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털하다가 배탈났다고?” 소비기한이 고민 풀어줄까 [방영덕의 디테일]

방영덕 매경닷컴 기자(byd@mk.co.kr) 2022. 12. 11.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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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영덕의 디테일 ◆

[사진출처 = 픽사베이]
주말이면 ‘냉털(냉장고 털어먹기)’을 종종 합니다. 새벽배송 등을 이용해 구입하는 것엔 부지런을 떨었지만 정작 요리를 하진 못하고 냉장고에 쌓아두기만 한 식재료들의 수명이 다해갈 때죠.

인스타그램에 ‘#냉털요리’라고 검색을 하면 자그만치 2만8000여개의 게시물이 나옵니다. 냉장고를 정리해 나온 식재료로 해먹는데 필요한 레시피는 걱정없습니다만 한가지 고민이 따라 붙을 때가 있습니다. ‘어랏, 유통기한이 지났는데 먹어도 될까?’

고민의 해결책은 순전히 제 경험에 의존합니다. ‘이 정도 지난 것은 먹어도 괜찮았어’ ‘냄새가 좀 변했는데, 이건 먹지 말아야지’ 라는 식입니다.

유통기한이 조금 경과해도 일정기간 섭취가 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이를 믿고 먹었다 탈이 난 적이 적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유통기한이 지나 즉시 버리자니 너무 아깝고, 식품 폐기물에 지구 온난화 걱정으로까지 이어질 때가 많은데요.

내년 1월 1일부터는 이같은 고민을 한층 덜 수 있게 됐습니다. 식품 섭취가 가능한 기한을 보여주는 ‘소비기한’이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무려 38년 만에 우리 먹거리 기한의 표기 기준이 바뀝니다.

‘파는 자’ 말고 ‘사는 자’ 중심으로
[사진출처 = 식약처]
소비기한(use buy date)이나 유통기한(sell by date)은 모두 식품의 수명을 결정하는 방식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수명 결정 기준에 차이가 있습니다.

유통기한은 제품의 유통 판매가 허용되는 시점을 중심으로 결정됩니다. 쉽게 말해 영업자나 식품판매업자가 제품을 팔아도 되는 기한입니다.

반면 소비기한은 소비자가 섭취 가능한 시점을 중심으로 결정됩니다. 소비자가 먹어도 이상이 없는 기한을 말하는 것이죠.

제품마다 다르겠지만, 유통기한이 식품의 품질 변화 시점을 기준으로 60~70% 가량 앞선 시한을 설정하는 반면 소비기한은 80~90% 앞선 수준에서 설정하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는 달리 말하면 식품의 부패 시점까지 유통기한은 30~40%, 소비기한은 10~20% 시간이 남아있다고 할 수 있죠.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와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냉장 냉동 등 보관 방법을 잘 지켰을 때를 전제로 액상 커피와 같은 유음료는 유통기한보다 30일, 슬라이스 치즈는 70일, 달걀은 25일, 두부는 90일, 식빵은 20일, 생면은 50일, 냉동만두는 25일, 우유는 50일까지도 더 소비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 동안 유통기한으로 표기돼 있을 때는 경험치에 의존해야만 했던 섭취 가능한 기한이 소비기한 적용을 통해 명확해지는 것이죠.

환경보호에 한층 부합, 세계적 추세
[사진출처 = 픽사베이]
정부가 내년 1월 1일부터 유통기한 대신 소비기한을 전격 도입하기로 한 데에는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측면이 큽니다.

그 동안에는 먹어도 문제가 없는 음식을 단순히 유통기한이 지났다는 이유로 버리는 사례가 종종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식약처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음식물 폐기량은 연간 548만t으로 축구장 100개 넓이의 면적을 한꺼번에 덮을 만한 규모입니다. 이를 처리하는데 드는 비용만 매년 1조960억원에 달합니다.

음식물 쓰레기는 썩는 과정에서 온실가스를 배출해 문제입니다.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 중 8~10%는 음식물 쓰레기로 인해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따라서 유통기한 대신 소비기한을 사용하면 음식물 폐기량을 줄이고 이와 더불어 온실가스 배출량도 줄이는 효과를 얻게 되는 것이죠.

식품안전정보원에 따르면 소비기한 도입으로 식품폐기가 줄면 소비자는 연간 8860억원, 기업은 연간 260억원 편익이 발생합니다. 음식물 쓰레기 처리비용 감소 등까지 고려하면 연간 약 1조원의 비용 감축 효과가 있을 것이란 예측입니다.

이미 유럽과 미국, 일본, 호주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은 모두 소비기한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유통기한 대신 소비기한을 쓰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소비기한 설정은 어떻게? 보관방법 준수를
[사진출처 = 픽사베이]
소비기한을 결정하는 것은 각 사업자입니다. 따라서 내년부터 각 사업자들은 제품의 원료와 제조방법, 포장법, 보관조건 등을 고려해 과학적 실험을 거쳐 소비기한을 설정해야 하는데요.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이나 영세업체들은 자체적으로 소비기한 설정을 위해 제품별 실험을 하기 쉽지 않은 실정입니다.

이에 따라 식약처는 제품 유형별로 ‘권장 소비기한’을 마련하는 방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향후 4년간 100억원의 예산을 들여 권장 소비기한 설정을 위한 실험을 진행하는 것이죠.

소비기한이 유통기한보다 길 수 있는 전제조건은 냉장 냉동 등 보관 방법을 잘 지켰을 때입니다.

현행 규정상 식품 냉장보관기준은 0~10도이고요. 냉동온도는 영하 18도, 상온은 15~25도, 실온은 1~30도로 규정돼 있습니다.소비기한 도입이 효과를 내려면 식품 보관 온도 기준을 낮추고 유통·보관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됩니다.

식품 유통업계선 엇갈린 시선
[사진출처 = 픽사베이]
식품 유통업계는 시선이 엇갈립니다. 유통기한이 아닌 소비기한을 표기하면 제품을 더 오래 판매할 수 있어 재고 부담은 줄이고 환경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줄인 재고만큼 매출을 올릴 수 있어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달리 제품관리가 제대로 안되면 소비자들의 안전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빠지지 않습니다.

소비기한이 유통기한보다 길 수 있는 전제조건은 냉장 냉동 등 보관 방법을 잘 지켰을 때입니다. 이 전제조건이 충족되지 않을 경우 소비기한으로 인한 먹거리 안전성 문제는 계속 불거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대기업이 운영하는 곳과 달리 중소형 매장에서는 상품 회전율이 낮습니다. 이로 인해 소비기한이 다 될 때까지 팔리지 않는 상품이 생길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이죠. 제품의 신선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됩니다.

올해 포털 사이트 구글코리아에서 가장 많이 검색된 단어는 ‘기후변화’ 였습니다. 여느 인기 드라마나 게임보다 기후변화를 온라인상에서 더 많이 찾아보고 주목했다는 것은 그만큼 지구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음을 의미합니다.

음식폐기물을 줄여 지구 환경 보호에 앞장서자는 정부의 취지에는 어느 때보다 높은 공감대가 형성돼 있습니다. 그렇다고 38년만에 먹거리 표기 기준을 바꾸는 일이 쉬울 수만은 없습니다. 먹거리 안전에 관련된 일입니다. 더욱 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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