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헌의 히스토리 인 팝스] [141] 청바지

강헌 음악평론가 2022. 12. 12.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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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il Diamond ‘Forever in Blue Jeans’(1978)
<Forever in Blue Jeans>, Neil diamond (1978)

미국 록의 전설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트레이드 마크는 흰 티셔츠와 청바지였다. 일렉트릭기타 대신 톱이나 망치를 들었다면 전형적인 블루칼라 노동자 계급의 모습이다.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청바지는 19세기 골드 러시 시절의 거친 탄광 노동자들의 작업복으로 탄생했다.

많은 새로운 문물이 우연이나 실수로 등장하듯이 청바지 또한 그러했다. 텐트용 천을 납품해달라는 의뢰를 받은 유대계 독일인 리바이 스트라우스의 회사는 상당량의 텐트 천을 제작했다. 그러나 한 직원의 실수로 의뢰인이 요구하지 않은 푸른색으로 물들여 놓았고 의뢰인이 구입을 거부하자 난감해진 리바이는 악성 재고로 전락한 데님 재질의 질긴 천으로 광부용 바지를 만들었고 이것이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청바지 브랜드 리바이스의 탄생 비화다.

이 노동자용 바지가 특수 임무를 담당하는 군복으로도 쓰이다가 반항적인 청춘 스타들, 가령 말런 브랜도나 제임스 딘 같은 인물들이 패션 아이템으로 수용하면서 남녀 구분 없는 청춘의 상징으로 급부상한 때는 1950년대였다. 스크린과 록 스타들의 인기에 힘입어 청바지는 전 세계 젊은이들의 필수 아이템이 되었다. 노동자 패션이 주류를 장악하게 되는 거대한 반전이 이 단순한 옷에 숨어 있다.

1857년 샌프란시스코항을 떠나 파나마운하를 거쳐 뉴욕을 향하던 센트럴 아메리카 호는 허리케인을 만나 노스 캐롤라이나 앞바다에 침몰했다. 이 난파선의 짐가방에서 발견된 청바지 한 벌이 최근 리노의 경매에서 11만4000달러에 낙찰되었다. 이 바지는 리바이스사에서 처음으로 제작한 ‘501′ 청바지보다 최소 16년 앞서 만들어진 것으로 판명되었다.

우리나라의 7080세대에게 많은 인기를 누린 닐 다이아몬드는 컨트리 스타일의 이 노래에서 청바지를 영원한 사랑에 빗대었다. “돈이 전부 같지만/돈이 노래와 춤은 못 하지요/내가 당신과 여기 같이 있는 한/늘 청바지를 입고 있는 게 더 좋아요(Money talks/But it don’t sing and dance/And long as I can have you here with me/I’d much rather be forever in Blue Jeans).” 조금 해질 수는 있겠지만 청춘은 청바지처럼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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