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사태 막은 케네디 리더십… ‘선의의 비판자’ 조언 따랐다 [김태경의 시선]

김태경 2022. 12. 11.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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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리포트
‘악마의 대변인’과 쇼크독트린
정화와 견제 기능 잃은 사회… 지금이야말로 ‘비판적인 소수’ 필요한 시대
권력의 자리는 그에 따른 책임도… 고립된 권력은 나르시시즘에 쉽게 빠져
계급구조 기반한 분업체제로 작동하는 관료제, 책임전가 용이한 부작용도
사회적 재난 막기 위해선 조직내 견제장치 통한 개방성·투명성 확보 중요

"자신의 의견에 반박하고 반증할 자유를 완전히 인정해 주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의견이 자신의 행동지침으로서 옳다고 내세울 수 있는 절대적 조건이다. 완벽하지 못한 인간은 이것 외의 방법으로는 자신이 옳다고 내세울 수 있는 합리적인 보증을 얻을 수 없다". 150년 전 존 슈트어트 밀은 자유론에서 어떤 의견이나 언론도 다수의 반론과 반박을 극복함으로써 의사결정의 질이 한층 높아진다고 이렇게 역설했다. 특히 통치자가 자신이 상정한 가치만 옳다고 가정하거나 통치그룹을 이루는 엘리트들이 합의한 내용에 대한 비판을 허용하지 않게 되면 잘못된 정책 결정으로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가능성은 높아진다. 다수의 의견교환과 반박, 재반박을 통한 지루하고 끈질긴 검증 과정을 통해야 현명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은 다수의 실증 연구를 통해서도 입증됐다. 의견이 첨예하게 갈리거나 좀처럼 좁혀지지 않을 경우에는 특히 그렇다. 빨리 결론을 내려야 하는 과정에서도 이런 절차는 의사결정의 신뢰성과 책임성을 높이는 역할을 담당한다.

심리학자 어빙 제니스 예일대 교수는 '피그스만 침공사건' '워터게이트 사건' '베트남전쟁' 등 고학력 엘리트가 모여 어리석은 결정을 한 다수의 사례를 연구해 이런 사실을 밝혀냈다. 제니스 교수에 따르면 아무리 개인의 지적 수준이 높아도 동질성이 높은 사람들이 모이면 의사결정의 질이 현저히 저하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것이 '악마의 대변인'이다. 악마의 대변인은 다수파의 의견에 대해 결점과 간과됐던 문제점을 찾아내 빈약한 의사결정을 막고 최적의 대안을 찾는 ‘선의의 비판자’다.

1962년 소련의 쿠바 핵미사일 기지 건설에 따른 미소 대립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케네디 대통령은 당시 긴박한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외교 및 군사 전문가와 심지어 쿠바 상황에 정통한 상사원 등 다양한 인재를 소집, 국가안전보장회의 집행위원회를 결성했다. 다만 그는 몇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대통령 자신은 절대 회의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자신이 회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간파하고 전문가들의 생산적 논의를 촉발하려는 의도였다. 대통령을 의식해 발언하고, 대통령이 듣기에 좋은 말을 하면 논의가 형식적으로 흐를 위험성을 사전에 차단하자는 목적인 것이다. 케네디는 반론을 제기하지 않는 관료적 태도로 이 문제에 접근하지 말고 미국의 안전보장이라는 근원적 문제에 적극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자신의 심복인 법무부 장관 로버트 케네디와 대통령 고문인 데드 소런슨에게 회의에서 악마의 대변인 역할을 해줄 것을 명령했다. 결국 이 회의는 갑론을박 끝에 '선제공격' 지지파와 '해상봉쇄' 지지파로 극명하게 갈렸다. 치열한 두 그룹들의 권고안을 청취하고 검토의견을 분석한 후 케네디 대통령은 선제공격에 따른 대량인명살상이라는 큰 도박에 나서기보다 해양봉쇄 작전을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이후에도 선제공격 지지파는 끈질기게 선제공격의 필요성을 제기했지만 악마의 대변인의 활약 덕분에 전쟁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고립된 권력은 나르시시즘 유혹에 빠진다

현재 우리의 정치와 권력구조는 심하게 일그러져 있다. 그 흔한 반론을 허용하지 않으려는 권력집단의 생떼가 정치구조를 심하게 왜곡하고 있어서다. 일부 권력 핵심집단이 의사결정의 키를 쥐고 그것만이 옳다는 독선과 오만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언론의 자유도 침해당하고 있다. 반론과 비판은 언론의 고유기능인데도 이를 용인하지 않는 정서와 분위기가 권력집단을 대중으로부터 고립시키고 있다. 사회와 유리된 고립과 소외는 '나르시시즘'으로 곧잘 빠진다. 자체 정화와 견제 기능을 상실한 권력은 외골수다. 주변을 보지 않고 한 방향으로만 가는 원자화된 세계는 다양성과 다원주의라는 공화국의 가치에 파멸을 초래한다. 권력을 바라보는 시선이 문제일까. 권력을 소유의 측면에서 바라보면 집착과 아집의 계곡에 갇히는 건 필연적이다. 권력자는 국민의 대리인이다. 소유가 아닌 잠시 빌리는 행위다. 권한을 위임받은 대리자로서의 역할에 층실해야 권위와 권력의 조화가 싹튼다.


