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천만’ 기록 세운 감독...‘영웅’으로 다시 관객 심판대에

김유태 기자(ink@mk.co.kr) 2022. 12. 11.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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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제균 감독 8년 만의 신작 ‘영웅’
2009년 초연 뮤지컬 원작 영화화
뮤지컬 이어 영화 주연 정성화
14kg 감량하고 안중근 열연
김고은, 독립군 정보원 활약
영화 영웅 정성화
“코레아 우라! 코레아 우라!”

‘대한민국 만세(Korea Ura)’를 뜻하는 이 러시아어는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직후 도마 안중근 의사(1879~1910)가 망국의 조선인을 대신해 외친 단말마의 비명이다.

도마의 검은 권총 FN1900에서 격발된 총알 1탄은 이토의 흉부에, 2탄은 흉복부에, 3탄은 허리에 박혔고 이후 이토는 30분 만에 절명했다. 이토의 죽음은 불운했고 비참했던 한국 근대사의 결정적인 한 장면으로 영원히 기억된다.

윤제균 감독의 뮤지컬 영화 ‘영웅’이 베일을 벗었다. 2009년 초연된 뒤 무수한 사랑을 받았던 뮤지컬을 스크린에 옮긴 작품이다. 뮤지컬 ‘영웅’ 주연인 배우 정성화가 영화에서도 주연으로 나섰고 ‘작은 아씨들’ 김고은의 첫 뮤지컬 영화 출연작이란 점, ‘국민 어머니’ 나문희가 도마 모친으로 출연한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영화 ‘해운대’와 ‘국제시장’으로 두 편의 천만 관객 영화를 기록한 윤제균 감독은 “영화 ‘국제시장’이 아버지를 위한 영화라면 ‘영웅’은 어머니를 위한 영화”라고 말했다. 21일 극장 개봉하는 ‘영웅’을 최근 시사회에서 미리 살펴봤다.

러시아 외딴 설원에서 도마 안중근이 결연한 얼굴로 걷고 있다. 대한민국 의병대장인 그는 “이토를 3년 안에 처단하지 못하면 자결하겠다”며 왼손 네 번째 손가락을 자르는 단지(斷指)를 감행한다. 흰 눈 위로 검붉은 핏빛이 번진다. 그는 동지 11명과 함께 태극기 위에 혈서로 ‘大韓獨立(대한독립)’을 쓴다.

평양 진남포에서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나문희), 아내 김아려 여사(장영남)와 살아가던 안중근은 로마 교황청에 들를 일이 있다며 집을 떠난다. 그러나 도마가 도착한 곳은 러시아 연해주. 안중근은 의병부대를 이끌며 두 차례의 국내진공작전에서 일본군을 격퇴하는 큰 공을 세우지만 만국공법에 따라 “전쟁 포로를 살해할 순 없다”며 일본군 포로를 선의로 풀어준다. 그러나 포로들이 다시 의병 거처를 대대적으로 공습하는 탓에 도마는 러시아로 숨어든다.

한편, 명성황후 시해 현장에 있었던 궁녀 설희(김고은)는 자신의 정체를 감춘 채 도쿄에서 독립군 정보원을 활동하던 끝에 “이토 히로부미가 곧 러시아 재무장관과의 회담을 위해 하얼빈을 찾는다”는 일본군 일급 기밀을 접한다. 이토를 모시며 하얼빈행을 택한 설희는 하얼빈의 동지들에게 시시각각 무전을 친다. 이어 하얼빈에서 울린 3번의 총성. 도마는 교수형을 당한다.

영화 ‘영웅’의 개봉 전부터 핸디캡을 안고 출발한 영화다.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 사건의 전후를 모든 관객이 안다는 점, 13년간 9차례나 공연된 성공적인 뮤지컬을 원작 삼는다는 점이다. 통념을 파괴하기 어려운 예상된 신파, 수시로 한국인 정신의 저변을 자극하는 ‘국뽕’ 민족주의도 극복을 요하는 과제로 예측됐다.

하지만 영화는 보란 듯이 단점을 상쇄하면서, 꽤 완성도 높은 ‘영웅 탄생의 미학’을 들려준다.

배우들이 부르는 넘버(노래)는 흠잡을 곳이 없다. 영화 속 도마 역을 위해 14kg을 감량한 정성화는 여전한 성량으로 ‘누가 죄인인가’ ‘장부가’ 등의 노래를 부르며 도마가 심중에 품고 있던 고뇌의 철학을 들려준다. 정성화의 넘버는 흡사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의 ‘One Day More’ ‘Bring Him Home’을 기억하게 한다. 설희 역의 김고은이 게이샤 복장으로 부른 넘버도 오래 회자될 것으로 예상된다.

압권은 조마리아 역의 나문희 배우가 부르는 노래다. “네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고 생각하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다. 딴맘 먹지 말고 죽으라”며 아들 도마에게 마지막 편지를 보낸 조마리아 여사의 노래는 음정도 박자도 다 틀리지만 진정 눈물 한 방울 떨구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감동적이다. 도마가 입어야 할 흰색 수의를 보며 오열하는 건 스크린 속 배우가 아니라 관객 자신일 수도 있다.

배우 박진주와 배정남·조재윤의 코믹 연기도 극의 긴장을 풀어준다. 다만 하얼빈 의거가 본격화되며 긴장이 몰아치는 후반부 30분을 위해 전반부가 1시간 30분이나 필요했는지는 의문이다. ‘국뽕’ 논란을 피하기 위해 철창 안의 안중근이 일본군과 동양 평화를 주제로 이야기하는 장면을 일부러 삽입한 점은 인상적이다. 의병들이 쫓아오는 일본군을 따돌리려 지붕 위로 탈출하는 장면도 생동감 넘친다. 도마 안중근 의사가 교수형에 처했을 당시 그의 나이 겨우 ‘32세’였다는 사실을 미리 기억하고 관람할 필요가 있다.

영화 영웅 김고은
영화 영웅 나문희
영화 영웅 박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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