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동성애 차별이 '표현의 자유' 위반에 해당하느냐는 논쟁

심영구 기자 2022. 12. 12.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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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페퍼민트 NewsPeppermint

"한국에는 없지만, 한국인에게 필요한 뉴스"를 엄선해 전하는 외신 큐레이션 매체 '뉴스페퍼민트'입니다. 뉴스페퍼민트는 스프에서 뉴욕타임스 칼럼을 번역하고, 그 배경과 맥락에 관한 자세한 해설을 함께 제공합니다. 그동안 미국을 비롯해 한국 밖의 사건, 소식, 논의를 열심히 읽고 풀어 전달해 온 경험을 살려,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이라도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부지런히 글을 쓰겠습니다.

미국 대법원은 미국 사회를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한 기관입니다. 한국의 대법원과는 기능과 역할이 다르므로 한국의 사법 제도를 곧바로 대입해 바라보면 오히려 정확히 이해하기 어려운 기관이기도 합니다.

미국 대법원의 권한 가운데 가장 기본적이며 중요한 건 바로 미국 헌법을 최종적으로 해석하는 일입니다. 미국 최상위법인 헌법을 시대에 맞게 해석, 적용하는 권한은 오직 대법원만 가지고 있습니다. 보통법 전통을 따르는 미국에서는 법원 판례가 곧 법에 준하는 효력을 지닙니다. 그래서 미국 대법원의 판례는 헌법에 준하는 효력을 지닙니다.

미국 헌법은 본문 7개 조항과 수정문 27개 조항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국가를 구성하는 요건 등을 담은 본문보다 실질적인 내용의 중요성은 수정헌법이 더 크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수정헌법은 미국 법체계에서 대단히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그 중요한 수정헌법 제1조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의회는 종교를 만들거나, 자유로운 종교 활동을 금지하거나, 발언의 자유를 저해하거나, 출판의 자유, 평화로운 집회의 권리, 그리고 정부에 탄원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어떠한 법률도 만들 수 없다.

흔히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내용으로 알려진 조항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헌법 치고는 조문이 짧고 간략하죠. 시대에 따라 또 환경, 맥락, 상황에 따라 조금씩 또는 크게 달리 해석될 여지가 있습니다. 그 여지를 채우는 일, 즉 헌법을 해석하는 권한을 가진 대법원이 중요한 겁니다.
미국 대법원은 한 해에 보통 70~80건의 판결을 하는데, 여름 휴지기 전인 6월 말, 7월 초에 대부분 판결이 나옵니다. 이때가 대법원 관련 뉴스가 가장 많이 나오는 시기입니다. 여름이 아닐 때 나오는 대법원 관련 뉴스는 열에 아홉 구두 변론을 듣고 쓴 기사들입니다. 오늘 소개한 칼럼도 지난 5일 대법원에서 열린 한 사건의 구두 변론에 관한 글입니다.
 

종교적 신념이냐 소수자 보호


이번 사건에서 가장 큰 쟁점은 콜로라도주 차별금지법이 개인의 신념을 지키지 못하게 함으로써 수정헌법 1조에 명시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느냐입니다. 과거형 '억압했느냐'가 아니라 '억압하느냐'라고 쓴 데 주목해 주세요. 글 뒤에 그렇게 쓴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쟁점부터 좀 더 풀어보면 이렇습니다.

웹 디자이너 로리 스미스(Lorie Smith) 씨는 303 크리에이티브(303 Creative)라는 온라인 마케팅 회사를 차려 일합니다. 303 크리에이티브는 결혼을 앞둔 커플을 위해 결혼식 웹사이트를 제작해주는 서비스를 출시하려 합니다. 누구나 돈을 내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데, 이 서비스를 출시하려면 콜로라도주 공공시설법(public-accommodations law) 상의 차별금지 조항을 따라야 합니다. (콜로라도주뿐 아니라 미국 모든 주에 비슷한 차별금지법이 있습니다.)

