌을 것이다. 한스와 맞닥뜨리지 않았다면 존은 아내에게 사랑을 증명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쓸쓸히 뉴욕으로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영화의 설정이지만 우리 인생에서는 그보다 더한 우연과 반전이 펼쳐진 적 한 번도 없었을까.

좋은 일이 오려고 지금 나쁜 일을 겪는다, 행복은 곧 올지 모를 불행의 범퍼, 고마운 충격흡수장치다, 가족은 목숨 걸고 지켜야 한다, 착한 사람은 복을 받고 나쁜 사람은 벌을 받는다, 진심과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그러니 포기하지 말자. 아이들이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믿듯 연말만이라도 인생의 단순한 교훈을 믿는다면, 더 즐거운 새해를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 김규나
조선일보·부산일보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소설 ‘트러스트미’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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