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수록 인간관계 넓히고 타인을 사랑해야 행복”…이시형·곤노 유리, ‘초고령 사회’ 주제 대담

윤희일 기자 2022. 12. 12.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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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형 박사(오른쪽)와 곤노 유리 일본 다이얼서비스 대표가 지난달 22일 일본 도쿄 지요다구 다이얼서비스 본사 앞에서 대담을 하고 있다. 윤희일 선임기자

한국의 80대 이상 초고령 인구가 200만명을 넘어섰다. 우리는 그동안 이렇게 많은 사람이, 이렇게 오래 사는 상황을 접한 적이 없다. ‘국민의사’로 불리는 이시형 박사(88)는 지난 9월 출간한 책 <신인류가 몰려온다>에서 80대를 넘은 이 ‘초고령(Super Age) 인구’를 ‘신인류’라고 지칭했다.

이 박사는 이 책에서 “우리는 역사상 처음 마주하는 ‘신인류의 대거 출현’으로 무척 당황해하고 있다”고 지적한 뒤 일생 최후의 10년을 최고의 시간으로 만드는 노하우와 당장 필요한 정부 대책, 산업계의 대비책 등을 피력했다.

역사상 경험하지 못한 ‘신인류’의 대거 출현

이 박사가 지난달 22일 일본 도쿄에서 곤노 유리(今野由梨·86) 일본 다이얼서비스(주) 대표와 대담을 했다.

80대 중반의 나이에도 현역 기업가로 뛰고 있는 곤노 대표는 지난 3월 일본에서 <80대, 인생 지금부터>라는 책을 낸 바 있다. 곤노 대표는 이 책에서 80년 넘게 인생을 살아오면서 터득한 ‘건강하게 오래 사는 방법’을 자신의 체험과 구체적인 사례를 바탕으로 풀어냈다. 두 사람은 오래전부터 교류해온 친구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이번 대담에서 초고령 사회를 맞이한 사람들이 활기차게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삶의 방법과 정부 대책 등에 대해 진솔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이번 대담은 일본 도쿄도 지요다구에 있는 다이얼서비스(주) 회의실과 회사 주변 거리에서 진행됐다.

이시형 박사. 윤희일 선임기자

이시형=제가 이야기하는 ‘신인류’는 ‘초고령 사회의 노인’을 지칭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많은 사람이, 이렇게 오래 사는 상황을 경험한 적이 없습니다. ‘초고령(Super Age)’이라는 사회의 변화에 어떻게 적응해야 할지, 그 길을 알려줄 수 있는 ‘롤 모델’도 한국 사회에는 없습니다. 먼저 곤노 대표님께 궁금한 것이 있는데, 몇 살부터가 ‘고령자’, 그러니까 ‘노인’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곤노 유리=사실 저는 나이에 대해서는 평소에도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제 스스로의 나이에 얽매이지도 않고요. 사람의 나이는 그 사람의 생각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나이는 자기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물리적인 나이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얘깁니다. 자기 자신이 ‘나는 스무 살이다’라고 생각하면 그게 바로 자신의 나이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나이는 자신이 결정하는 것”

이시형=곤노 대표님은 86세인데도 한 번도 노인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으시군요. 저는 노인의 육체적인 변화를 살펴볼 때 ‘저 사람은 나이가 들었다’라고 판단하게 되는 시기를 75세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본격적인 노인’, 그러니까 누군가가 도와주지 않으면 걷기 등의 생활이 불편해지는 시기는 대략 85세 정도부터로 봅니다.

곤노 유리=저는 지금까지 저 스스로를 노인이라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이시형=그런데 요즘 한국을 보면 ‘노인을 싫어하는 시대’가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차 한 잔 마시는데 예약을 해야 하고, 뭐를 주문할 때 기계(키오스크 등)를 이용하도록 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점점 노인이 살기 힘든 환경이 되고 있습니다.

곤노 유리 대표. 윤희일 선임기자

곤노 유리=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노인을 미워해서 그런 첨단화가 진행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경우 50년 전에 세계에서 처음으로 전화를 이용해서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서비스를 시행했습니다. 일반인이 발신자가 되는 뉴미디어로서 전례가 없는 비즈니스를 시작한 겁니다. 지금은 최첨단 기술을 이용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86세의 벤처 1세대 창업가인 제가 최첨단 기술을 이용하는 사업을 전개해서 총리대신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노인의 입장에서도 적극적으로 첨단 기술을 배우고 몸에 익혀서 대응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시형= 한 가지 덧붙여 말하면 젊은이들은 노인의 경험과 살아온 지혜를 배우고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가 올 수 있습니다. 벤처기업의 실패율이 아주 높다고 하는데, 신중하고 노련한 늙은 피도 함께 가야 조직이 안정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껏 축적된 노인력(老人力, 노인의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벤처기업도 경험이 많은 사람을 사원으로 고용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86세 대표가 젊은이들과 함께 첨단기술을 바탕으로 한 서비스를 하는 다이얼서비스가 그 대표적인 예라고 생각합니다.

