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한다면서 편 가르는 대통령실

노지민 기자 2022. 12. 11.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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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법제 사각지대 놓인 화물연대 기사들 총파업에 불법 규정…'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주장하면서 화물연대와 청년 등 편가르기

[미디어오늘 노지민 기자]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가 파업 종료를 결정한 가운데 대통령실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개선”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노동시장에서 취약한 위치에 있는 화물차 기사들을 압박하면서 이 같은 구호를 반복하는 것은 모순이자 노동자 편가르기라는 우려를 부르고 있다.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9일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화물연대 집단 운송거부는 우리 경제와 민생에 천문학적인 피해를 줬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모두 화물 업계의 제도 개선을 모색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며 “정부는 노사 문제에 관해서 흔들림 없이 법과 원칙을 지켜나가며 청년 세대의 일자리 확보, 그리고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개선, 공정하고 미래지향적인 노사 문화 조성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노동시장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 일자리 안정성이나 임금 등 질적인 면에서 양극화되고, 분절된 노동시장 간의 근로자 이동이 제한적인 구조를 말한다. 한국은행의 2018년 연구보고서는 국내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문제를 불공정한 원하청 관계, 서비스 부문 중심의 저임금 노동시장, 노동보호법제의 사각지대 등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한 결과로 분석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8월31일 경남 창원시 진해구 부산신항 한진터미널에서 열린 제7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화물연대 조합원들은 자영업자로 분류되지만 운임을 받고 사실상의 노무를 제공하는 특수형태고용근로자다. 화물연대가 적용 범위 확대와 일몰 폐지를 주장하는 안전운임제는 저임금, 과로 등으로 인한 교통 안전사고를 방지하자는 취지와 함께 화물차 기사로 일하는 노동자들의 최저임금 성격이 있다. 국제노동기구(ILO) 산하 결사의 자유위원회는 대형트럭 운전기사의 결사의 자유 원칙을 확인한 바 있다. 장시간 근로 대비 임금이 낮은 화물 노동자들이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문제를 겪는 당사자인 셈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화물연대 노동자들의 현실적 문제를 인식하는 듯했다. 지난 8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윤 대통령은 화물연대,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등과 관련해 '노동시장 양극화' 개선 의지를 강조했다. 당시 윤 대통령은 기자회견이 끝날 무렵 급히 추가 발언을 통해 “분규가 발생한 원인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대안 마련 역시도 정부가 함께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난번에 하청 지회(대우조선해양) 파업 같은 경우에는 이분들의 임금이나 노동에 대한 보상이 과연 정당한 것인지에 대해서 그리고 노동시장 양극화 문제에 대해서 저희가 근본적으로 고민하고 거기에 대한 대안을 함께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당시 화물연대는 6월 국토교통부와 '안전운임제 확대 지속 논의'에 합의해 파업 계획을 철회한 상태였다. 대통령실이 임기 초 파업 위기를 대화로 해소했다는 점을 성과로 내세운 이유다. 그러나 안전운임제 확대 논의가 이어지지 않은 가운데 화물연대가 파업에 나서자, 대통령실과 여권은 이를 불법으로 규정하면서 압박 수위를 높였다.

이에 정치권에서도 “대통령이 말씀하신 '노동시장 이중구조'에 시달리는 저임금 노동자가 바로 화물 노동자”라는 지적이 나온 바 있다. 화물연대 파업이 5일차였던 지난달 28일 이은주 정의당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화물노동자들이 파업하며 요구로 내건 안전운임제는 도로 위 안전을 위한 임금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화물노동자가 노동자로서 받는 최저임금”이라며 “노동자의 신분도, 헌법에 보장된 노동권도 대통령 마음에 따라 달라지는 게 법치인가”라고 물었다.

▲화물연대가 총파업을 종료한 지 이틀째인 11일 경기도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에서 화물차가 컨테이너를 싣고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연일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의지를 피력하는 대통령실 관계자들은 이중구조가 무엇을 의미하느냐는 질문에 명확한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한 질문에는 '노조'와 '더 열악한 노동자' 또는 '청년'을 나누는 답변이 반복되고 있다.

지난 1일 대통령실 청사에서의 현안 질의응답 시간에는 '보통 원·하청이나 정규직·비정규직을 이야기 할 때 노동시장 이중구조라는 표현을 사용하고는 하는데 이번 화물연대의 집단 운송거부에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어떻게 표현되는 것인지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출입기자 질문이 나왔다. 이에 대통령실 관계자는 “지금 경제가 어려워지면 가장 피해를 입는 사람은 바로 조직화된 소수가 아니라 조직화를 하지 못하고 있는 더 열악한 근로 환경 속에서 근무하고 있는 다수의 노동자들”이라며 “그런 관점에서 이중구조 문제나 노사 법치주의 문제를 언급하고 있다”는 답을 했다.

지난 9일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이야기를 거듭 강조하고 계신데, 이 부분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한 설명 부탁드린다'는 질문에 대한 답도 비슷한 양상이었다. 질문을 받은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일자리 세습이라든지, 아니면 기득권의 자신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이권 카르텔이라든지, 이같은 노동 문화에 대해서는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을 많은 국민들도 인식하고 계실 거라 생각한다”며 “상대적으로 일자리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는 청년들의 문제, 또 같은 직군, 같은 직종이라 하더라도 저임금 노동자가 겪고 있는 문제, 결과적으로 우리 사회의 약자층, 그리고 저임금 노동자에 대해서도 정부는 반드시 새로운 노동 문화, 그리고 노사 관계 개선을 통해서 이 사안에 대한 개선이 이루어지길, 진전이 이루어지길 희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국토교통부는 화물연대가 파업을 철회했음에도 기존에 논의된 안전운임제 3년 연장안을 무효화할 방침을 밝혔다. 이에 여권에서도 우려가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당권주자인 유승민 전 의원은 10일 “(화물연대 파업 관련) 한국갤럽 여론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71%가 '우선 업무 복귀후 협상'을 지지했다”며 “그러나 똑같은 여론조사에서 51%는 '정부의 파업 대응이 잘못'이라고 응답했다”고 짚었다. 이어 “안전운임제 등 현안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도출하지 못하면 집단적 운송거부 사태는 언제든 다시 시작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며 “안전운임제 3년 연장이라는 미봉책이 아니라 근본적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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