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상 국회의 견제권인데···윤 대통령 거부에 해임건의권 무력화되나

문광호 기자 2022. 12. 11.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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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마친 뒤 공동 언론발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헌정사 역대 8번째 국무위원(장관) 해임건의안이 1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9월 박진 외교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와 마찬가지로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 국회가 헌법이 규정한 대표적인 행정부 견제권을 행사함에도 번번이 거부권에 막히면서 해임건의가 무력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국회는 이날 본회의를 열고 재석 183명, 찬성 182표, 무효 1표로 이 장관 해임건의안을 의결했다. 민주당과 정의당, 무소속 의원들이 찬성표를 던졌다. 국민의힘은 본회의 표결에 집단 불참했다.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이 해임건의를 거부할 것이라며 야당의 해임건의안 추진이 실효성이 없다고 깎아내렸다.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은 “해임건의안은 명분도 없고 실효적이지도 않다”며 “대통령이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 대통령은 즉각 거부권을 행사하실 것이고, 우리도 요청드릴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 9월 국회가 박진 외교부 장관의 해임을 건의했을 때 공식적으로 거부했다. 대통령실은 거부 이유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대신 윤 대통령은 해임건의안이 통과되던 날인 9월29일 출근길문답에서 “박진 장관은 탁월한 능력을 가진 분이고 지금 건강이 걱정될 정도로 국익을 위해 전 세계로 동분서주하는 분”이라고 신임한다는 뜻을 표했다.

입법부의 해임건의권은 1952년 1차 개헌에서 ‘불신임결의권’으로 처음 도입됐다. 당시 국회는 개정 이유에서 “불신임결의권을 국회에 부여해 정부 또는 각료가 불법행위를 자행하거나 부적임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불신임결의를 하도록 하는 것”이라며 ‘민의원이 국무원 불신임 결의를 하면 국무원은 총사직을 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이후 해임건의권은 수차례 개헌을 거치며 약화돼 왔다. 1954년 2차 개헌에서 국무위원 전원에 대한 불신임권이 개인에 대한 것으로 바뀌었고, 1962년 제3공화국 헌법에서는 해임건의권으로 바뀌면서 ‘국회 결의시 해당 국무위원이 즉시 물러나야 한다’는 조항이 사라지고 ‘대통령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이에 응해야 한다’는 규정이 생겼다. 유일하게 해임건의권이 강화된 것은 역설적으로 의회 권력이 가장 약했던 1972년 유신헌법, 1980년 제5공화국 헌법 때다. 당시 법적 구속력을 갖는 해임의결권으로 격상됐지만 한 번도 행사된 적이 없었다. 사실상 보여주기식 개정이었던 셈이다.

현행 해임건의권 제도는 1987년 헌법체제에서 정착됐다. 1987년 10월 개헌안 표결을 위해 열린 본회의에서 채문식 전 민정당 의원은 “현행 헌법의 의원내각제적 요소를 배제하고 행정부와의 권력균형을 이루도록 국회의 국무총리·국무위원 해임의결권을 해임건의권으로 변경해 제63조에 규정했다”고 설명했다. 의회 권력이 지나치게 강화되는 것을 경계한다는 이유였다.

이처럼 권한이 약화됐음에도 1987년 이후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해임건의안이 가결된 장관들은 모두 사퇴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 임동원 통일부 장관과 노무현 정부 시절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이 모두 물러났다. 박근혜 정부 당시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첫 예외였다. 김 장관은 2016년 9월24일 해임건의안이 가결됐지만 2017년 7월까지 장관직을 유지했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이 박 장관에 이어 이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도 거부하면 헌법정신을 무시하는 행위라고 반발했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해임건의안 통과 직후 기자들과 만나 “사안의 엄중함을 감안할 때 대통령이 또다시 국회의 헌법이 보장한 권한을 거부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내에서도 “해임건의안을 받아들이는 게 헌법정신에 맞는다”(핵심 관계자)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민병로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법전원) 교수는 이날 기자와 통화에서 “국회 과반수 이상이 의결을 해서 건의안을 의결했으면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대통령이 받아들이는 게 맞는다”며 “대통령이 거부권을 또 행사한다면 불소통으로 가겠다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태원 참사에 대한 책임은 해임건의안을 제기할 만한 충분한 이유”라고 말했다.

문광호 기자 moonli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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