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 ‘축구 독립선언’…유럽 중심 월드컵에 ‘한 방’ 날리다

이두리 기자 2022. 12. 11.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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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꺾고 아프리카 국가 최초 4강 진출…식민지배 이유 1970년 돼서야 본선진출권 가진 ‘차별의 역사’에 한 획
공은 둥글다! 모로코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11일 카타르 도하 앗수마마 스타디움에서 포르투갈과 맞선 2022 카타르 월드컵 8강전에서 1-0으로 이겨 4강에 진출하게 되자 국기를 들고 환호하고 있다. 도하 | AP연합뉴스

92년 만에 처음으로 아프리카가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무대의 주연이 됐다.

모로코가 아프리카축구연맹(CAF) 소속팀 최초로 월드컵 4강에 진출하면서다. 모로코의 4강 진출은 그간 유럽 국가가 주도해온 월드컵의 커다란 전환점이다.

모로코는 11일 카타르 도하 앗수마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포르투갈과의 2022 카타르 월드컵 8강전에서 유시프 누사이리(25·세비야)의 결승골에 힘입어 1-0으로 이겼다. 아프리카 최초의 준결승 진출팀이 된 모로코는 오는 15일 오전 4시 프랑스와 4강전을 치른다.

모로코는 이번 월드컵 조별리그와 토너먼트에서 3승2무로 무패 행진을 달리고 있다. 조별리그에서 캐나다와 벨기에를 꺾고 토너먼트에 올랐을 때까지만 해도 ‘운이 따랐다’는 평가를 받았던 모로코는 이제 새로운 강호로 세계 무대에 당당히 섰다.

모로코의 선전에는 철벽수비가 밑바탕이 됐다. 두 줄로 빽빽하게 서서 상대에게 틈을 내주지 않는 모로코는 이번 대회 조별리그에서 단 1골만 내줬고, 토너먼트에선 2경기 무실점을 기록했다. 캐나다와의 조별리그 3차전(모로코 2-1 승)에서 내준 한 골은 나이프 아게르드(웨스트햄)의 자책골이었다. 결국 5경기를 치르면서 상대 선수에게는 단 한 골도 내주지 않은 것이다.

모로코는 소외됐던 아프리카의 월드컵 도전사에 새 이정표를 세웠다. 이집트가 예선에 참여한 1934년 대회를 제외하고 1930년부터 1966년까지는 아프리카 국가가 한 팀도 참가하지 않은 월드컵이 진행됐다.

1958년 스웨덴 월드컵에서 처음으로 아프리카 지역 예선이 도입됐으나, 아프리카 지역 예선 승자는 아시아 지역 예선 승자와 겨뤄 한 장뿐인 본선 진출 티켓을 따내야 했다. “대부분이 식민지배를 받은 아프리카와 1954년에야 축구연맹이 설립된 아시아는 아직 축구 면에서 충분히 성숙하지 않았다”는 것이 당시 FIFA의 견해였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는 아프리카와 아시아, 오세아니아를 하나의 지역으로 묶어 본선 진출권 한 장을 놓고 겨루게 했다. 당시 가나 스포츠 행정 총책임자였던 오네 잔은 기자회견을 열고 “대부분 유럽인으로 구성된 FIFA 조직위원회가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끔찍한 방식으로 취급하며, 세 대륙에 하나의 본선 진출권을 부여하는 것은 모욕적”이라고 말했다. CAF 소속 31개 팀은 월드컵을 보이콧하는 차원에서 예선에 참여하지 않았다.

아프리카에 비로소 온전히 본선 진출권 한 장이 주어진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모로코는 조별리그에 올라간 최초의 아프리카 팀이 됐고, 14위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모로코는 아프리카 축구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 본선을 3개월 앞두고 선임된 왈리드 라크라키 감독은 단단한 수비 전술과 선수단을 하나로 묶는 리더십으로 무패 행진을 이끌고 있다.

이날 포르투갈전에서 모로코의 볼 점유율은 27%에 불과했지만, 승리는 결정적인 순간 득점을 올린 모로코의 몫이었다.

유럽 전역에는 모로코 출신 디아스포라(이주민) 약 500만명이 살고 있다. 이번 모로코 대표팀 26명 중 모로코에서 태어난 선수는 12명으로, 대회 참가팀 중 그 비율이 가장 낮다. 14명이 이민 가정 출신이다.

스페인과 겨룬 16강전 승부차기에서 모로코 승리를 결정하는 골을 터트린 아슈라프 하키미는 스페인 태생이고, 날카로운 선방으로 모로코의 무실점 승리를 이끌어 온 골키퍼 야신 부누는 캐나다에서 태어났다.

차별과 냉대를 받으며 자란 이민자 2세인 이들은 더욱 깊어진 조국애로 뭉쳐 카타르에서 일을 냈다. 야신 부누는 포르투갈전 승리 후 “우리가 열등하다는 인식을 버리고, 사고방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 모로코 선수는 세계의 누구든 상대할 수 있다. 우리가 기적을 만들 수 있다는 걸 다음 세대가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두리 기자 red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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