최근 일어난 이태원 참사에 대한 책임회피와 진상규명 소홀 역시 이런 측면에서 심각한 권력균열을 가져올 수 있는 변곡점이다. 더욱이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책임을 지지 않는 태도는 심각한 자기 모순이다. 권력의 자리는 권력 행사에 따른 적절한 책임을 지라는 의미도 내포돼 있다. 지금처럼 실무 하위직에 대한 수사만 벌이면서 꼬리 자르기하는 행태는 전형적 관료제의 부작용이다. 관료제는 계급구조를 기반으로 철저한 분업체제로 작동하는데 이런 운영체제가 책임전가를 용이하게 할 수 있는 구조로 짜여 있다. 워낙 복잡하고 세분하게 분업화돼 있다 보니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 모호할 때가 다반사다. 책임전가하기 딱 좋은 구조다. 이런 구조와 시스템을 개혁하지 않는다면 늘 비슷한 문제에 직면하는건 시간문제다.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나치에 의한 홀로코스트가 관료제의 특징인 '과도한 분업체제'에서 가능했다는 점을 통찰했다. 홀로코스트를 단순히 나치 이데올로기에 의한 행위로 규정하는 순간 나치 지도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해 사태의 본질을 흐린다는 게 아렌트의 분석이다. 이런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관점 대신에 아렌트는 나치의 '분업체제'에 주목했다. 유대인 명부 작성을 비롯해 검거, 구류, 이송, 처형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을 많은 사람이 분담하기 때문에 시스템 전체의 책임소재는 애매해질 수밖에 없다. 책임 전가하기에 퍽 유리한 환경이 조성된 것이 홀로코스트를 아무 죄의식 없이 수행할 수 있는 동력으로 작용했다. 상부의 명령대로 움직였다는 진술만으로 빠져나갈 구멍은 얼마든지 있었다. 이 같은 체제 구축에 주도적 역할을 한 아돌프 아이히만이 진술한 말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는 "구성원들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가능하면 책임소재가 애매하게 분산된 체제를 구축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고 술회했다. 아렌트의 유명한 '악의 평범성'이라는 테제도 여기서 비롯된다.

사람이 집단 내에서 특정한 임무를 수행할 때는 그 집단이 지닌 양심이나 자제심이 가동되기 어렵다. 그러나 "그건 옳지 않다"는 조직의 작은 목소리가 나올 경우 집단의 무책임성과 위험한 질주를 막을 수 있는 견제장치로 작용할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양심의 목소리가 나올 수 있는 환경과 이를 지지할 수 있는 구성원들의 용기다. 이런 것마저 없다면 홀로코스트는 영원히 종식되지 않고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 당시와 비교해 고도로 분업화된 현대사회에서는 이런 현상이 더 심하다. 관료제는 비단 공무원 조직에게만 적용되는 건 아니다. 현대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집단은 규모의 크기와 상관없이 관료제의 특성을 강하게 띠고 있다. 분업이 표준화된 사회에서는 자신이 악행에 가담하고 있는지조차 자각하지 못하는 현상이 비일비재하다.

■'쇼크독트린'에 익숙한 한국

한국 사회는 재난 발생 시 일명 '쇼크독트린'에 익숙하다. 쇼크독트린은 재난의 충격을 가리기 위해 그 충격보다 더 큰 충격요법을 통해 재난의 참상을 은폐해 결국 기득권 체제의 균열을 막는 행위를 뜻한다. 이는 필연적으로 재난자본주의로 이어지고 재난자본주의 일상화 속에 어느 정도의 재난과 충격에는 반응하지 못하도록 무감각을 초래한다. 지난 2014년 5월 19일 세월호가 침몰한 지 34일째 되는 날 박근혜 정부는 대국민 담화를 통해 충격적인 정부 조직개편을 발표했다. 세월호 구조의 책임을 지고 해경을 전격 해체하고 국가안전처를 신설, 국가적 재난에 대처하겠다는 것이 그날 발표 내용의 핵심이다.

역대 정부는 위기 때마다 이 같은 정부 조직개편을 통해 위기를 돌파하려고 많은 시도를 했지만 거의 대부분 조직개편의 효과를 보지 못한 채 용두사미로 끝난 경우가 허다하다. 재난의 원인 및 분석, 책임자 처벌, 대책 마련 등 삼박자가 제대로 조화되지 못하고 따로 놀면서 일하는 시늉만 낸 결과다. 근본적이고 혁명적 개혁에는 많은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 이면에는 기득권 구조개혁에 저항하는 관료들과 세력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어서다. 상황이 이러니 이름만 바꾼다거나 인력만 소폭 교체하는 식의 가시적이고 표피적 개선에 그치고 마는 경우가 허다하다.

더욱 큰 문제는 비전문적이고 자신의 능력에 걸맞지 않은 사람들이 고위직에 다수 포진해 있다는 점이다. 의사결정의 질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조직 내 소통은 더더욱 기대할 수 없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자신의 직무가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사람에게 조직 전체의 비전과 발전을 기대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특히 의사결정 권한과 책임이 명확하게 각 직무에 규정돼 있기보다 여기저기 분산돼 있어 책임소재를 가리기도 쉽지 않다.

그렇다면 이 같은 사회적 참사를 막기 위한 근본적 해법은 무엇일까. 악마의 대변인과 같은 조직 내 견제장치를 통해 조직이 잘못된 경로에 빠질 위험을 사전에 예방하고 최적의 대안을 도출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효성 있고 근원적인 조직개편의 비전을 만드는 일은 이런 과정 속에서야 가능한 법이다. 의사결정의 질을 높이기 위한 조직 내 개방성과 투명성 확보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관료제의 특성인 타율적 통제에서 자율적 통제로 조직을 대대적으로 혁신하는 작업에 과감히 나설 때다. 이에 걸맞은 콘텐츠와 인재양성, 창의적 조직문화 구축 여부가 한국의 미래를 책임질 바로미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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