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달을 향한 열망 ‘먼저 MOON 열어라’[미국 ‘아르테미스 계획’이 불지핀 우주경쟁]
일본 - 쓸 만한 기술력 확보…동맹 앞세워 비행사·장비 등 ‘동승’ 전략
한국 - 누리호 성공했지만…‘아르테미스’ 속 역할 찾기 정교한 접근을
1969년 7월20일, 아폴로 11호 선장 닐 암스트롱은 인류 최초로 달 표면에 발자국을 찍었다. 1972년 아폴로 17호가 마지막으로 달에 갈 때까지 미국은 월면에 우주선을 총 6대 착륙시켰고, 사람을 12명 보냈다. 그렇게 달을 향한 열망이 타올랐던 시대가 끝난 뒤 지금까지 달은 수십년간 ‘우주 무인도’가 됐다. 달에 누가 먼저 가느냐를 두고 벌어진 경쟁에서 소련을 이긴 미국은 더 이상 달에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상황이 급변했다. 미국이 2019년 ‘아르테미스 계획’이라는 이름표를 붙여 달에 사람을 다시 착륙시키고 상주기지까지 짓겠다는 목표를 천명한 게 시발점이었다. 핵심 목표는 달에서 희토류와 핵융합 발전의 원료인 ‘헬륨3’ 등 광물자원을 채굴하는 것이었다. 다른 나라들은 아르테미스 계획을 견제 또는 호응하며 달을 향한 흐름에 뛰어들었다.
불붙은 경쟁의 중심에는 동북아 주요국인 중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도 있다. 중국은 미국 위주의 국제질서가 달까지 미치는 것을 막으려고 한다. 일본은 미국과의 강력한 동맹 관계를 바탕으로 달 진출에 속도를 붙이고 있다. 한국은 우주 기술력을 높이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지만, 아르테미스 계획과 정교하게 맞물린 비전이 아쉽다는 지적이 나온다.
■ 중국, 미국 패권 저지 시동
중국은 우주개발 경쟁에서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겠다는 의지가 뚜렷하다. 그럴 만한 기술적인 ‘실력’도 갖췄다. 중국은 2019년 무인 탐사선인 창어 4호를 인류 최초로 달 뒷면에 착륙시켰다. 2020년에는 창어 5호를 보내 월면에서 시료를 채취하고 지구로 귀환시켰다. 2024년에는 창어 6호를 달로 보내고, 창어 7호와 8호도 순차적으로 쏠 예정이다.
특히 창어 8호는 달에서 기지를 건설하기 위해 3차원(3D) 프린터를 사용하는 임무를 맡는다. 중국은 애초 달에 2035년 연구기지를 세울 예정이었지만, 지난해 12월 우옌화 중국 국가항천국 부국장이 자국 언론을 통해 이 시기를 2027년으로 8년이나 앞당긴다고 밝혔다.
중국이 달 진출을 몰아치는 건 미국의 움직임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미국은 아르테미스 계획을 뒷받침하기 위해 2020년 국제 협력 체계인 ‘아르테미스 약정’을 만들었다. 아르테미스 약정에는 미국을 비롯해 한국과 영국, 일본 등 21개국이 참여했다. 대부분 미국의 우방국이다.
중국은 아르테미스 약정을 미국이 자국의 패권을 달에서 구현하기 위한 의도라고 본다. 그런 해석을 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아르테미스 약정에 ‘안전지대’를 만들겠다는 개념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안전지대는 약정 참여국이 약정에 가입하지 않은 국가나 기업의 방해를 받지 않고 활동할 공간을 뜻한다. 중국은 안전지대의 경계선이 달에서 일종의 국경선에 준하는 개념이 될 것으로 의심한다.
