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궁녀·학생·주부… 모두가 독립영웅이었다

안진용 기자 2022. 12. 12. 09:0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아래 사진)한 후 재판을 받게 된 안중근이 일본 침략의 부당성을 강조하며 ‘누가 죄인인가’를 부르는 장면. CJ ENM 제공

■ 리뷰톡 - 21일 개봉 ‘영웅’

1909년 이토 히로부미 저격

독립운동 담은 뮤지컬 영화

일본 기생으로 잠입한 여인…

독립군에 밥 지어먹인 소녀…

보통사람 활약 담담히 그려

‘누가 죄인인가’ 노래 압권

윤제균 감독 특유의 유머도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역, 안중근은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이토 히로부미의 얼굴을 어떻게 알아보고 저격했을까. 안중근이 거사를 치르기 전, 이 위대한 작전을 성공으로 이끌기 위한 수많은 이들의 노력과 희생이 밑짐이 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 모두는 역사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자신의 위치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독립을 위해 힘쓴 시대의 영웅들이다. 오는 21일 개봉하는 이 영화의 제목이 ‘영웅’(감독 윤제균)인 이유다.

동명 뮤지컬을 원작으로 한 ‘영웅’은 눈 덮인 러시아의 설원을 홀로 걷는 안중근(정성화)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그는 조국을 위한 희생을 맹세하며 단지(斷指) 서약을 한다. 하지만 안중근은 외롭지 않았다. 그와 함께 열 두명의 독립운동가들이 함께 손가락을 잘랐고 그 더운 피를 모아 태극기 위에 ‘대한독립’(大韓獨立)을 썼다. 그리고 이야기는 거사를 치르기 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역사책 속 안중근은 하얼빈역에서 이토를 사살한 위인으로 기억된다. 120분 러닝타임 중 90분이 지난 후 등장하는 하얼빈역 저격 장면은 불과 4∼5분. 윤 감독은 이 장면을 반복적으로 노출해 감동을 강요하는 연출을 삼간다. 하지만 이 거사를 준비하기 위해 안중근을 비롯해 주변 인물들이 1시간 30분가량 차곡차곡 서사를 쌓아 올린 터라, 짧지만 강한 인상을 남긴다. 촌각을 다투는 숭고한 의식은 그렇게 찰나에 이뤄졌을 것이다.

‘영웅’은 이 기적을 일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의 희생이 뒤따랐는지 하나씩 짚는다. 안중근의 아내는 남편을, 두 아이는 아비를 조국에게 내어준다. 안중근이 이토를 알아볼 수 있었던 건, 명성왕후 시해를 목격한 궁녀였으나 민족의 원수에 대한 복수를 꿈꾸며 일본 기생으로 이토의 곁에 잠입한 설희(김고은)가 그의 양복에 하얀 손수건으로 표시를 해둔 덕분이다. 자신의 최후를 직감한 설희가 “다시 태어나도 조선의 딸이길 빌고 기도해”라고 노래할 때는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 외에도 독립군의 여동생은 독립군들에게 밥을 지어 먹이고, 또 다른 독립군은 안중근을 쫓는 일본 순사의 이목을 끌기 위해 목숨을 거는 방식으로 조선의 독립에 일조한다.

또한 고작 서른이 된 아들의 소식을 접한 어머니 조마리아(나문희)가 아들에게 수의를 지어 보내며 “목숨을 구걸하지 말고 나라를 위해 그냥 죽으라”는 편지를 쓰고 토해내듯 부르는 건 노래가 아니다. 울분이자 애국이다.

지나친 신파로 흐르지 않는 것은 ‘영웅’의 미덕이다. 안중근의 희생을 눈물과 감동의 코드보다는 시대적 사명으로 풀어낸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눈시울보다는 가슴이 더 뜨거워진다. 여기에 윤 감독 특유의 촌스러운 유머를 밀어 넣어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공기의 무게를 덜어낸다. 이처럼 ‘영웅’은 조국을 지키려는 필부필부 모두가 영웅이 될 수밖에 없었던 시대상과 더불어 그렇게 스러져 간 이름 모를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곱씹게 만든다.

무대 위를 벗어난 뮤지컬 넘버는 다양한 화면 연출이 가능한 스크린 속에서 더 빛을 발한다. 이토를 처단하기 위해 나서는 안중근에게 길을 터준 후 뒤따르며 거리를 가득 메운 민초들이 함께 부르는 ‘그날을 기약하며’는 비장하고, 사형 선고로도 굽힐 수 없었던 안중근의 꼿꼿한 목에 밧줄이 걸리는 순간 외치는 ‘장부가’(丈夫歌)는 장엄하다. 또한 기울어진 재판을 받으면서도 이토의 죄목을 하나씩 열거하며 부르는 ‘누가 죄인인가’를 듣고 있노라면 절로 숙연해진다.

그럼에도 애국심을 자극하는 소재에 대한 편견, 국내 관객들에게는 생소한 뮤지컬 장르 영화라는 점은 ‘영웅’이 뛰어넘어야 할 걸림돌이다. 그보다 높은 허들은 한 주 먼저 개봉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아바타: 물의 길’이다. 침체기에 빠진 극장가에서 두 영화의 대결이 시너지 효과를 낼지, 출혈 경쟁에 그칠지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120분. 12세 관람가.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 문화닷컴 | 네이버 뉴스 채널 구독 | 모바일 웹 | 슬기로운 문화생활 ]

[Copyrightⓒmunhwa.com '대한민국 오후를 여는 유일석간 문화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구독신청:02)3701-5555 / 모바일 웹:m.munhwa.com)]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