대중을 상대로 장사하는 사업체는 인종, 종교, 성별은 물론 성적 지향을 두고도 고객을 차별해선 안 됩니다. 그런데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스미스 씨는 동성 결혼에 반대합니다. 2015년에 미국 대법원이 동성 결혼을 합법화했고, 이제는 미국인 가운데 동성 결혼을 찬성하는 이들이
[ https://www.law.cornell.edu/supremecourt/text/14-556 ]70%를 넘었지만, 스미스 씨는 무릇 결혼이란 남성과 여성의 결합이어야만 한다고 믿는 30%에 속하는 사람입니다.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지만, 결혼식 웹사이트를 만드는 일을 하려다 보니 문제가 생깁니다. 콜로라도주 차별금지법 때문입니다.
[ https://news.gallup.com/poll/393197/same-sex-marriage-support-inches-new-high.aspx ]

동성 커플이 결혼식 웹사이트 제작을 의뢰하는 상황을 가정해 보죠. 스미스 씨는 법을 어기지 않기 위해 자기 신념을 거스르며 억지로 주문을 받아야 하는 처지에 놓입니다. 동성 결혼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의뢰를 거절하면 이는 성소수자 차별이 되고, 곧 차별금지법 위반이 되니까요. 스미스 씨는 이를 수정헌법 1조가 보장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콜로라도주 법무부는 이에 차별금지법이 소수자를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취지에 맞게 적용되고 있을 뿐 스미스 씨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종교적 신념을 억압하지 않았다고 반박했습니다.
 

데자뷔? 동성 결혼 케이크 둘러싼 공방

대법원 판결은 그전까지 나온 모든 판결보다 우선합니다. 이를 두고 대법원 판결이 기존 판례들을 덮는다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2015년 동성 결혼을 합법화한 대법원 판결도 그랬습니다. 이전까지 동성 결혼을 인정하는 주도 있었고, 법으로 금지한 주도 있었으며, 예외적인 상황을 둔 곳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법원이 동성 결혼을 합법화하면서 모든 판례가 덮였습니다. 이제 동성 결혼에 반대하는 진영에서 이를 되돌리는 방법은 새로운 대법원 판결을 끌어내는 것뿐이었습니다. 1973년 로 대 웨이드 판결에 따라 50년 가까이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로 인정돼 온 여성의 임신중절권이 올해 6월 돕스(Dobbs) 판결로 무효가 된 것처럼 말이죠. 2015년 대법원 판결 이후 보수 단체들은 곧바로 이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보수 단체가 처음으로 결과를 낸 판결이 바로 2018년 마스터피스 케이크숍(Masterpiece Cakeshop) 대 콜로라도 민권위원회(Colorado Civil Rights Commission) 판결입니다. 잭 필립스라는 케이크 제빵사가 동성 커플의 결혼식 케이크 주문을 거절하자 동성 커플이 차별금지법 위반이라며 제빵사를 고소한 사건입니다. 당시 대법원은 7:2로 마스터피스 케이크숍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다만 대법원은 종교적 신념 대 차별금지법의 관점에서 사건을 다루지 않았습니다. 그보다 콜로라도주 정부가 차별금지법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필립스를 지나치게 적대적으로 다룬 데 초점을 맞췄다는 해석이 많았습니다. 결국, 필립스는 승소했지만, 동성 커플을 위해 결혼식 케이크를 만들어달라는 주문이 필립스의 표현의 자유나 종교적 신념을 침해하고 억압하는지, 즉 핵심 쟁점에 관한 결론은 나지 않았습니다.

5년 전 마스터피스 케이크숍과 제빵사 필립스를 변호했던 자유수호연맹(Alliance Defending Freedom)이라는 단체가 이번에도 303 크리에이티브와 로리 스미스의 변호를 맡았습니다. 303 크리에이티브는 실제로 마스터피스 케이크숍에서 10km도 채 떨어지지 않은 이웃 동네에 있는 가게입니다. 자유수호연맹은 이번에는 지난번보다 더 완벽한 승리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표현의 자유를 앞세워 차별금지법이 적용되는 범위를 최대한 줄이겠다는 거죠. 차별금지법 자체를 철폐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차별금지법을 피해 갈 수 있는 예외를 늘리기만 해도 보수 단체로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셈입니다.
[ https://adflegal.org/ ]
 

쟁점 톺아보기

양쪽의 주장을 각각 좀 더 자세히 살펴보죠. 먼저 로리 스미스 씨는 동성 커플의 결혼식 웹사이트를 제작하는 데 자연스레 포함되는 메시지가 자신의 신념에 어긋나서 문제라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자신은 동물 애호가인데, 유기견 보호센터를 위한 웹사이트를 만들어달라는 주문이라면 의뢰 고객이 동성애자든 이성애자든 상관없이 자신은 기꺼이 일을 맡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 https://www.scotusblog.com/2022/12/colorado-web-designers-first-amendment-supreme-court-lgbtq-anti-discrimination-la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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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premium.sbs.co.kr/article/Bp9zAkC8TL ]

심영구 기자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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