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돈 걱정 필요 없다”…포레스트 검프 부자로 만든 애플① [오기자의 테크株 흥망사]

오대석 기자(ods1@mk.co.kr) 2022. 12. 10.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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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포레스트 검프(1994)에 나온 한 장면. 영화를 보고 난 뒤에 애플 주식을 샀더라도 대사처럼 ‘돈 걱정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를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중위님께서 내 돈을 관리해주셨죠. 무슨 과일회사에다 투자를 했다며 우린 이제 돈 걱정 할 필요가 없어졌다 더군요.” -영화 ‘포레스트 검프’-

주인공이 받은 편지에는 사과 모양의 로고가 보입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70년대(애플은 1976년 설립, 1980년 상장)가 아니더라도, 영화를 보고 난 뒤(1994년 개봉) 감동을 받아 애플 주식을 샀더라면 돈 걱정할 일이 없었을 겁니다. 1994년 3월 1일 기준 애플 주식은 0.3달러(5번의 주식분할을 반영한 수치)에 불과했거든요. 작년에는 애플 주가가 170달러가 넘었고, 주식 시장이 하락기인 지금도 140달러가 넘습니다. 작년 기준으로 어림잡아도 567배나 되네요.

애플은 세계 시가총액 1위입니다. 올해 폭락장과 스마트폰 업계 불황이 겹쳤지만, 실적과 주가 모두 탄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증권가에서는 애플을 불황에도 강한 경기방어주이자, 명품주로 분류하기도 합니다. IT 제조업에 기반을 둔 회사임에도 말이죠.

이렇게 최고의 반열에 오른 애플이지만, 한때는 부도위기에 처한 적도 있었습니다. 아마도 1997년은 IMF 외환위기가 시작된 우리뿐 아니라 애플에게도 가장 힘든 해였을 겁니다. 창업자이자 영원한 혁신의 아이콘이 된 고(故) 스티브 잡스는 일찌감치 1985년 말 이사회에 의해 쫓겨나듯 퇴사했습니다. 그 뒤 PC 사업이 성장하는 듯 했지만, 90년대로 접어들며 애플은 점차 붕괴되고 있었습니다. 지나치게 많은 제품으로 확장하며 연이어 실패를 경험하고 있었고요. 차세대 운영체제 개발도 실패로 끝납니다.

스티브 잡스 퇴사 후 애플이 얼마나 중구난방으로 제품을 확장했는지 조금만 말씀드릴게요. 이 시기 애플에선 가정용게임기 ‘애플반다이피핀’, 전자수첩(PDA) ‘뉴튼메시지패드’, 컴퓨터와 TV를 통합하려고 만든 ‘매킨토시 TV’, 카메라인 ‘애플 퀵테이크’까지 나왔습니다. 모두 실패했고요. 애플의 흑역사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제품들이 이 때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휴대용 PC인 ‘매킨토시 포터블’도 흥행에 참패를 했습니다. 이 제품은 무려 7kg이 넘는 무게와 비싼 가격 탓에 차라리 절반 가격인 데스크톱 맥킨토시를 가방에 넣고 다니는 게 낫겠다는 조롱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거듭된 적자로 회사의 재무적 상황은 밑바닥까지 갔습니다. 주가는 말할 것도 없고요. 잡스가 “부도까지 단지 90일만을 남겨뒀다”고 회고할 정도였습니다. 이런 위기 속에 애플은 다시 스티브 잡스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됩니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을 떠나 세운 ‘넥스트(NeXT)’라는 회사를 1996년 12월 애플이 인수하며 그가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처음엔 어드바이저(adviser)로 참여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CEO로 ‘컴백’을 하게 됩니다.

스티브 잡스가 1997년 돌아와 어떤 일을 했는지는 다음 시간에 말씀드릴게요.

매일경제에서 테크 기업을 전문 취재한 뒤 증권부에서 자본시장을 취재하고 있는 오대석 기자입니다. [오기자의 테크株 흥망사]에서는 지난 10년 동안 테크 산업을 지켜본 경험을 바탕으로, 테크주와 관련한 뒷얘기를 전합니다. 투자자의 관심이 높은 테크 산업의 흥망을 통해, 독자가 부자가 되는 정보를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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