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6억엔 깨고 빅리거까지…육성선수의 기적 이렇게 만들어졌다

신원철 기자 2022. 12. 1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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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시절 무명이었던, 그래서 육성선수 드래프트를 거치며 어렵게 프로야구에 입문했던 투수 센가 고다이가 드디어 메이저리그에 입성했다.

2010년 육성선수 드래프트에서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4라운드 지명을 받고, 2012년 1군에 데뷔한 뒤 2022년에는 연봉 6억 엔의 벽을 넘겼다.

2022년 시즌을 앞두고는 역시 육성선수 출신 첫 연봉 6억 엔 벽을 넘었고, 이제는 메이저리거라는 큰 꿈까지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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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성선수 출신 최초의 메이저리거' 센가 고다이.

[스포티비뉴스=신원철 기자] 고교 시절 무명이었던, 그래서 육성선수 드래프트를 거치며 어렵게 프로야구에 입문했던 투수 센가 고다이가 드디어 메이저리그에 입성했다. 160㎞ 넘는 강속구에 눈에서 사라진다는 '유령 포크볼'까지 갖춘 센가는 왜 고교 시절 프로 구단의 레이더망에서 벗어나 있었을까. 소프트뱅크는 어떻게 이 원석을 찾아냈을까.

MLB.com에 따르면 센가는 11일(한국시간) 뉴욕 메츠와 5년 7500만 달러 FA 계약을 체결했다. 2010년 육성선수 드래프트에서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4라운드 지명을 받고, 2012년 1군에 데뷔한 뒤 2022년에는 연봉 6억 엔의 벽을 넘겼다. 이제는 메이저리거다. 센가가 지난 12년 동안 만든 기적들이다.

기적이 시작된 곳은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에 있는 '니시마사 베이스볼숍'이었다. 지역 야구 유망주를 꿰고 있던 사장 고(故) 니시마사 마사지 씨는 2010년 드래프트를 앞두고 소프트뱅크 오가와 가즈오 스카우트에게 연락해 좋은 투수가 있다고 귀띔했다.

이때만 하더라도 센가는 철저한 무명 투수였다. 가마고리고교라는 약체 소속으로, 직구 최고 구속이 144㎞에 머물렀다. 눈에 띌 만한 요소가 없었다. 소프트뱅크의 지명 후보 리스트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운이 맞아 떨어졌다. 2010년 당시 소프트뱅크는 3군 창설을 위해 육성선수를 대거 지명할 계획이었다( 2011년 소프트뱅크 3군 1기는 센가 외에도 가이 다쿠야, 마키하라 다이세이 같은 1군 주전 선수를 배출했다).

오가와 스카우트는 정보 유출을 우려해 직접 나고야에 가지 않고 다른 스카우트를 보내 영상을 찍어오도록 했다. 영상으로 센가의 잠재력을 확인한 오가와 스카우트는 "팔꿈치를 부드럽게 쓰고 소질이 있다"며 구단에 육성선수 지명을 추천했다.

소프트뱅크 입단 후에는 한동안 공을 던지지 못했다. 투구보다 코어 강화가 우선이었다. 캐치볼을 시작한 것이 2011년 여름. 이렇게 밑바닥을 다진 결과 구속이 늘었다. 센가는 과거 일본 언론과 인터뷰에서 입단 첫 해를 떠올리며 "시속 151㎞가 나와서 놀랐다"고 돌아봤다.

1군 데뷔 후에는 각종 '육성선수 출신 최초' 기록의 주인공이 됐다. 2016년 두 자릿수 승리(12승), 2017년 올스타전 선발 등판과 2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 2018년 개막전 선발 등판, 2019년 노히트 노런 모두 육성선수 출신으로는 최초의 기록이었다. 2022년 시즌을 앞두고는 역시 육성선수 출신 첫 연봉 6억 엔 벽을 넘었고, 이제는 메이저리거라는 큰 꿈까지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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