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인의 직격 야구] 골든글러브 시상일자(요일)를 고정해야

권정식 2022. 12. 12.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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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골든글러스 수상자들과 허구연(아랫줄 가운데) 한국야구위원회 총재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이정후 김혜성 나성범 오지환 안우진 이지영 박병호 이대호 허구연 총재 양의지 최정.  사진=연합뉴스 제공

수상자 선정에 대해 약간의 논란이 있었던 '2022 골든글러브 시상'이 지난 9일 열렸다. 그런데, 왜 11일이 아닌 9일에 열렸지? 필자가 현장을 누비던 2000년대 초반만 해도 11일에 꼭 개최됐었는데….

알려졌다시피 골든글러브 시상식은 1981년 12월 11일 프로야구 창립 발기총회를 기념해 1982년 12월 11일부터 요일에 상관없이 매년 같은 날짜에 열렸다.

그러던 것이 2011년 8월 취임한 구본능 KBO 총재가 "주말과 중복되면 방송사 중계사정 등 여러 문제가 있을 수 있어 평일로 변경하자"고 제의해 2013년부터 2019년까지 매년 12월 둘째주 월요일 혹은 화요일에 개최됐다.

2020년부터 올해까지는 둘째주 금요일에 3년 연속 열리고 있다. 하지만 시상일자를, 월세방 옮기듯 이리저리 변경하는 것은 모양새가 안좋다. 요일을 고정하는 게 상(賞)의 권위를 위해 바람직한 일이다(내년 12월 11일은 월요일이어서 11년만에 창립기념일에 열릴 예정).

앞서 논란이 있었다고 하는 이유는, '학폭' 안우진(23․키움)의 투수 부문 수상은 그렇다쳐도 올해 최고의 타자인 이정후(24․키움)가 9표 모자라 만장일치 득표를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9명의 선정위원이 어떤 소신으로 이정후가 아닌 다른 선수에게 표를 던졌는지 모른다(외야수는 동일 위원이 3명에게 두루 투표할 수 있음에도 이정후를 아예 제외시켰음). 하지만 시즌 MVP이며 '타격 5관왕'에게 '9표의 반란'이 나왔다는 것은 선정에 공정성이 결여된 것이라는 걸 일부 언론과 팬들은 지적하고 있다.

반란표의 소속사와 이름은 KBO가 밝히지 않으면 알 수 없지만, 내년부터는 논란을 감수하고라도 메이저리그처럼 과감하게 신원을 공개하는 게 옳지 않을까. 매사에 공정한 걸 선호하는 2030세대들을 위해서도.

제1회 KBO 이사회는 창립총회 1주일후인 12월 18일에 열렸다. 참석자는 서종철 KBO 초대 총재, 이용일 초대 사무총장외 박용민(OB 베어스 구단 대표), 박영길(롯데 자이언츠 초대 감독), 김병주(MBC 이사), 김동영(삼성생명 임원), 박현식(삼미 슈퍼스타즈 초대 감독), 김명하씨(해태그룹 광고 대행사인 코래드 상무) 등 8명이다. 각 구단 임원이 결정되지 않은 상태여서 박용민 대표를 제외하면 모두 대리참석이다.

이날 이사회에서는 1. KBO 기구안 2. 82년 팀당 경기수 80게임 3. 올스타전은 3차례 개최 4. 코리안 시리즈는 7전 4선승제 등을 확정지었다. KBO 기구를 보면 이양우(법률), 장훈(해외), 박종환(국내) 등 총재 특별보좌관(특보) 3명의 임명이 눈에 띈다.

창립멤버 6개 팀을 급하게 정하는 등 출범에 따른 기초작업이 부실했다. 또 국방부장관 출신 서종철 총재는 일본에서 고교시절 잠깐 선수생활을 했지만 40년 군 생활을 한 야구 문외한이므로 이들 3명 특보의 활동은 초창기 기반을 다지는데 크게 이바지했다.