김한택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우주법 전문)는 “미국이 아르테미스 약정을 만든 근본 이유는 중국에 대한 두려움 때문으로 봐야 한다”며 “유엔에선 ‘안전지대’의 배타성을 어느 정도까지 인정할지, 인정한다면 기간은 어떻게 설정할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중국이 러시아 등과 함께 아르테미스 약정에 대응하는 별도의 국제 체계를 만들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미국과 미국의 우방국이 달 개발의 주도권을 쥐는 상황을 중국이 마냥 두고 보진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 일본, 아르테미스 계획과 한배 전략
일본의 달 개척 전략은 미국과의 협력 강화이다. 지난 5월 방일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의 회담에서 아르테미스 계획에 따른 달 표면 탐사 임무에 일본인 우주비행사를 합류시키기로 했다.
미국의 이런 태도는 일본의 국제정치적인 위치에서 비롯된다. 장영근 한국항공대 교수는 “일본이 아르테미스 계획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건 미국과의 강한 동맹 관계가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진단했다.
일본은 월면에서 쓸 만한 좋은 기술도 있다. 일본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와 도요타자동차는 2019년 월면에서 기동할 차량 개발에 공동으로 착수했다. 승합차 2대를 좌우로 이어붙인 정도의 덩치인 이 월면차는 외부 환경과 단절된 폐쇄형 탑승 공간을 제공한다. 우주복을 벗고 사람이 최대 4명 탈 수 있다. 공기가 없고 낮과 밤의 온도 차가 수백도에 달하는 달에 안성맞춤인 장비다.
일본은 지난달 미국이 발사한 아르테미스 1호에도 자국의 우주탐사 장비를 실었다. ‘오모테나시’라는 이름의 초소형 달 착륙장치다. 가로 24㎝, 세로 37㎝, 높이 11㎝로 작은 가방 크기인데, 자세 불안정으로 달 착륙은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과 일본의 협력 관계 수준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장 교수는 “일본은 달 궤도를 도는 우주정거장인 ‘루나 게이트웨이’ 건설에도 참여하고 있다”며 “우주 기술 수준이 상당히 뛰어나다”고 말했다.
■ 한국, 자강·국제 협력 외치지만…
한국은 일단 자강(自强)을 도모하면서 국제 협력에 뛰어드는 단계다. 한국은 이와 관련해 지난 6월 누리호 발사에 성공해 1t급 물체를 지구 저궤도에 자력으로 올릴 수 있는 세계 7번째 국가가 됐다. 앞서 지난해 5월에는 아르테미스 약정에 가입했다. 지난달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미래 우주경제 로드맵’을 발표해 2032년에 무인 달 착륙과 자원 채굴을 하고, 2045년에는 화성에 무인 착륙선을 보낸다는 계획을 내놨다.
하지만 갈 길이 멀다. 한국보다 수십년 일찍 우주개발에 나선 중국과 일본에 비해 우주 기술 수준이 크게 열세하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비용이나 기술적인 측면을 감안할 때 아르테미스 계획을 통해 달 개척을 도모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시각이 제기된다. 한국이 아르테미스 계획 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빨리 찾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지만 우주과학계에선 “지난해 5월 아르테미스 약정 가입 뒤 한국이 달 개척에서 어떤 역할을 맡게 될지에 대한 구체적인 소식을 들은 적이 없다”는 목소리가 새어 나온다. 한국이 아르테미스 계획에 이름만 올려놓는 상황이 될 수 있다는 우려다.
익명을 요구한 우주과학계의 한 관계자는 “한국의 달 착륙선 사업이 아르테미스 계획과 긴밀히 연계돼 추진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막대한 예산을 쓸 예정인데도 이런 상황이 생긴 건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국은 2023~2032년 2조132억원을 투입해 누리호보다 성능이 뛰어난 ‘차세대 발사체’를 개발한다. 차세대 발사체는 무인 달 착륙선을 수송할 예정이다. 달 착륙선은 2024~2032년 6184억원을 투입해 개발한다는 계획이 예비타당성조사를 거치고 있다.
이 관계자는 “한국이 무인 착륙선을 달에 보낼 때쯤 다른 나라들은 달에서 유인 탐사를 하고 있을 것”이라며 “그때 우리가 이렇게 많은 예산을 들여 달에 무인 착륙선을 보내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달 개척과 기술 개발은 필연이지만, 이왕 참여한 아르테미스 계획 안에서 역할을 찾아 한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적인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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