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또 그놈”… 쓰레기산 불법투기 3건중 1건은 재범자 포함

영천=최미송 기자 2022. 12. 1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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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산의 덫]〈下〉덫을 놓은 사람들
실형선고 30%뿐 ‘솜방망이 처벌’
쓰레기 불법 투기 일당이 경북 영천시 대창면 이모 씨 소유 공장을 임차한 뒤 2019년 3~5월 버린 폐기물 더미. 붙잡힌 일당 중 한 명은 2019년 발견됐던 ‘의성 쓰레기산’ 범죄에도 가담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영천시는 일당과 피해자 이 씨에게 쓰레기 약 3900t에 대한 처리 명령을 내렸다. 이 씨는 일당에게 쓰레기 처리를 위탁한 폐기물 처리업체를 고발했다. 피해자 이모 씨 제공
“어, 이놈이 그놈이잖아?”

불법 쓰레기 투기 피해자 이모 씨(46)는 생업을 제쳐두고 범인 일당을 쫓던 중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2019년 봄 경북 영천에 있는 자신의 공장에 약 3900t의 쓰레기를 버리고 도주한 일당 중 한 명이 그해 2월 적발된 ‘경북 의성 쓰레기산’(약 17만 t)을 만든 주범 중 한 명이었던 것이다. 이 씨는 “처벌이 얼마나 약하기에 범인이 경찰의 추적을 받으면서 대놓고 같은 일을 저지르느냐”며 가슴을 쳤다.

땅 주인에게 토지나 공장을 빌린 후 쓰레기를 대량으로 투기하고 도주하는 ‘쓰레기산 범죄’가 근절되지 않는 가장 큰 원인으로 전문가들은 ‘솜방망이 처벌’을 꼽는다.

폐기물을 불법 투기하면 폐기물관리법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 등에 처해진다. 그러나 동아일보 취재팀이 대법원 판결문 검색 시스템을 통해 2019년 1월∼2022년 8월 폐기물관리법 해당 조항 위반 사건 91건을 분석한 결과 피고인 274명 중 실형을 선고받은 이는 82명(29.9%)에 불과했다. 소수의 무죄(12명·4.4%)를 제외한 대부분은 집행유예(89명·32.5%)나 벌금형(91명·33.2%)에 처해졌다.

처벌 수위가 낮다 보니 유사 범죄를 반복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판결문 분석 결과 폐기물 투기 범죄 91건 중 30건(33.0%)은 동종 범죄를 저지른 재범자가 가담한 경우였다.

법률사무소 엘프스의 이예인 변호사는 “불법 투기 수익에 비해 처벌이 약하니 범인들이 무서워하지 않고 조직을 만들어 전국 곳곳에 쓰레기산을 만들고 다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쓰레기산은 조직범죄… 조폭-브로커-바지사장 등 64명 가담도

초범은 벌금형, 실형도 1년 미만
솜방망이 처벌… 출소후 다시 범행
전국 11곳서 동시다발 ‘치고 빠지기’
“지방경찰청 단위 집중 수사해야”






판결문 분석 결과 그나마 폐기물 투기 범죄로 실형을 선고받은 이들의 형량도 대부분 6개월∼1년에 그쳤다. 또 실형을 선고받은 이들은 농지법 위반이나 상해, 사기, 마약 등 다른 범죄를 함께 저질렀거나 전과가 있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초범은 벌금형인 경우가 많았다. 경찰 관계자는 “투기범들은 서로 ‘재수 없이 걸려도 잠깐 (교도소에) 들어갔다 오면 된다’고 한다”고 말했다.
○ 솜방망이 처벌에 불법 투기 되풀이

수사 과정에서 공범을 추적하기도 쉽지 않다.

2019∼2021년 쓰레기산을 수사했던 경기남부경찰청 관계자는 “실형을 선고받더라도 형기가 얼마 안 되니 출소 후 유사 범죄를 저지를 생각에 투기조직의 공범과 총책 등은 끝까지 감추는 범죄자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실제로 출소 후 지인이나 바지사장 명의로 다시 범행을 벌인다고 한다.

수원지방법원도 2020년 불법 폐기물 범죄자에게 2심에서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하며 “(피고인이) 구금된 후에도 공범 조직을 계속 유지하며 폐기물 공급 역할을 했으며, 금전적 이득을 취하기 위해 공범들과 증거인멸을 모의하고 수사에도 협조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를 막기 위해 2020년 5월 쓰레기 불법 투기에 대한 처벌이 일부 강화됐지만 아직 미진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쓰레기 투기 범죄를 추적해온 서봉태 환경운동가는 “피해자들이 극단적 상황에 내몰리고 환경에 회복이 어려울 정도의 피해를 입힘에도 쓰레기산 범죄 처벌 수위는 피해 액수가 비슷한 사기 범죄보다도 약하다”며 “처벌이 대폭 강화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 수십 명이 조직적·계획적 투기

쓰레기산 범죄는 많게는 수십 명이 역할을 분담해 조직적으로 벌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찰에 따르면 불법 폐기물 투기 총책은 주로 자금력을 보유한 조직폭력배나 외관상 합법을 가장한 폐기물 처리업체 대표가 맡는 경우가 많다. 총책은 브로커를 통해 쓰레기를 버리려는 ‘고객’을 소개받은 뒤 투기 계획을 짠다. 고객은 주로 쓰레기를 싸게 처리하려는 폐기물 처리업체나 폐기물 배출 사업장이다.

투기 장소 물색은 중간책이 담당한다. 전국을 돌며 적당한 장소를 찾으면 ‘바지 임차인’을 내세워 땅 주인과 계약을 진행한다. 이후 화물차 기사를 고용해 폐기물을 내다버린다. 배후에는 이처럼 많은 이들이 관여하지만 피해자들이 대면하는 대상은 조직 말단의 ‘바지 임차인’뿐이다. 쓰레기산 수사 경험이 많은 경찰 관계자는 “쓰레기산 1건에 연루된 범죄자는 최소 10명”이라며 “총 64명이 가담한 사건도 수사해봤다”고 했다.
○ 지역 넘나들며 전국 곳곳에 버려

판이 짜이면 투기는 순식간에 벌어진다. 2020년 경기 양주시에 생긴 쓰레기산의 경우 총책과 브로커, 차량 담당, 자금 담당, 창고 임차인 등이 짜고 1월 16일부터 2월 3일까지 18일 만에 1320t을 투기했다.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치고 빠지기’ 범죄를 벌이기도 한다. 지난해 11월에는 경기와 충남 충북 경북 전북 등 전국 각지의 공장 11곳을 임차한 뒤 약 5만 t의 폐기물을 무단 투기해 92억 원을 챙긴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한 지자체가 무단 투기 폐기물을 치우라는 명령을 내리자 며칠 후 그대로 다른 지역에 옮겨 놓은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경찰 수사 역시 최소한 지방경찰청 단위로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경찰 관계자는 “일선서 차원에선 현장에서 트럭 기사를 잡아도 윗선을 추적하기 쉽지 않다”며 “지방청 단위로 집중 수사를 해야 바지사장부터 다른 지역에 근거지를 둔 총책까지 일망타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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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최미송 기자 cms@donga.com
이청아 기자 clear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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