하지만 현재 총재 특보의 역할은 미미할 정도다. 프로야구가 출범 40년을 거치며 국민스포츠로 큰 성장을 이뤘으나 한경기 평균 관중 1만명대 회복, 눈에 띄는 경기시간 단축, 마케팅 활성화 및 수익 증대, 시한폭탄인 '독립구단' 키움 히어로즈에 대한 이런저런 대책 수립, 대한야구베이스볼협회와의 상생 및 공존(경기력향상과 직결) 등 해결해야 할 현안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다. 총재와 사무국 임직원들이 부딪히기엔 너무 큰 사안들이어서 특보의 도움이 절실히 요청된다.

그러나 조계현(전 KIA 단장), 유용석 두 특보가 총재를 '특별히 보좌'하는지는 외부에 거의 드러나지 않고 있다(이승엽 특보는 두산 감독 선임후 사퇴). 조계현 특보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유소년 야구 선수들에게 재능을 기부했는데 재능 기부는 순회코치가 할 일이지 특보의 임무는 결코 아니다.

컴퓨터 및 주변장치, 소프트웨어 도매업이 주업종인 (주)한국정보공학의 대표겸 IT 전문가인 유용석 특보의 활동도 제대로 발표된 적이 없다. 거기에다 특보의 존재감이 없어서인지 KBO 기구표에 빠져 있고, KBO 내부에서도 특보가 누구인지 모르는 다소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초기 3명의 특보 중 '일본 프로야구의 전설'인 재일동포 장훈 씨의 역할은 대단했다. KBO 리그는 메이저리그와 격차가 컸으므로 출범이 46년 빠르긴 하지만 지리적으로도 가까운 일본 프로야구(NPB)에서 배울 게 많았기 때문이다.

장훈 씨는 1982년 3월 27일 역사적인 개막전에 NPB 시모다 커미셔너, 쇼리끼 요미우리 자이언츠 구단주 등 VIP들을 초대한 데 이어 일본 야구의 영웅인 나가시마 초청 세미나 개최로 선진 일본 프로야구의 기술 습득에 힘을 보탰다.

장훈 씨는 초창기 6개팀중 특히 OB 베어스가 명문 구단의 초석을 쌓는데 도움을 줬다. OB

박용민 초대 사장은 야구 문외한이었다. 야구단 발령 이전에는 합동통신(연합뉴스의 전신) 취재담당 부국장을 맡고 있었다. 1981년 11월 어느 날, 바로 위 형인 박용곤 두산그룹 회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두산 그룹이 프로야구단 창설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는데, 단장겸 대표를 맡아줘야겠어" 이 전화 한통으로 박사장은 베어스에서 단장겸 대표로 10년간 봉직했다. 그러나 야구를 잘 몰랐으므로 앞선 일본 프로야구를 배우겠다는 일념으로 장훈 씨와 연결했고 장 씨를 통해 일본 야구 전문가를 숱하게 소개받았다. 그 일본 전문가들을 만나러 1982년 한해에는 1주일이 멀다하고 일본을 방문해 구단 운영의 노하우를 한껏 전수받았다.

이처럼 주변의 자문이나 조언을 받으면 계획보다 빠른 발전을 이룰 수 있다. KBO 리그와 KBO 사무국에는 허구연 총재 혼자 해결하기 힘든 현안 및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위인설관(爲人設官, 사람을 위해 벼슬자리를 일부러 마련함)'식으로 특보를 둘게 아니라 현안 해결의 적임자를 임명해 프로야구 활성화를 이뤄야 하지 않을까. 본지 객원기자

1985년 7월 16일 OB 베어스가 MBC 청룡에 '스리피트 라인'문제로 몰수게임패를 당한 다음날 박용민 당시 사장이 박용곤 구단주에게 '사건 개요'를 브리핑하고 있다. 김성근 감독(당시 44세)이 배석했고 구경백 1군 매니저(현 일구회 사무총장)는 급히 불려가는 바람에 티셔츠에 청바지차림이다. 사진=두산 베어스 제공
김수인 객원기자

 

스포츠한국 권정식 jskwon@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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