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아틀라스의 사자들
축구 종주국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은 ‘삼사자 군단’으로 불린다. 빨간 혀와 발톱을 지닌 파란 사자 세 마리가 새겨진, 잉글랜드 축구협회 엠블럼에서 비롯된 별칭이다. 이 엠블럼은 12세기에 등장한 왕실 문장에서 가져온 것이다. ‘사자왕’ 리처드 1세가 즉위하면서 원래 한 마리였던 국장에 한 마리를 추가했고,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에 한 마리를 더 넣어 세 마리의 사자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삼사자는 잉글랜드와 자국 축구의 상징이 됐다.
각국 축구대표팀을 친숙하게 부르는 별명이 다양하다. ‘레 블뢰’(파란색) 프랑스, ‘오렌지 군단’ 네덜란드, ‘라 알비셀레스테’(흰색과 하늘색) 아르헨티나, ‘엘 트리’(삼색) 멕시코 등 유니폼이나 국기의 상징 색깔로 칭하는 게 대표적이다. 동물도 애칭으로 인기 있는데, 용맹함을 상징하는 사자가 가장 많이 쓰이고 있다. 체코는 ‘보헤미아의 사자들’, 이란은 ‘페르시아의 사자들’, 카메룬은 ‘불굴의 사자들’로 불린다. 2002년 한·일 월드컵 개막전에서 직전 대회 우승국 프랑스를 이긴 세네갈은 ‘테랑가의 사자들’이란 별명을 세계에 알렸다.
어제 카타르 월드컵 8강전에서 ‘항해사’ 포르투갈을 꺾고 아프리카·중동 국가 중 최초로 월드컵 4강에 오른 모로코는 ‘아틀라스의 사자들’이다. 모로코 서쪽 대서양 해안부터 동쪽으로 튀니지까지 2500㎞에 걸쳐 있는 아틀라스산맥에서 유래한 별명이다. 모로코는 지중해 연안과 사하라 사막을 남북으로 가로막는 거대한 산맥을 경기장에 들인 듯한 철벽 수비로 벨기에·스페인·포르투갈 등 유럽 강국들을 잇따라 제쳤다. 조별리그와 16강·8강전에서 3승2무를 거두며 실점은 자책골 1골뿐이고 스페인과의 승부차기도 3-0으로 이겼으니 상대 선수에게는 1골도 내주지 않은 것이다.
유럽·남미가 아닌 국가가 월드컵 4강에 진출한 것은 2002년 한국 이후 20년 만이다. 월드컵 92년 역사를 통틀어서도 1930년 1회 대회 때 3위 미국을 포함해 역대 세 번째다. 모로코 축구는 강인한 수비력과 탄탄한 팀워크로 4강 신화를 일군 20년 전 한국을 떠올리게 한다. 옛 식민 통치국이자 디펜딩 챔피언인 프랑스와 맞붙는 15일 준결승전도 기대된다. 역시나, 공은 둥글다.
차준철 논설위원 che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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