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안과 맞물린 국정조사···야당 단독 개문발차 기로
여야가 어렵게 합의한 이태원 핼러윈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가 시작부터 흔들리고 있다. 국민의힘은 지난 11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건의안 국회 통과에 반발해 국정조사 보이콧을 만지작거리고, 더불어민주당은 야당끼리라도 국정조사를 하겠다고 맞서고 있다. 대치 중인 여야의 속내는 복잡하다. 여당은 ‘국정조사 보이콧 역풍’을, 야당은 ‘맹탕 국정조사’를 각각 우려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12일 국정조사 참여에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부산에서 연 현장 비대위 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국정조사 대상인 이 장관 해임건의안을 강행 처리함으로써 민주당이 합의 정신을 위배한 것”이라고 말했다. 주호영 원내대표도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이 장관 해임을 건의했기 때문에 국정조사가 무의미해졌다”며 “당 지도부와 상의하고 예산안 통과 상황을 봐가면서 (입장을)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에 즉각적인 국정조사 복귀를 촉구했다. 이재명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국정조사에 협조하지 않겠다고 겁박하는 태도는 결코 옳지 않다”고 비판했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위원 사퇴는 어렵사리 합의한 국정조사를 초장부터 무력화하는 시도이자 국민과의 약속 파기로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국정조사 보이콧 움직임은 유가족들의 가슴에 대못질하는 패륜이고 2차 가해”라고 했고, 서영교 최고위원은 “이상민 방탄하려고 국조특위 위원을 사퇴했나”라고 따졌다.
여야가 지난달 23일 예산안 처리 이후 시행하기로 합의한 국정조사는 위기를 맞고 있다. 국민의힘 소속 국조특위 위원 7명 전원은 전날 이 장관 해임건의안 국회 통과에 반발해 사의를 표명했다.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핵심 관계자)으로 꼽히는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은 해임건의안 통과 직후 “(국정조사는) 애초 합의해줘서는 안 될 사안이었다”고 주 원내대표를 비판했다. 국정조사는 예산안 처리와도 맞물려 있다. 민주당이 오는 15일 예정된 본회의에서 예산안을 단독으로 처리한다면 국정조사도 파행될 수 있다.
국민의힘은 여론의 지지가 높은 국정조사를 전면 거부하기에는 부담을 느끼고 있다. 원내 지도부 소속 한 의원은 “야당이 국정조사를 하면 내용이 이상하게 흘러갈 수 있으니 우리도 참여해서 적절하게 제어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고 밝혔다. 한 초선 의원은 “너희가 해임건의했으니 우리도 뺨 맞은 김에 집 나갈 거라는 식으로 대응하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말했다. 정부와 대통령실이 국정조사에 불참한다면 더 문제가 된다. 국정조사 증인이 국회에 정당한 사유 없이 불출석하는 것은 관련 법에 따라 3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해당하는 불법이다. 법과 원칙을 강조해온 윤석열 정부로서는 ‘불법 정부’ ‘내로남불 정부’라는 오명을 쓸 수 있다.
민주당도 내심 ‘맹탕 국정조사’를 우려하고 있다. 민주당으로서는 여당 위원들이 합의해야 원활한 증인 출석을 담보할 수 있다. 대통령실과 정부가 증인 출석을 거부하거나 자료 제출에 협조를 하지 않으면 곤란해진다. 다만 국민의힘 위원들의 참석 여부와 상관없이 참사 진상규명은 꼭 필요하다는 게 당내 중론이다.
양당은 예산안 합의 시한인 오는 15일까지 상황을 지켜볼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은 국조특위위원 사표를 수리하지 않고, 민주당도 야당 단독으로 특위 전체회의를 열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15일 이후에는 상황에 따라 야당 단독으로 국정조사를 개문발차할 수도 있다. 민주당 소속 우상호 국조특위 위원장은 이날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여당 위원들이) 예산안이 통과됐는데도 마지막까지 (국조특위 회의에) 안 들어온다면 그때 가서 야3당 단독으로 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조문희 기자 moon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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