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리지 않는 북·비틀린 닭…세련된 풍자미

이한나 기자(azure@mk.co.kr) 2022. 12. 12.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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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천 개인전 ‘쌍-댓구’
21일까지 갤러리시몬
갤러리 시몬에서 열리는 윤동천 개인전 전경 <이한나 기자>
갤러리 시몬에서 열리는 윤동천 개인전 전경 <이한나 기자>
입장하자마자 크고 하얀 북이 반긴다. 옆에 놓인 북채가 ‘어서 나를 들어 치라’며 유혹하는 듯싶다. 감행했지만 기대했던 소리는 전혀 울리지 않는다. 윤동천(65)의 ‘울리지 않는 신문고’란 작품이다. 기대가 꺾이는 순간 ‘아차’ 싶다.

쓴웃음을 짓게 하는 작가 윤동천의 개인전 ‘Pairs 쌍-댓구’가 통의동 갤러리 시몬에서 21일까지 열린다. 제목과 연결 지어 비판의식 가득한 신작들을 함께 감상할 기회다.

작가는 모더니즘 추상미술과 현실 참여적 민중미술의 대립 속에서 1990년대 한국 현대미술의 다원주의 경향을 대표한다. 지난 30년간 교수로 재직했던 서울대학교 서양학과에서 정년 퇴임후 여는 첫 개인전이다.

전시장 1층은 작품 제목이 댓구를 이룬다.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란 주제에 맞춰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이슈를 줄줄이 작품화했다. 2층에서는 ‘도처에 널린 아름다움’이란 주제로 소재와 작업이 쌍을 이룬다. 무심코 지나치는 일상 사물이 다른 사물과 나란히 서자 그 아름다움이 새롭게 다가온다.

‘새벽이 온다’는 제목의 회화는 가로 181.8㎝ 세로 227.3㎝ 초대형 캔버스에 덩그러니 글자 하나뿐이다. ‘닭’에서 좌우가 바뀐 ‘다’를 보니 군부 독재에 항거하던 민주화 메시지였던,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문장도 떠오른다.

은빛 메탈 판에 ‘기억나지 않습니다’라고 새겨진 작품 ‘이상한’(2022)은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글자 안에 털이 가득 났다. ‘양심에 털 났다’는 표현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것이다.

‘리얼리티-핫&쿨’(2022)는 걸그룹 블랙핑크를 연상시키는 색 분할에 이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국기색 배치, 얼룩무늬 군대 위장복 패턴 위에 작게 쓴 BTS로고는 올 한해 대중들 관심을 이끈 화제가 녹는 빙하 그림과 함께 병치돼 우리 시대를 관통하는 개념 추상화가 됐다.

한글을 적극 활용하고 한국어로만 표현할 수 있는 언어유희, 한국의 지역적 특징을 강하게 드러낸 일상 소재의 사용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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