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준비 안 된 중국의 ‘위드코로나’

이귀전 2022. 12. 11.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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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 ‘제로 코로나’ 정책 항의에
재택치료 허용·PCR 검사 완화 등
당국, 손바닥 뒤집듯이 정책 변경
주민들 감염 확산 오롯이 감내해야

“목이 간질간질하네요. 코로나19 증상인가요?” “혹시 자가진단키트 있나요?”

중국 거주 교민들이 모여 있는 위챗(중국판 카카오톡) 대화방들의 대화 내용이 하루아침에 달라졌다. 중국 당국이 지난 7일 재택 치료 허용, 유전자증폭(PCR) 검사 의무 완화 등 사실상 ‘제로코로나’ 정책을 폐기하는 조치를 내놓은 후부터다.
이귀전 베이징 특파원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코로나19 감염 시 가게 되는 격리 시설 팡창(方艙)의 열악한 환경이나 식당 내 취식 가능 시점 등 코로나19 방역 조치와 관련된 얘기들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PCR 검사 의무가 완화되면서 결과 통지 방식이 변경되고, 감염 후 격리가 사라지자 대화방의 내용이 변했다.

중국에선 그동안 48∼72시간내 PCR 음성 결과가 있어야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식당, 건물에 들어가는 등 일상생활을 할 수 있었다. PCR 검사 시 순서대로 10명에게 채취한 검체를 한 개의 시험관에 같이 넣어 검사하는 혼합 검사 방식을 사용한다. 시험관에서 양성 반응이 나오면 10명을 개별 검사 후, 감염자는 팡창으로 이송됐다. 나머지 9명은 음성이 나오더라도 검사받을 당시 감염자 주변에 있었다는 이유로 밀접접촉자로 분류돼 자택에서 최소 일주일 임시 격리되거나 심하면 팡창으로 이송되는 경우까지 있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검사에서 양성이 나오더라도 개인에게 통보가 가지 않는다. 본인이 자가진단키트로 진단하지 않는 한 감염 여부를 알기 힘들다. 대중교통 이용이나 건물 진입 시 PCR 검사 음성 결과도 필요 없다.

심지어 자가진단키트로 검사해 양성이 나와 아파트 등을 관리하는 주민위원회에 신고해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 오히려 주민위는 주민들에게 “양성이라도 주민위 등에 보고할 필요 없고, 발열, 감기 등의 증상이 나타나면 자택에 머물다 6∼7일째 검사에서 음성이 나오면 격리를 해제하라”며 “스스로 약이나 자가진단키트를 구입해 검사하라”고 공지했다.

중국 당국은 백지 시위 이후 울고 싶은 아이 뺨 맞은 격으로 마치 기다렸다는 듯 코로나19 대응 방식을 완화했다.

방역을 이유로 제때 병원 치료를 받지 못해 목숨을 잃는 사건이 잇달아 발생하고, 경제의 근간이 흔들릴 정도로 부작용이 속출하는 가운데에도 ‘우리는 인민과 인간의 생명을 무엇보다 우선시해야 한다’며 제로코로나를 강조했던 중국이었다. 이 같은 기조가 내년 하반기까지 이어질 것이란 전망마저 나왔다.

하지만 카타르 월드컵 노마스크 응원을 본 국민들의 자유에 대한 본능을 중국의 애국주의는 꺾진 못했다. 중국 전역에서 동시다발로 정부 방역 정책에 항의하고 ‘시진핑(習近平) 물러가라’는 구호가 쏟아졌다. 결국 민심을 달래기 위해 손바닥 뒤집듯 제로코로나에서 ‘위드 코로나’로 방역 정책을 변경했다.

그토록 과학적이고 정밀하다고 강조하던 제로코로나 논리가 얼마나 근거가 없었는지와 주민의 안전보다 지도부의 안위를 더 중요시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보여줬다.

코로나19의 두려움을 강조하던 중국 전문가들은 일제히 “감염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며 방역 완화의 선봉장이 되고 있다.

준비되지 않은 갑작스러운 완화에 감염자는 폭증할 분위기다. 중국 방역 당국은 신규 감염자가 지난달 27일 3만8808명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한 뒤 지난 9일 1만2272명으로 줄었다고 발표했지만 이를 믿는 이는 없다.

제로코로나 당시 격리와 봉쇄를 참아야 했던 주민들은 이제 이 감염 확산이란 혼란을 오롯이 감내해야 한다. PCR 검사를 받기 위해 검사소에서 줄을 서던 이들이 자가진단키트와 해열제와 감기약, 진통제 등을 구하기 위해 약국에 줄을 서고 있다. 방역 완화로 북적댈 것으로 보였던 식당들도 감염 우려에 여전히 한산하다.

그나마 오미크론의 중증률이 낮다는 점은 다행이다. 하지만 중국에서 위독하거나 중증일 경우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할 수 있다는 점도 엄연한 현실이다. 위챗 등에 이어지는 “코로나19 감염 시 한국행 비행기를 탈 수 있나요”라는 교민들의 문의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이귀전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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