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어린왕자 ‘빛나는 금방울’에 깃든 슬픔, 100년 동안 몰랐다

노형석 2022. 12. 12.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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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경주박물관 ‘금령총’ 특별전
허공에 매달린 금령총 금관. 노형석 기자

“마음으로 보아야 잘 볼 수 있단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거든.”

눈앞에 별처럼 빛나며 매달린 1500년 전 신라 왕자의 황금방울 2개가 소설 <어린 왕자>의 유명한 대사를 떠올리게 한다. 사막여우가 고향별로 떠나려는 친구 ‘어린 왕자’에게 일러준 조언이다. 이는 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공군 조종사로 지중해를 날다가 숨진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1900~1944)의 유언이기도 했다. <어린 왕자>를 통해 작가는 비행하며 얻은 세상살이의 깨달음을 사막여우 입을 통해 세상에 널리 퍼뜨렸다.

지금 경북 경주시 인왕동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전 ‘금령(金鈴), 어린 영혼의 길동무’는 신라 ‘어린 왕자’의 비극적 죽음이 낳은, 금령총이란 고분에 묻힌 왕실의 슬픔이 21세기에 비로소 실체가 드러났다는 사실이 화두가 된다. 금령총은 1924년 일본 학자들에 의해 발굴된 기마인물형 주자와 금관, 유리그릇 등으로 유명해졌지만, 정작 무덤의 실체는 가려졌었다. 신라 어린 왕족의 무덤 금령총을 주인공으로 다루는 이번 전시는 금령이란 명칭 자체가 어린 왕자의 무덤 자리 허리춤에서 발견된, 15개의 정교한 보석이 박힌 황금알 2개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먼저 보여주면서 여정을 시작한다.

일본 학자들이 ‘금령총’이란 명칭을 붙인 근거가 된 한쌍의 금방울. 1924년 5월 고분 발굴 당시 무덤 주인 유해가 놓여 있던 자리의 허리춤에서 발견됐다. 당시 조사단은 ‘그 우아함에 사랑하고 좋아할 수밖에 없는 기교’라고 칭송하는 기록을 남겼다. 노형석 기자
지난해 재발굴 과정에서 새롭게 확인된 거대한 말 도용. 머리와 앞다리 부분은 온전하게 나왔으나 나머지 파편은 대부분 찾지 못했다. 잔편들은 인근 연접된 작은 고분과 식리총 부근에 흩어져 있지 않을까 추정하고 있다. 노형석 기자

1500여년 전 왕실의 슬픔은 땅에 파묻힌 뒤 1920년대 발굴되고서도 온전히 드러나지 않았다. 그 슬픔이 후대인들에게 실체를 분명하게 드러내기까지는 이후 무려 100년을 다시 기다려야 했다. 처음 발굴한 일본 학자들은 슬픔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한반도가 고대부터 자신의 강역이었음을 입증하는 고고학적 증거를 찾기에 혈안이 된 그들은 한달도 채 안 되는 보물찾기식의 발굴을 통해 아이의 허리춤에서 빛나던 밝은 방울 두개와 기마인물형 토기로 세간에 알려진 신라 명품 토기의 고고한 자태만을 강조했을 뿐이었다. 물론 당시 드물게 발굴 보고서가 온전하게 작성돼 6세기 신라 특유의 돌무지덧널무덤 얼개에 대한 연구의 단초를 열어젖힌 성과가 큰 것으로 평가되지만, 무덤에 깃든 신라의 정신세계와 감정에 대한 접근이 배제됐다.

금령총 발굴 당시 발굴된 토제 기마인물상 두점. 한국인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국민 문화재’다. 하지만 이 상의 드높은 명성에 가려 금령총 고분 자체의 역사적 의미와 다른 출토품들의 가치는 그다지 알려지지 못했다. 노형석 기자
금령총 출토 금관과 허리띠 장식. 국내에서 출토된 금관들 가운데 최초로 허공에 매달아 전시하는 획기적 기법을 선보였다. 높이 27㎝, 지름 15㎝의 단출한 금관과 황금허리띠 장식을 1m 안팎의 아이 키에 맞춰 배치했다. 노형석 기자

이번 전시는 일제강점기 전시에 2018~20년 박물관의 재발굴 성과를 합쳐 금관, 금방울, 기마인물형 토기, 금허리띠, 금반지, 금가슴걸이 등 300여점을 내보인다. 금령총이 처음 세상에 드러났을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도입부는 황금알 2개와 더불어 유리잔, 종 모양과 둥근 말방울 등 당시 현장 발굴 유물들을 보여준다.

핵심은 2부 ‘내세로의 여정을 같이하다’. 높이 27㎝, 지름 15㎝의 단출한 금관과 황금허리띠 장식을 1m 안팎의 아이 키에 맞춰 배치하고 금관을 매다는 파격적 시도를 했다. 그 옆에는 무덤 주인과 저승길을 함께한 껴묻거리 상자에서 나온 영락 달린 여러 고급 토기와 가슴걸이, 목걸이, 금반지, 팔찌 등 장신구를 볼 수 있다. 신라 토기의 ‘끝판왕’이라 할 수 있는 기마인물형 주자는 흔히 주인상과 하인상으로 알려진 2점을 왕관 진열장 앞에 놓아 망자의 인도자처럼 구성했다.