곤노 유리=맞습니다. 저희 회사는 첨단 기술을 갖고 있는 젊은 직원들과 수많은 경험을 쌓아온 저의 힘을 모아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저는 최첨단 기술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저의 다양한 경험과 젊은 직원들의 최첨단 기술을 융합해 사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행복해져…늘 감사하는 마음이 중요”

이시형=이번에는 구체적으로 행복해지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저는 자기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행복해지고, 반대로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불행해진다고 생각합니다. (뇌과학자이기도 한)저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 정말로 뇌의 회로가 긍정적으로 변하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부정적으로 변하게 됩니다.

곤노 유리=저는 요즘 강연을 많이 하는데 사람들에게 “지금부터 여러분들이 하는 것 중에는 안 되는 것, 실패하는 것이 많겠지만, 그때마다 실망하지 말고 오히려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시련이 자신을 위한 큰 선물이라고 생각하라”고 충고하곤 합니다. 모든 것을 감사하다고 받아들이는 것,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이시형=저는 40대부터 노후를 준비하라고 말합니다. 건강뿐 아니라 은퇴 이후의 계획, 그러니까 은퇴 이후의 직업까지 치밀한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얘깁니다. 곤노 대표님의 경우 창업 이후 지금까지 은퇴하신 적이 없으시지만, 저의 이런 생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곤노 유리=저는 제1의 인생을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바로 제2의 인생의 준비라고 생각합니다. 제1의 인생이 제2, 제3의 인생을 준비하기 위한 큰 재산이 된다는 얘깁니다. 제2의 인생이 중요하니까, 제1의 인생은 ‘이 정도면 된다’는 식으로 타협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행복한 노후를 위해서는 인간관계가 가장 중요…말년에 고독만큼 무서운 것은 없어”

이시형=인생 말년을 잘 보내기 위해서는 유대관계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하는 말년을 맞이했다면, 그것은 성공한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전화 없이 슬리퍼 차림으로 덜컥 찾아갈 수 있는 친구가 셋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행복한 노후를 보내기 위해서는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가족 또는 친구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또 사회적 유대관계를 많이 맺어야 ‘사는 재미’, ‘사는 보람’을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단체와 연을 맺어놔야 합니다. 인생 말년에 고독만큼 무서운 병도 없습니다.

곤노 유리=그렇습니다. 그리고 인간관계를 넓히기 위해서는 자신의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제1의 인생은 졸업했다. 거기서 많은 경험을 했고, 성장했다’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더 큰 사회가 있다’고 생각하고 거기서 자신의 역할을 찾아야만 합니다. 과거의 자신의 지위 등은 모두 잊고 자기 나름의 생활을 이어가는 것이 멋있는 것입니다.

이시형=지금부터는 부드러운 이야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저는 고령자들이 자기 자신을 잘 관리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몸에서 나는 냄새는 물론 패션과 머리 스타일까지 잘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곤로 유리=동의합니다. 저는 미용실에는 전혀 가지 않지만, 제 몸은 제 손으로 확실하게 챙기고 가꾼 뒤 밖에 나갑니다. 머리도 제 손으로 직접 자릅니다. (곤노 유리 대표는 자신의 책에서 회사에 출근할 때나, 회의 등 모임에 나갈 때 지금도 10㎝ 높이의 하이힐을 신는다고 밝힌 바 있다. 또 옷도 언제나 원피스에 재킷으로 이루어진 정장을 차려입는다.)

이시형=저는 초고령사회의 생존 조건으로 인지적 자극, 도전, 규칙적인 운동, 금연, 숙면, 면역, 좋은 식단 등 거명하는데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언제까지나 매력적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저는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두 남녀가 만나면 가벼운 설렘이 있어야 정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곤노 유리=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은 언제까지나 매력적으로 있고 싶어한다는 본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생애를 ‘현역’으로 뛰어야 행복해져

이시형=저는 생애를 현역으로 뛰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걸 ‘액티브 시니어’라고 부릅니다. 웅크란채 사는 소극적인 초고령자가 아니라, 여전히 도전적이고 적극적인 초고령자가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초고령층도 모험을 할 것을 권유합니다. 그 모험 중에서 특히 추천하고 싶은 것은 요리와 여행입니다. 요리는 아주 창의적인 일이어서 좋고, 여행은 예기치 않은 일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좋은 경험을 쌓을 수 있기 때문에 좋습니다.

