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샷] 멸종위기 코뿔소, 피부세포로 번식시킨다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2022. 12. 12.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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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흰코뿔소, 암컷 두 마리만 남아
인공수정은 유전적 다양성 떨어져
피부세포로 생식세포 분화 성공
죽은 코뿔소로 정자, 난자 생산 길 열려
케냐의 올 페제타 보호구역에 있는 북부흰코뿔소 모녀. 전 세계에서 나진과 파투라는 이름의 암컷 단 두 마리만 남았다./Jan Zwilling

전 세계에서 단 두 마리만 남은 희귀 코뿔소가 피부세포로 정자, 난자를 만들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생식세포가 있으면 이른바 시험관 아기로 불리는 인공수정 방식으로 수정란을 만들어 번식을 시킬 수 있다.

일본 오사카대의 하야시 카츠히코 교수 연구진은 지난 10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스’에 “북부흰코뿔소(학명 Ceratotherium simum cottoni)의 사체에서 채취한 피부세포를 정자와 난자가 될 수 있는 원시생식세포로 분화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독일 막스 델브뤽 분자의학연구소의 세바스티안 디케 박사와 라이프니츠 야생동물연구소의 토머스 힐드브란트 교수가 함께 이끌었다.

피부세포로 정자, 난자가 될 원시세포 만들어

북부흰코뿔소는 흰코뿔소의 아종(亞種)으로, 자연에서 이미 멸종됐다고 공인된 상태다. 지난 2018년 3월 마지막 수컷 수단(Sudan)이 45세로 죽고 지금은 그 딸인 33살 나진(Najin)과 손녀인 22살 파투(Fatu) 두 마리만 남아 자연 번식이 불가능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일본과 독일 과학자들은 남부흰코뿔소(위)의 배아줄기세포(ES세포)를 원시생식세포와 유사한 상태(PGCLC)로 분화시켰다. 이는 나중에 정자와 난자 같은 생식세포(gamete)로 자랄 수 있다. 같은 방법으로 북부흰코뿔소(아래)의 피부세포를 배아줄기세포와 유사한 유도만능줄기세포(iPS세포)로 만들어 역시 원시생식세포로 분화시켰다./Science Advances

연구진은 앞서 일본 교토대의 야마나카 신야 교수가 2006년 생쥐에서 처음 성공한 방식을 이용했다. 당시 신야 교수는 생쥐의 피부세포에 특정 유전자 4가지를 주입하면 모든 세포로 자라는 배아줄기세포와 유사한 유도만능줄기세포(iPS세포)가 되는 것을 발견했다. 이듬해 사람 피부세포도 유도만능줄기세포로 분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는 이 공로로 2012년 노벨상을 받았다.

이번에는 먼저 세포 분화에 관여하는 다양한 성장인자와 화학물질을 혼합시켜 상대적으로 수가 많은 남부흰코뿔소(Ceratotherium simum simum)의 배아줄기세포를 정자와 난자가 되기 직전 상태인 원시생식세포로 분화시켰다. 남부흰코뿔소는 현재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약 2만 마리 남아있다. 같은 방식을 북부흰코뿔소에도 적용했다.

먼저 과거 신야 교수가 생쥐에서 한 것처럼 2015년 체코의 동물원에서 죽은 나비레(Nabire)라는 북부흰코뿔소의 사체에서 피부세포를 채취해 유도만능줄기세포로 분화시켰다. 이것을 남부흰코뿔소에서 했던 방식대로 원시생식세포로 자라도록 했다. 연구진은 “지금까지 대형동물에서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던 일”이라며 “이제 정자와 난자를 생산하는 마지막 단계만 남았다”고 밝혔다.

2015년 체코의 동물원에서 죽은 수컷 북부흰코뿔소 나비레. 과학자들이 이 코뿔소의 피부세포를 정자와 난자가 될 원시생식세포로 분화시키는 데 성공했다./Khalil Baalbaki

기존 인공수정은 근친교배 불가피

과학자들은 그동안 다양한 방식으로 북부흰코뿔소를 되살리려고 노력했다. 먼저 수컷 4마리가 죽기 전 정자를 채취해 냉동보관시켰다. 이 정자를 남아 있는 암컷에서 얻은 난자와 인공수정시켜 개체 수를 늘리려고 시도했다. 현재 이 방법으로 수정란 22개를 만들었다.

수정란은 장차 수가 많은 남부흰코뿔소 대리모에 이식하려고 냉동보관하고 있다. 남은 북부흰코뿔소 암컷들에게도 수정란을 이식할 수 있지만 임신 도중 사고라도 나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북부흰코뿔소의 난자는 갈수록 얻기 어려워지고 있다. 현재 젊은 파투만 난자를 자연 생산할 수 있다. 과학자들은 대신 비슷한 남부흰코뿔소의 난자를 이용해 수정란을 만들었다.

독일 라이프니츠 야생동물연구소의 토머스 힐드브란트 교수 연구진은 2018년 냉동보관 중인 북부흰코뿔소의 정자를 가장 가까운 아종인 남부흰코뿔소의 난자와 수정시켜 대리모에 착상시킬 수 있을 정도까지 배양하는 데 성공했다.

문제는 기존 인공수정은 정자와 난자를 제공한 코뿔소의 수가 적어 근친교배가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이러면 유전적 다양성이 떨어져 개체 수를 늘리기 어렵다. 반면 피부세포로 정자와 난자를 만들면 훨씬 다양한 인공수정란을 만들 수 있다. 피부세포는 정자, 난자보다 더 다양한 개체에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북부흰코뿔소가 멸종의 문을 다시 넘어오려면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일단 원시생식세포로 정자와 난자를 만들어야 하며, 인공수정이 가능한지도 확인해야 한다. 또 근친교배의 한계를 극복할 만큼 충분한 유전적 다양성을 확보하는 과제도 있다. 멸종위기 동식물의 개체 수를 보존하는 일이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참고자료

Science Advances, DOI: https://www.science.org/doi/10.1126/sciadv.abp96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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