투명한 겉면에 청색 점들이 두줄로 잇따라 찍힌 유리그릇. 당시 최상의 희귀 명품으로 꼽혔던 유리그릇은 금령총이 당시 고신라의 최고위층 무덤이었음을 단적으로 입증하는 유물이다. 노형석 기자
전시의 핵심인 두번째 방에 놓인 고신라 토기들. 경주 왕경의 고분 출토 토기들 가운데 최고의 완성도와 미감을 자랑하는 최상급품이라고 할 수 있다. 노형석 기자

뒤이어 재발굴 및 복원 성과를 소개하는 영역에서는 오랜 작업 끝에 원래 기물의 윤곽을 어느 정도 되찾은 금령총 말다래 장식과 말의 뒤끝에 달았던 가죽띠 실물 등이 돋보인다. 일본인들은 발굴 당시 이 말다래 장식의 천마를 괴수라고 오인하기도 했는데, 비로소 천마총 말다래 못지않은 명품이 재현돼 관객들 앞에 놓였다. 가죽띠 실물은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 일반인에게 공개되는 희귀 유물인데, 금속 이음매를 쓴 연결 부분까지 생생하게 남아 타임캡슐을 보는 듯하다. 지난 2년간의 재발굴 과정에서 새롭게 확인된 거대한 말 도용. 머리와 앞다리 부분은 온전하게 나왔으나 나머지 파편은 대부분 찾지 못했다. 잔편들은 인근 연접된 작은 고분과 식리총 부근에 흩어져 있지 않을까 추정하고 있어 앞으로 발굴 과정이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신라인들이 실제 탔던 말의 뒤끝에 달았던 가죽띠 실물.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 일반인에게 공개되는 희귀한 유물이다. 금속 이음매를 쓴 연결 부분까지 생생하게 남아 타임캡슐을 보는 듯하다. 노형석 기자
오랜 작업 끝에 원래 기물의 윤곽을 어느 정도 되찾은 금령총 말다래 장식. 일본인들은 발굴 당시 이 말다래 장식의 천마를 괴수라고 오인하기도 했다. 노형석 기자

슬픔이란 화두와 관련해 가장 도드라진 실체로 눈에 와닿는 대목이 전시 말미에 제기 그릇들을 진열한 부분이다. 무덤 호석 주변을 재발굴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망자의 제례용 거대 제기 조각들을 복원해 파편들과 함께 줄줄이 배치한 전시 얼개는 처음 선보이는 것이다. 100년 전 금령총 첫 조사 당시 무덤 중심부에서 발견된 핵심 제기인 굽다리 긴목항아리 몸통과, 망자를 장사지낼 당시 의례의 일환으로 이 항아리 몸통에서 일부러 떼내 무덤 주변에 던졌던 것이 최근 재발굴로 무덤 호석 바깥에서 드러난 굽다리 받침 파편을 1500여년 만에 결합시켜 전시 마지막을 수놓은 구성도 독특했다.

금방울과 금관, 흙구슬이 든 방울인 토령을 허공에 달아맨 파격적 시도와 더불어 가장 강렬한 인상으로 다가오는 말미의 제기 유물 전시는 당대 왕실 장례의 거대한 규모와 아울러 왕실 사람들이 느꼈을 슬픔의 깊이를 유물 실체 자체로 일러주고 있다. 기획자 신광철 학예사는 자신이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2018~20년 재발굴의 산물인 거대 제기들을 처음 전시의 주축으로 등장시키면서 무덤을 만든 사람들의 절절한 감정을 새롭게 부각시켰다. 마립간 왕조의 맥을 이을 소중한 보배였던 어린 왕자의 갑작스런 죽음에 대한 왕실 사람들의 지극한 슬픔과 비통함은 단순 명쾌하고 강렬한 유물들의 이미지로 나타난다. 기획자는 금관, 가슴걸이, 목걸이, 팔찌 등 금속 유물들의 강렬한 면모와 작은 무덤 크기에도 호석 주변에 수많은 해산물과 육류 등을 넣은 채 줄줄이 묻힌 거대한 토기들의 대열을 재현하면서 1500년 전 신라 왕족들이 느낀 슬픔의 실체를 담담하게 보여주려 했다.

특별전 ‘금령…’은 1990년대 이래 숱하게 열려온 고고학 발굴 소개전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성취를 거둔 전시로 평가할 만하다. 100년 전 20세기 초반과 최근 21세기의 발굴 결과를 합쳐 처음 기획전으로 만든 사례이고 금령총 출토 유물들을 역대 처음 한 자리에 집대성했다는 점에서도 학술적 의미가 크다. 사랑하는 피붙이를 땅에 묻는 슬픔, 그 쓰라리고 아련한 감정이 빚어낸 무덤이 금령총임을 대중에게 제대로 일러주는 자리란 의미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내년 3월5일까지.

경주/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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