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전 한국땅 밟은 러시아 청년 “코스닥 상장 도전합니다”

유주연 기자(avril419@mk.co.kr) 2022. 12. 11. 21:1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필러 주사제 제조 ‘코루파마’
“K뷰티 인기에 80개국 수출
뷰티 의료기 회사로 컸어요”
러시아 출신 베르니두브 대표
코스닥 상장 앞두고 귀화 신청
“한국서 성공한 글로벌CEO될 것”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교환학생으로 대구에 왔던 당시 만 18세 외국 청년이 내년 코스닥 상장을 앞둔 뷰티·의료기기 회사 CEO가 됐다. 코루파마를 이끌고 있는 로만 베르니두브(Roman Vernidub) 대표의 이야기다.

베르니두브 대표는 교환학생으로 대구 경북대를 졸업한 뒤 서강대 국제대학원 석사·박사(수료)를 거쳐 2016년 서울 강남구 역삼동 작은 사무실에서 ‘코루제약’이라는 의료기기 제조사를 시작했다. 100% 수출만 하는 이 회사의 주요 제품은 필러 주사제다. 진피층에 주사제를 주입해 주름을 개선하고 피부 조직을 보충해주는 주사 형태 의료기기다.

설립 첫 해 16억원이던 매출액은 6년만에 300억원으로 성장했다. 수출국도 우크라이나·러시아·카자흐스탄 등 3개국에서 올해 기준 80개국으로 늘었다. 올해 회사명을 ‘코루파마’로 변경했다. 춘천에 의료기기 공장도 세웠다.

최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루파마 본사에서 만난 베르니두브 대표는 “해외에서 K뷰티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지면서 수출 요청이 늘고 있다”며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 직원들을 적극적으로 채용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현재 코루파마 본사 직원 77명 중 30명이 해외 국적자다. 직원들의 국적은 러시아, 우크라이나, 영국, 이탈리아, 미국, 중국, 브라질 등 10개국에 달한다. 베르니두브 대표와 인터뷰는 모두 한국어로 진행됐다. 인터뷰 중 전문용어들이 종종 나왔지만 전혀 막힘이 없었다.

러시아 국적의 베르니두브 대표는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나 자랐다. 친척들 대부분은 지금도 우크라이나에 산다. 아버지는 우크라이나인, 어머니는 러시아인이다. 그는 “고향이 우크라이나 남부에 있는데, 전쟁이 터져 마음이 많이 아프다”며 “문화적으로 가까운 나라 사이에 전쟁이 모쪼록 잘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베르니두브 대표는 한국에 오기 2년 전인 2006년 러시아의 한 대학 아시아학과에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경북대 교환학생에 지원해 2년간 한국서 수학한 뒤 졸업까지 했다. 그는 “언어도, 문화도 다른 새로운 곳에서 기회를 찾고 싶었다”고 했다. 한국은 처음이었지만 생활에는 금방 적응했다.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한국 친구들 덕에 언어도, 문화도 금새 익혔다.

대학 졸업 후에는 한국 정부 장학금을 받아 서강대 국제대학원 석사과정에 입학해 국제통상·금융을 공부했다. 그 시절 한국어에 자신이 붙었다. 종종 TV 쇼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했다. 아르바이트로 해외 사업가들의 통역 일을 하다보니, 비즈니스에서 한류의 영향력이 피부에 와닿기 시작했다. 석사를 마치고 2014년 박사 과정에 입학해 무역 관련한 다양한 연구를 하게 되면서 사업의 꿈이 점차 커졌다. 베르니두브 대표는 “학계에 남고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러기엔 K뷰티에 너무도 많은 기회들이 보였다”고 말했다.

처음엔 화장품 사업에 관심이 생겼다. 하지만 경쟁사가 너무 많았다. 그는 “누구나 뛰어들 수 있는 사업보다는 기술 가치가 있고, 진입장벽이 있는 분야로 눈을 돌렸다”고 말했다. 주위 필러 주사제 등을 개발해 왔던 연구원 친구들과 의기투합해 2016년 회사를 시작했다. 회사 이름에 쓴 ‘코루’는 마오리족의 언어로 ‘고사리의 새 잎’을 뜻한다.

얼굴·보디·헤어 등 다양한 필러를 개발하고 식약처 수출용 의료기기제조인증을 받아 해외 판매를 시작했다. 첫 해 수출국은 우크라이나·카자흐스탄·러시아 등 3개국이었는데 이듬해부터 동남아시아와 유럽, 중동 등지서 수출 요청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2020년까지 연간 매출이 100억원을 넘었다. 그는 “코로나19 사태로 사업이 타격을 받을까 우려했지만, 건강이나 미용 제품에 대한 관심은 더 많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매출액은 180억원, 올해는 300억원을 예상하고 있다. 베르니두브 대표는 “최근에는 중동과 브라질 등에서 보디필러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며 “올해는 미용용 매선(Thread) 제품으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인증도 받았다”고 말했다.

이렇게 수출국이 다변화되면서 자연스럽게 외국인 직원들 채용도 늘리고 있다. 이 회사 사무실에선 영어, 러시아어, 중국어, 이탈리아어, 한국어 등 여러 언어가 사용된다. 그는 조심스럽게 “외국인 인재를 데려올 때 서류 준비나 증빙 절차가 너무 복잡해 매우 훌륭한 인력인데도 채용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며 “외국 국적자 채용 관련 규제 장벽이 낮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작년에 한국으로 귀화 신청도 했다. 내년 여름께 결과가 나올 것으로 기다리고 있다. 베르니두브 대표는 “한국과 해외 국가를 경제적으로 연결해주는 가교 역할을 하고 싶다”며 “코루파마를 좋은 회사로 성장시켜, 외국인도 서울에서 이렇게 성공하는 글로벌 기업을 만들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기고 싶다”고 말했다. 유주연 기자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