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희망’ 모로코, 유럽 중심의 월드컵을 뒤집다
92년 만에 처음으로 아프리카가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무대의 주연이 됐다. 모로코가 아프리카축구연맹(CAF) 소속팀 최초로 월드컵 4강에 진출하면서다. 모로코의 4강 진출은 그간 유럽 국가가 독식해온 월드컵에 커다란 전환점이다.
모로코는 11일 오전(한국시간) 앗수마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포르투갈과의 2022 카타르 월드컵 8강전에서 유시프 누사이리(25·세비야)의 결승골에 힘입어 1-0으로 이겼다. 아프리카 최초의 준결승 진출팀이 된 모로코는 오는 15일 프랑스와 4강전을 치른다.
모로코는 이번 월드컵 조별리그와 토너먼트에서 3승 2무로 무패 행진을 달리고 있다. 다섯 경기 동안 실점은 1골밖에 되지 않는다. 조별리그에서 캐나다와 벨기에를 꺾고 조별리그에 올랐을 때까지만 해도 ‘운이 따랐다’라는 평가를 받았던 모로코는 이제 새로운 강호로 세계 무대에 당당히 섰다.
이베리아반도 두 팀과 벌인 16강과 8강은 모로코 역사의 특별한 순간이었다. 좁은 해협을 사이에 두고 모로코와 맞붙어 있는 포르투갈은 15세기부터 모로코 연안 점령에 나섰다. 1496년 포르투갈은 스페인과의 모로코 분할 통치 협정을 통해 1774년까지 300년이 넘는 기간 포르투갈은 모로코를 식민통치했고, 스페인은 1912년부터 1956년까지 다시 한번 모로코를 식민화했다.
월드컵에는 1970년까지 아프리카의 자리가 없었다. 이집트가 예선에 참여한 1934년 대회를 제외하곤 1930년부터 1966년까지 아프리카 국가가 한 팀도 참가하지 않은 월드컵이 진행됐다.
1958년 스웨덴 월드컵에서 처음으로 아프리카 지역 예선이 도입됐으나, 아프리카 지역 예선 승자는 아시아 지역 예선 승자와 겨뤄 한 장뿐인 본선 진출 티켓을 따내야 했다. “대부분이 식민 지배를 받은 아프리카와 1954년에야 축구연맹이 설립된 아시아는 아직 축구 면에서 충분히 성숙하지 않았다”라는 것이 FIFA의 견해였다.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는 아프리카와 아시아, 오세아니아를 하나의 지역으로 묶어 본선 진출권 한 장을 겨루게 함으로써 각 대륙의 쿼터가 더 줄어들었다. 당시 가나 스포츠 행정 총 책임자였던 오네 잔은 기자회견을 열고 “대부분 유럽인으로 구성된 FIFA 조직위원회가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끔찍한 방식으로 취급하며, 세 대륙에 하나의 본선 진출권을 부여하는 것은 모욕적이다”라고 말했다. CAF 소속 31개 팀은 월드컵을 보이콧하는 차원에서 예선에 참여하지 않았다.
아프리카에 비로소 한 장의 본선 진출권이 주어진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모로코는 조별리그에 올라간 최초의 아프리카 팀이 됐고, 14위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모로코는 아프리카 최초로 4강에 진출하며 역사를 한 줄 추가했다. 월드컵 본선을 3개월 앞두고 선임된 왈리드 레그라기 감독은 단단한 수비 전술로 모로코의 무패 행진을 이끌었다. 포르투갈전에서 모로코의 볼 점유율은 27%에 불과했지만, 승리는 결정적인 순간 득점을 올린 모로코의 몫이었다.
유럽 전역에는 약 500만 명의 모로코 디아스포라(이주민)이 살고 있다. 이번 월드컵에서 모로코 대표팀 26명 중 모로코에서 태어난 선수는 12명으로, 대회 참가팀 중 그 비율이 가장 낮다. 스페인과의 16강전 승부차기에서 모로코의 승리를 결정하는 골을 터트린 아슈라프 하키미는 스페인 태생이고, 날카로운 선방으로 모로코의 무실점 승리를 이끌어 온 골키퍼 야신 부누는 캐나다에서 태어났다.
레그라기 감독은 스페인과의 경기 후 “나는 국적이나 여권을 위해 싸우는 게 아니다. 우리는 오늘 모든 모로코인이 모로코인임을 보여줬다. 우리는 다양한 태생의 선수들로부터 혼합체를 만들어냈다”라고 말했다. 모로코 선수들은 스페인과의 경기에서 이긴 후 그라운드에서 팔레스타인 국기를 흔들며 아랍 민족으로서 팔레스타인에 대한 연대를 드러내기도 했다.
포르투갈과의 8강전에서 이긴 후 모로코 골키퍼 야신 부누는 “우리가 열등하다는 인식을 버리고, 사고방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 모로코 선수는 세계의 누구든 상대할 수 있다. 우리가 기적을 만들 수 있다는 걸 다음 세대가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모로코는 월드컵에서 아프리카의 도전이 더는 ‘신화’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두리 기자 red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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