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교육청 예산 5600억 삭감해놓고 추경 하라는 서울시의회
서울시교육청의 내년 예산이 서울시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위) 심의 과정에서 대폭 삭감됐다. 시교육청은 당초 12조8915억원을 편성했으나 5688억원이 깎여 12조3227억원으로 줄었다. 삭감 규모는 4.4%이지만 인건비(6조7555억원) 등 경직성 경비를 제외하면 실질적 감축은 10%에 육박한다. 물가 상승으로 증액이 필요한 ‘학교기본운영비’에서 1829억원이 삭감됐고, 고1 학생에게 지급하는 태블릿PC ‘디벗’ 사업 예산(923억원)과 초5~고3 교실 전자칠판 보급 사업 예산(1509억원)은 전액 삭감됐다.
시의회 예결위는 지난주 잡아놓았던 계수 조정 일정을 모두 생략한 채 지난 7일 삭감안을 밀어붙였다. 예결위원장인 이성배 국민의힘 시의원은 예결위 종료 뒤 시교육청에 “회계연도(2023년) 개시 이후 추가경정예산안을 신속하게 편성하라”고 주문했다. 예산을 삭감해놓고 추경안을 편성해 가져오라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 내년 서울의 교육행정이 파행할 것이 뻔히 보이는데도 예산을 줄였다는 말이다. 국민의힘이 다수를 점한 시의회가 진보 성향의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예산안에 어깃장을 놓았다는 의심이 안 나올 수 없다.
학교기본운영비는 학교의 기본 살림살이를 위한 경비다. 예결위 심의대로라면 학교 1곳에 지급되는 운영비는 5억2000만원에서 4억5000만원으로 줄게 된다. 당장 내년 초 교실 난방을 걱정해야 한다. 태블릿PC 지급 및 전자칠판 설치는 디지털 교육에 필수로, 교육부가 교육청에 관련 인프라 확충을 요청한 사업이다. 학교 건물의 석면 검증 5억7900만원, 화장실 불법촬영 예방 2억7000만원, 생명존중(자살예방교육) 연수 2억원 등 학교안전·환경개선 사업 예산도 모두 삭감됐다. 학교 밖 청소년 교육참여 수당(8억4700만원)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예산도 없앴다.
예산안 심의·확정은 시의회 권한이다. 세금이 허투루 사용되지 않도록 교육청 예산이 적정하게 편성됐는지, 사업의 적정성·타당성은 있는지 등을 따지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서울시의회 예결위의 이번 서울시교육청 예산 삭감은 이런 취지와 거리가 멀다. 시의회는 오는 16일 본회의를 열고 시교육청 예산안을 처리한다. 시의회는 이성을 되찾고 예산안 처리 절차부터 준수하기 바란다. 미래 세대를 위한 교육 예산은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정치중립적이고 미래지향적이며 민주적으로 설계되고 집행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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