곤노 유리=저는 사실 ‘생애 현역’이라는 과제를 지금 실천하고 있습니다. 저처럼 86세까지 이렇게 현역으로 활동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제가 평생 현역으로 살아보니까 진짜 행복하고 건강해진다는 것을 늘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제 인생은 그 자체가 모험이었습니다. 젊은 시절 미국과 독일을 돌고, 벤처기업을 창업한 것 모두가 모험이었습니다.

노인 문제를 대비하기 위한 연구기관 설립 시급

이시형=이야기의 주제를 바꿔보겠습니다. 저는 한국도 선진국처럼 초고령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를 종합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연구소나 기관을 설립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의료기관만의 참여만으로는 안 되고, 의학은 물론 공학, 식품영양학, 법학, 사회학 등 여러 학과의 전문가가 참여하는 종합연구소가 정부 주도로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는 약 700만명에 이르는 베이비붐 세대가 최근 줄줄이 은퇴하고 있는데 이들이 다시 일을 할 수 있는 대책도 정부 차원에서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곤로 유리=국가가 초고령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는 말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고령자가 됐다고 해서 나라나 사회에 너무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고령자 스스로도 변하는 시대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곤노 유리 일본 다이얼서비스 대표(오른쪽)가 지난달 22일 일본 도쿄 지요다구 다이얼서비스 본사 출입구 앞에서 안에서 이시형 박사에게 회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윤희일 선임기자
앞으로는 ‘초고령자 대상 산업’이 뜬다

이시형=화제를 바꿔보겠습니다. 초고령자 관련 산업이야말로 신천지를 여는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초고령 국가를 대비한 한국만의 새로운 시스템을 만든다면, 초고령 산업도 ‘한류’나 K-POP‘과 같이 세계를 이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초고령자 관련 산업을 돈을 벌 수 있는 분야로 생각해야 합니다.

곤노 유리=저도 초고령 산업이 앞으로 유망해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시형=일본은 고령자 대상 산업이 상당히 발전돼 있는데 한국은 그렇지 않습니다. 상당수 한국의 부유층 고령자들이 일본의 고령자 대상 상품을 쓰는 게 현실입니다. 초고령 사회의 산업은 식(食), 주(住), 이동수단, 건강산업이 주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분야는 경쟁이 없는 ‘블루오션’ 시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인공지능(AI)이나 로봇 산업도 중요한 소비자는 고령자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한가지 중요한 것은 초고령 관련 산업의 제품이나 서비스는 초고령 소비자의 손을 거치도록 해야 합니다. 초고령층 소비자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제품이나 서비스에 반영해야 한다는 얘깁니다.

나이가 들수록 ‘자기’보다 타인을 더 사랑해야 행복해져

곤노 유리=저는 다이얼서비스라는 회사를 통해 아날로그적인 것과 디지털적인 것을 잘 융합해서 지금 시대가 요구하는 인간의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고 ‘인간관계’를 맺어주는데 힘을 쏟아왔습니다. 초고령 사회를 맞은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애’가 아니라 ‘타인애(타자애)’가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타인에의 사랑이 결국 자신의 노후의 삶과 행복까지 결정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나만의 노후가 아니라 모두의 노후를 생각하는 것도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시형=오늘 대담의 내용은 한국과 일본 양국의 초고령자는 물론 젊은이들에게도 좋은 메시지가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곤노 유리=오랜 시간 정말로 감사합니다. 아주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이시형과 곤노 유리, 어떤 사람인가

1934년 생인 이 박사는 정신과 의사이자 뇌과학자다. 한국자연의학종합연구원 원장, 힐리언스선마을 촌장 등으로 활동하면서 왕성한 저술 활동을 펼치고 있다. 베스트셀러 <배짱으로 삽시다> 등 100권이 훨씬 넘는 저서를 낸 바 있다.

1936년 생인 곤노 대표는 1969년 도쿄에서 다이얼서비스를 창업한 1세대 벤처기업가다. 핵가족화에 따른 육아 스트레스로 영아 살해 사건이 사회문제가 되던 시절, 세계 최초의 전화상담 서비스인 ‘아기 110’를 만들었으며, 지금은 첨단정보통신기술(ICT)를 바탕으로 각종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는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으로 일본에 끌려갔다가 숨진 조선인의 유골을 봉환하는 사업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윤희일 선임기자 yh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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